동시대반시대

마이너리티들의 수다 – 사랑? 됐고, 니 욕망을 까봐!

- 은유

“와인파티에 와인 마시러 가는 바보가 어딨니~” “결혼정보회사 직원도 보험회사직원처럼 병원으로 세일즈를 다니거든” “서울대 졸업반 23세 여자는 가입비 무료래” “6회 쿠폰 다 쓰고 기간 연장하면 할인 안 해주나?” “같이 살려면 금기가 같아야 해” “하필 그 때 옆에 있었고 마초 아니어서 결혼했어” “서로의 존재감으로 물들면 그게 사랑이지”……

귀가 쫑긋해진다고? 지난 9월 9일 수유너머R 큰방에서 흘러나온 얘기들이다. 자그마한 좌담회가 열렸다. 주제는 결혼과 사랑. 진부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지만 할 때마다 열 올리게 되는 핫한 안건답게 세 시간을 훌쩍 넘겼다. 참가자는 기혼, 비혼, 동거, 연애 중인 20~40대 총 6명. 이날 좌담회는 위클리수유너머 기획특집 ‘결혼정보회사 인간등급화 이대로 좋은가’와 ‘마이너리티 결혼의 조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생생토크 버전으로 진행됐다. 때 아닌 가을장마의 세찬 빗소리도 잠재운 점도 100% 찰진 수다 속으로 빠져보자.

<참가자>
– 여행생활자(32) 만리타국에서 박사과정 밟는 동갑 여친과 10년 째 연애. 고액연봉 학원 강사.

– 테리우스(29) 연애 7개월 차, 학업 정진하는 백수-닭살 커플. 결혼 생각 없음.

– 와인과캣츠(29) 지속가능한 연애의 모범사례. 성년의 날부터 연애한 남자와 결혼 3년차. 반려동물 고양이3마리와 동거.

– 더레프트(42) 코뮤니스트 연하남과 결혼한 좌파 전문의. 결혼 6년차, 슬하에 여아 1명.

– 유리알유희(23) 자유연애주의자. 애인 군대 보내고 6개월 간 다른 남자와 동거함. 그 사실을 아는 남친(이라고 쓰고 대인배라고 읽는다) 제대 후 3년째 만남.

– 침묵의소리(31) 마이너리티의 결혼관을 담지 못했다고 판단, 설문조사를 보이콧한 비혼 여성.

1부 결혼정보회사 인간등급화 이대로 좋은가

# 의사는 무료, 집안이 별로면 폭탄처리반

여행자: 설문조사에 배우자 성향을 묻는 항목이 있더라. 그런데 진보신당, 민노당 등 지지정당을 묻는 것보다 ‘4대강’ 같은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 입장을 밝히는 식이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사실 무슨 주의자, 지지자는 막연하다. 같이 사는 사람의 세계관이 어떤지는 중요하다. 결혼정보회사는 이게 없던데.

레프트: 없다. 레지던트 때 대학병원에서 보면, 결혼정보회사 사람들이 보험회사 직원처럼 와서 권유한다. 가입비 안 받을 테니 등록해라. 왜 나이트에서 수질관리를 위해 미모 출중한 선남선녀 그냥 오라고 하듯이 우수한 상품을 모아서 쇼윈도에 내세우는 거다. 그런 상품이 있어야 구매자들 이 달라붙으니까.

와인: 좋은 대학에 외모 출중한 전문직 남자인데 집안이 별로인 어떤 남자가 하소연 하는 걸 들었다. 까다롭게 구는 여성에게 계속 내돌림 당하는 모양이더라.

여행자: 폭탄처리반?

와인: 맞다. 자기한테 소개시켜주는 여자는 어리고 예쁘고 돈 잘 버는 여자는 없더라고 하더라. 이용당하는 거 같다고 불만이 많았다.

레프트: 그걸 알아야 한다. 결혼정보회사는 과거 중매업체와 다르다. 중매업체는 성혼비를 받는데 결혼정보회사는 성사되는 것과 관계없이 소개시켜주는 건별로 수익이 발생한다. 가입비 내면 6회 소개팅 쿠폰이 나오는 거다. 두서없이 골라서 다 꽝이 되더라도 자기 탓이지 회사 탓이 절대 아니다.

와인: 여자는 23세에 좋은 대학 나오면 상종가다. 언니가 서울대에 다녔는데 졸업에 맞춰 듀오에서 끊임없이 메일이 왔다. 심지어 가입비와 건강진단, 엄마아빠 학력증명서 떼러 지방 가는 비용도 무료쿠폰을 준다. 난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 그런지 23살 돼도 메일이 안 오더라. 하하.

# 와인동호회 편한 옷 입고 가면 아마추어~

여행자: 요즘은 동호회나 카페 등 인터넷 소모임도 많은데 그런데 가입하는 이유가 뭔가.

레프트: 신분증명의 확실함이다. 학위증. 과세명세서. 재직증명서를 낸다. 하지만 그들이 수사기관도 아니고 사기꾼 잡아내는 방법은 없다. 동거 경험은 표시되지 않으니 본인이 속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그들도 말한다.

테리우스: 남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여자 만나는 것에 거리감이 있는 거 같다. 동호회나 카페에서 만나면 능력 없고 찌질하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유리알: 아니다. 나도 교제를 목적으로 하는 인터넷동호회 가봤다. 괜찮은 사람들 많다.

와인: 맞다. 요즘은 커플모임이 일반화 됐다. 20대 청춘남녀 모이라고 광고성 메일이 온다. 거기 가입하려고 일반인도 연예인처럼 꽃단장하고 스튜디오 가서 프로필사진 찍고 그런다.

레프트: 83년생 모임, 이런 식으로 결혼과 연애가 아닌 사교모임을 표방한다. 당신의 소셜네트워크를 늘려 들인다고 말한다. 말 뿐이고,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욕망을 갖고 모이느냐가 중요하다.

와인: 그렇다. 와인 시음회라고 해서 절대 편한 옷 입고 가면 안 된다. 먹는 자리가 아니다.

레프트: 가면 밟혀. (일동 웃음)

유리알: 와인파티에 한번 가봤다. 게임해서 술 먹고 친목도모 하고 맨 마지막에 킹카랑 퀸카를 뽑는다. 주최측이 이분 맘에 드시는 분 나오라며 여자를 경매에 붙인다. 여자한테는 그게 생존능력이고 자존심이라는 분위기였다. 아무도 거부감을 안 갖더라.

와인: 어떤 곳은 입장할 때 번호표찰을 준다. 자기 번호 칸에 명함을 꽂아 두고, 파티 중에 유심히 관찰했다가 맘에 드는 상대의 명함을 가져가서 만나기도 한다.

유리알: 넘 복잡하다. 차라리 대놓고 사교모임을 내걸었던 내가 간 데가 낫다. (일동 웃음)

레프트: 요즘은 자기 스펙화나 상품화에 거부감이 없다. 결혼도 누군가 나에게 고점을 매겨주는 이와 하는 거 아닌가. 감히 누가 나를 점수화시키느냐고 버럭 대는 것은 80년대식의 올드한 생각이다. 와인을 내걸든 사교를 표방하든 간에 거기에는 ‘룰’이 있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가치인가 게임이 이뤄진다. 가장무도회다. 가면만 안 썼지.

# 회사 스펙 = 결혼 스펙

여행자: 결혼정보회사가 성업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와인: 우리사회에서 상위 10% 이내에 드는 사람들은 신분상승보다 유지에 목적이 있다. 자력으로 그만한 상대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모 대학 인터넷 게시판에 가보면 생생한 고민사례가 올라온다. ‘난 스펙을 열심히 쌓았다. 이정도 쌓기까지 공부하려면 연애하기 힘들다. 동급 스펙인 사람끼리는 만나고 싶고 그렇지만 사귀려면 감정도 필요한데 기회도 없다고 한탄한다. 대학 들어오고 연애를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자기 상태를 소상히 말하면 니네 스펙은 이런 점이 부족하다고 충고도 해준다.

여행자: 회사가 요구하는 스펙이랑 결혼 스펙이 다른가?

레프트: 거의 같다. 대신 결혼스펙은 선천적인 것의 배점이 크다. 금 수저 물고 태어나는 것도 엄연한 스펙이다. 난 결혼 전에 이 게임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여기선 내가 위너가 될 수 없었다는 걸 안 거다. 공부하면 고시를 딸 수는 있다. 살도 빼면 된다. 근데 키는 늘릴 수 없고 부모를 바꿀 수는 없다. 교수집안이랑 장사하는 집안은 점수가 다르다. 이 스펙 하에서는 전문직이라도 2등 시민일 수밖에 없겠더라. 상대가 뭘 원하고 이 시장이 무엇을 교류하는 시장인지 훤히 보였다. 타자의 눈으로 나를 봤을 때 내 점수가 나오더라. 난 그런 식으로 살기 싫었다. 그런데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으면 그렇게 결혼해서 사는 거다.

유리알: 그런 생각할 때 회의감 든다. 자기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기분을 느껴야 하고…내가 갖고 있는 스펙을 최대 활용해서 정점에 이르렀을 때 85점 일 때 괜찮은 남자를 만나려 애쓰고.

레프트: 회의하면 지는 거다.

# 됐고, 일단 니 욕망을 까봐

테리우스: 나는 결혼정보회사 등급 외이기 때문에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다. 잠깐의 직장생활을 했지만 피 튀기는 경쟁이 너무 싫어서 나왔다. 결혼까지 그렇게 되는 건… (얄궂은 표정)

유리알: 그걸 속물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우리에겐 집착하는 면이 있다. 사회를 비판하고 반대하지만 집착을 은근히 한다.

레프트: 정확한 지적이다. 조건 따져서 하고 싶진 않지만 괜찮은 남자를 만나고 싶고, 스펙 괜찮은 남자 보면 부럽고. 팬티 벗고 덤비고 싶진 않지만 알아서 연결되면 좋겠고 등등. 내가 내 욕망을 까야한다. 괜히 난 속물인가봐 자책했다가 스펙 좋은 남자 보고 침 흘리다가 자아분열 일으키지 말고, 자기 욕망을 확실히 하면 된다. 그런 여자들이 결혼해도 최선 다해서 잘 산다.

유리알: 결혼은 경제적인 목적이 큰 거 같다. 이유 없는 결혼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환상이다.

레프트: 80~ 90년대는 호황기였다. 웬만하면 전문직 아니어도 취직이 됐고 직장만 있으면 전셋집 작은 거 얻어서 살 수 있었다. 지금은 고용불안 시대다. 빈부격차가 너무 크다. 내가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은 다 백수다. 취직이 가능한 인간은 어디 갔느냐고? 다 결혼정보회사 간다. 어떤 식으로든 정규직 남자랑 결혼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 생존의 욕구가 됐다.

와인: 그렇다. 결혼으로 신분상승 꿈꾸는 여성은 청담동 사는 극상위층이다. 대부분 생존의 문제다. 내가 2001년 대학 갔을 때 한겨레21 특집이 ‘이제 개천에서 용 안 난다’였다. 그러니 결혼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됐다. 결혼하면 대출도 되고 부조금으로 목돈도 챙기고, 인생을 새롭게 리셋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2부 마이너리티 결혼관 그것이 알고 싶다

“금기가 같아야 해”

테리우스: 결혼해보니까 어떤 게 중요한지 얘기해 달라.

레프트: 같이 사는 건 욕망도 같아야하지만 금기가 같아야 한다.

와인: 동의한다. 예외성이 정상을 규정한다. 이를 테면, 넌 영화 봐라 난 만화책 볼래가 되면 서로 좋아하는 게 달라도 문제없다.

유리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감으로 물드는 것.

와인: 과연 23세의 감성!

유리알: 사랑(결혼)에 경제적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아직 고생을 덜 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과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이 사람을 내 편한 도구로서 본다는 것은 나 자신을 그렇게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금기가 있더라도 서로 융화가 된다면 금기가 아니게 되는 거다.

여행자: 동거할 때 어땠나. 어떤 일로 제일 부딪치던가?

유리알: 크게 없었다. 난 집안일을 안 했다. 동거남에게 내가 여기에 있고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내겐 존재가 물드는 게 중요했다. 그가 겪었던 상처, 인간 자체가 보이니까 자아의 변화가 일어났다. 같이 사는 건 존재의 ‘변화’가 핵심이다.

테리우스: 같이 살 수 있는 식구를 원하지 결혼이란 제도가 필요한 건 아니다.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상대방이 극구 결혼을 원하면 해줄 순 있다. 그게 이혼할 수도 있고. 항상 열려 있는 상태다. 결혼한다고 하면 상대방 가족관계까지 끌려 들어오니까 신중히 해야지 생각한다. 무조건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유리알: 난 차라리 동거가 나은 거 같다. 그리고 결혼을 왜 한 명만이랑 하나. 여러 명이랑 같이 하고 싶다. 일처다부제면 좋겠다. (웃음)

레프트: 결혼은 연애랑 다르다. 무덤덤한 채로 일주일도 간다.

유리알: 같이 살면서 익숙해지는 건 존재감이 물드는 거다. 그의 낯설지 않음은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일. 나이를 들면서도 같이 단단해져가고 확장되어 가는 게 좋다.

마이너 안에 n개의 삶 있다

침묵의소리: 이 설문조사 질문의 세팅자체가 마이너리티의 배우자 선택기준인가? 아닌 걸로 보인다. 메이저 같다. 설문결과 진보신당 지지자 많이 나왔다 치지만, 지지정당보다는 삶을 구성하는 성향이 마이너인가가 중요하다. 마이너리티일수록 대답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삶에 따라 나올 수 있는 게 다르기 때문에 불편했다.

레프트: 중요한 지적이다. 욕망의 마이너를 가려내야 한다. 자기가 하위 10%라도 대한민국 상위 1%가 타는 차를 90%가 선망하면 그들이 메이저다.

침묵의소리: 난 파트너에게 바라는 것은 롱텀으로 갈 수 있는 관계다. 편하고 즐거우면 좋겠다. 감각적인 부분에서 즐거워야 한다.

테리우스: 나랑 비슷하다. 같이 살 수 있는 조건은 편안함이다. 취미생활. 공연이나 영화 같이 할 수 있어야 하고.

여행자: 지금으로선 결혼 안 할 거 같다. 동거를 생각하고 있다. 박사학위 받아도 취직은 안 한다. 규칙적인 출퇴근이 싫다. 난 내 시간에 대해 이기적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 둘이 되는 순간 신경 써야할 게 많아지니까. 어떤 사람이랑 동거를 해도 방이 여러 개면 좋겠고 옆집에 살거나 떨어져 살고 싶다. 연애는 내가 더 나아갈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서로 시간이 소모되는 게 있으니까. 지금 지구 반대편이라는 적절한 거리감이 좋다. 또 같이 여행 다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같이 여행하면 고생하고 많은 게 드러난다. 돌발적 상황에서 위기대처능력도 확인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는 인간이면 좋겠다.

유리알: 난 사람들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전부를 바쳐서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좀 염세주의여서 그런지 죽기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살려고 아등바등 하느라고 자기가 다 무너진다. 그게 슬프다. 살기 위해 살면서 오히려 죽는다. 나는 오히려 죽기 위해 사니까 시간 자체가 꽉 차있다.

나를 더 왼쪽으로 이끌어준 사람

와인: 우리는 20대가 그대로 겹친다. 기독교 단체 워크샵에서 만났다. 나도 그도 보수적이었는데 10년 간 많은 요소에서 변화해왔다. 매순간 상대방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살사춤을 배울 때 활기 있어 보였다고 남편은 지금도 다시 배우라고 그런다. 서로 상대방이 늘어지고 정체되는 상태를 못 참는다. 50-60대 연륜 쌓였을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라이벌이 되는 것이 목표다. 밖에서는 연인, 안에서는 룸메이트로 산다.

레프트: 싱글로 살 생각이었다. 우울증에 걸려서 무덤 같은 집에 갇혀있다가 남편을 만났다. 하필 그 때 내가 필요할 때 그가 내 옆에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수유의 브랜드 네임을 믿었다. 이런데서 공부하는 놈이니까 파시스트에 사기꾼은 아니겠지…뭐 그런.

와인: 원래 신원은 공동체가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기가 결혼정보 회사나 마찬가지다.(웃음)

레프트: 살아보니까. 미친놈이 아닐 뿐 아니라 좋은 점이 많다더라. 난 결혼 후 많이 변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자본주의적 욕망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학생운동을 했고 나를 좌파로 규정하지만, 정규직에 몸담고 있으니까 좀 애매했다. 386운동권도 30대 중반 회절이 일어난다.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결혼도 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남편이 나보다 더 왼쪽이다. 어느 사안을 놓고 얘기하면 굉장히 원론적인 생 래디컬이다. 그랑 살면서 나도 더 왼쪽으로 온 거 같다. 가령, 아이도 나중에 전문직 가지면 좋겠고, 아이가 로스쿨 갈 학비를 마련해두어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로스쿨이 웬 말이냐. 사회운동가가 되면 좋겠다. 남편도 나를 만나서 공연, 여행 등 문화적 정신적 세계가 풍요로워졌다. 누가 남편보고 크게 웃고 음담패설을 잘 한다고 하더라. 그건 내 특징이다. 그가 나를 닮아가는 거다. 결론을 내리자면 1. 마초 아님 2. 함께 내 곁에 있음이 중요하다.

신뢰란 그 사람 판단에 대한 믿음

와인: 우린 사제지간에서 연인- 친구로 변했다. 우린 둘 다 처음 해보는 게 많았다. 서툴기도 했다. 또 한 번 연애 기회가 온다면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이랑 하고 싶다.

유리알: 동거남이 연애 경험이 있으니까 데이트할 때 여기저기 데려가 주더라. 우린 둘 다 출가상태였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 삶의 경험치가 커서 포용력 있게 나를 대해주었다.

여행자: 어제 국제전화로 설문지를 고스란히 물어봤다. 답변이 나랑 거의 똑같더라. 배우자 학력을 박사학위 소유자로 꼽았다. 우리는 박사과정생이다. 난 공부하는 사람 아니면 못 만난다. 아파트나 차에 대한 욕망은 없다. 돈 벌어서 해외여행 다니는 거면 충분하다. 내가 공부하는데 결혼이 방해가 되지 않고 서로 시너지가 나면 좋겠다.

레프트: 설문지 하면서 남편에게 자기는 배우자의 조건으로 뭐가 중요해 물으니까 한참 생각하더니 ‘글세, 정파?’ 이러더라. (일동 웃음) 나랑 정파가 맞아서 산단 말인가 어이없었지만 중요한 요소 같다. 둘이 의견충돌로 다투다가도 TV 뉴스 보고 같이 욕하다가 우리가 싸웠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또 이 사람에게 뭘 물었을 때 거대한 관점에서 옳은 것을 짚어낸다. 난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있다고 말할 때의 믿음은 그 사람의 판단이 옳다는 믿음이다. 뭘 물었을 때 또 사악한 소리 하네. 그럴 수 있는데. 그의 생각이 옳겠구나. 정의로운 얘기를 하고 있구나, 그 말이 맞겠구나 믿을 수 있다.

와인: 주체를 설정할 때 자기의 최종판단으로 이뤄진다. 내가 누군가의 판단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건 주체를 허무는 일이다. 나도 비슷하다. 지금의 남편이 아니었으면 은행에 취직해서 소박한 중산층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결혼을 결심한 것은 그 사람이 좋은 판단을 내린다는 믿음이 컸다.

여행자: 여친이 나보다 현명하고 사고하는 품이 크다. 뭔가 같이 있어서 행동할 때 나쁜 짓을 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리우스: 나 역시 그렇다. 여친은 항상 내가 하려고 하는 어떤 것을 되게 하게 코치를 해주고 아이디어를 일이 되도록 진행시켜주는 존재다.

레프트: 내 욕망과 능력을 알고 결혼해서 잘 살면 된다.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그 무간지옥을 끝내기 위해 결혼하는 거 아닌가. 대학에 와서도 7월만 되면 더 좋은 대학 가겠다고 자꾸 수능을 치는 애들이 있다. 난 좀 더 좋은 대학을 갈수 있었는데 미련을 못 버리더라. 일단 결혼했으면 열심히 살아서 졸업할 생각을 해야지. (웃음)

와인: 그러니까 말이다. 반수한다고 습관적으로 그러는 애들이 있다. 하하. 난 남편에게 말한다. 바람을 피우더라도 내가 모르게 해 달라고. 기억에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유리알: 남친이 바람 펴도 괜찮고 심지어는 먼저 죽어도 용서할 수 있다. 그 빈자리를 내가 느낄 수 있게끔 해준 게 고마우니까. 그로 인해 n 개의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

일동: 오우~ (근데 우리 대화가 매우 건전하게 마무리된 듯ㅋㅋ 더 발칙했어야하는데! )

응답 2개

  1. 선미말하길

    멋집니다. 다들! 사랑과 결혼, 미혼/비혼이라면 다들 고민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생활밀착형 좌담회! 재밌습니다.

  2. 북극곰말하길

    ㅎㅎㅎ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이런 좌담회 담번에도 또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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