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6.

- 김융희

토종 작물에 대한 기대.

여름내내 계속 내리고 있는 비는 참으로 지겹습니다.
높은 하늘아래 맑은 햇빛이 내려 쪼이면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랐던 작물들의
결실이 탐스럽게 여물어가는 풍성한 가을이여야 함에도 계속 비만 내리고 있습니다.
금년 내내 떠올리기 조차 싫은 비, 비로 인한 작물 피해와 그에 따른 힘든 작업…

자연스럽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가능한 자연에 순응하여 작물을 짓고 있는
나의 경우, 금년 같은 불리한 자연 여건에서는 농삿일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농사라기도 민망한 아주 소규모의 자급용으로 짓는 우리집 농삿일이 이렇게 힘드는데,
생계를 위해 본격 농사를 짓고 있는 전업 농부들의 경우, 딱한 처지가 염려스럽습니다.

참외 오이는 덩굴 채 녹아 없어져 버렸고, 토마도나무 역시 모두 비에 녹아 끝부분만
겨우 잎사귀를 보이며, 열리지 않는 가지나무에 어쩌다 어렵게 맺힌 가지 열매는 그마저
금방 오그라들어 버리고, 호박도 결실이 되면서 금방 뚝 떨어져 버리는, 도데채 제데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배추 무우는 벌써 두세 번씩 심었으나, 지금 거의 녹아 없어졌고
일부 남아 있는 것들도 불안합니다.

맨 처음 읽찍 열려 잘 익혀야겠다며 계속 살펴왔던, 그래서 메달려 잘 익고 있었던
늙은 호박이 너뎃 통 되는데, 잘 살펴 보았더니 그것들마져도 상한 채 메달려 있습니다.
작물이 없으니 마음은 허전하다 못해 분개심마저 느껴집니다. 갑자기 재미도 사라져버린
쓸쓸함도 맛보게 됩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저는 농사꾼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농부가 되고 유능한 농사꾼이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건이나 채력이 도저히 못미쳐 속상해 하는, 저는
어설픈 농부 낙제생일 뿐입니다. 이런 처지에 농사같은 농삿일도 못하면서 이처럼
곰상스레 목메인 소리로 엄살부림이 지나치다 싶어 제발 이제는 그만 말자였었는데
또 어설픈 농사일지를 쓰게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은 노각을 중심하여 우리 토종작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대의 눈부신 문명의 발전은 농업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농삿일을 도웁는 각종
첨단 기계의 등장은 물론, 작물 자체의 첨단 기술에 의한 변신은 유전자 조작까지
도입하여 생명신비의 영역마저 무너져버린, 그래서 그 생명의 변이가 우리들 인간에
끼칠 영향에 심히 불안해 하기도 하지요. 문외한인 제가 여기서 그같은 전문 지식에
대해 왈가 왈부할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저의 토종 작물에 대한 관심입니다.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른 작물에 토종이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궂이 신토불이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토종작물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랜 세월을 곁에서 우리와 줄곧 함께하면서 우리를 지켜준 고마운 식물이 바로 토종
작물인 것입니다. 그 토종작물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가 그냥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저 남쪽지방에서는 물외라고 부르기도한 “노각”이란 늙어서 누렇게 된 오이를 일컫
습니다. 여리고 부드럽게 새로 태어난 요즘 오이에 비해 옛 그데로 내려온 토종오이를
구분하여 노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노각은 옛날엔 썩 귀하고 인기있는 작물이었지요.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날에는 요즘 참외처럼 날것으로 즐겨먹기도 했습니다.
저도 여름방학이면 물외를 먹기위해 외할머니댁을 자주 가고는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노각에 대한 저의 관심은 옛부터 즐겨먹는 맛도 있지만, 가꾸기 쉬운 재배기술의 매력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못지 않게 식물과 벌레도 발전하여 변하고 있음을 봄니다.
해충을 막기위해 농약이 개발되면 해충은 그것을 극복키 위해 변신하여 금방 개발한
농약은 무용지물이 되며 잡초역시 일반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생명을 보호하려는
방어본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랜 세월을 적응하며 자란 토종 작물은 잡초나 병충해와 더불어 함께하며 잘 견디며
자랍니다. 그래서 토종작물은 농삿일이 까다롭지 않습니다.
신품종 오이는 심고 오름대를 만들어 주고 잡초도 메어주어야 열매를 맺지만, 노각은
심어만 두면 잡초와 함께 하면서 결실도 맺고 자랍니다. 잡초를 극복함이 아닌
잡초와 더불어 견디면서 공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토종작물은 척박한 땅에서도 병충해 없이 잡초와도 잘 어울려 살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신토불이로 우리 몸에 유익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흔히 쑥이나 도라지, 씀바귀 민들레 더덕 취나물등 모든 토종
작물은 요즘의 신품종처럼 다수확이나 떼깔에는 못 미칠지는 모르나, 특별한 기술이나
관리 없이도 유기농과 같은 유익한 제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오래전 입니다만, 내가 만나게된 도자장인이 우리 전통 청자 기술을 찾기 위해
거의 신들린 사람처럼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답인즉 “우리 조상들의 청자기술을 알게되면 그 기술을 이용해
지금도 우리의 값싼 재료와 함께 좋은 재품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역시 뜻이 있는 장이는 생각도 깊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장이의 소원이 뜻데로 이루어졌는지, 이후 사정은 잘 몰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우리의 토종 작물을 잘 이용하면 저비용 고창출의 유익한 농산물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토종작물은 기대해도 좋을 매력있는 작물임이 분명합니다.
우리집 장포에는 늙은호박 민들레 씀바귀 고들뻬기 냉이 똘갓 똘들게 질경이 도라지
노각 더덕 딱지 부추 비름 뚱딴지 …….등, 많은 토종들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대로 부풀려 있는 나, 그런데 금년의 내내 내리고 있는 궂은비에는
토종작물도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맘때면 보물찾기 식으로 풀섶을
헤치며 따온 노각이나 호박으로 풍성했던 식탁이 요즘에는 초라하기만 합니다.
계속된 비로 인해 녹아 없어져 버린 열매의 흔적을 바라보며 씁쓸한 기분입니다.

응답 2개

  1. 김융희말하길

    어제 저는 배추 모종이 없어진 자리에 무우씨를 심었습니다.
    배추모는 없고, 늦었지만 무우가 아닌 무웃잎도 있으니까요.
    또 실패면 매밀을 뿌리면 나물로 먹을 수 있으니 …………….
    덤님도 시도해 보세요.

  2. 말하길

    저도 김장배추 씨앗을 뿌려 제법 많은 싹이 났었는데, 2 주 연속 폭우에 대부분 녹아 없어져 버렸어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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