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장애등급제 문제를 넘어서: 장애의 재정의

- 조한진(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최근 들어 장애인 연금을 신청하는 장애인에게 장애 상태와 등급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또 이것이 활동보조서비스의 자격에까지 영향을 미쳐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 등급제를 개선하거나 나아가서 폐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겠으나, 서비스․프로그램 제공에 있어서의 자격 기준이 되는 장애의 정의를 재고해 보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일이 될 것이다. 장애(disability)라는 용어를 검토하는데 있어서는 실제 정의가 근거를 두고 있는 이론적 틀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데, Bernell(2003)은 세 가지 개념적 틀을 서술한 바 있다. 그 첫째는 의학적 접근법(medical approach)인데, 개인이 의학적 질환의 특정 목록 중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장애인이라고 여겨진다. 둘째는 가장 흔한 접근법인 기능적 제한 접근법(functional limitations approach)으로, 특정 환경에서 개인에게 기대되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과업․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무능력이나 제한을 서술하기 위하여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셋째는 사회정치적 접근법(sociopolitical approach)인데. 이것은 장애를 인간과 그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로 본다.

이 중 의학적 접근법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공인된’ 질환의 특정 목록으로부터 중요한 많은 질환을 빠뜨리게 될 위험성이 있는데, 이것은 그 질병이 이 목록상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 있어서 급부의 거절을 야기할지도 모른다. 둘째, 이 접근법은 제한의 결과보다는 제한의 근원을 강조하며, 따라서 개인의 신체 상태와 기능하는 능력 사이에 분명한 관련성이 있다는 생각을 영구화한다. 셋째, 많은 상황에서 의사가 의학적 질환을 증명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선택 편향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추가 비용 요소(금전적 비용과 기회비용)가 있게 된다.

기능적 제한 접근법은 장애를 정의하는 근거로서 많은 연구자와 정부 공무원에 의해서 채택되어 오긴 했지만, 이것은 장애를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로서 보고 신체적 능력의 필요를 최소화하는 기술적 변화 또는 다른 재능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두는 것으로 인해 비판받아 왔다. 이에 사회정치적 접근법의 지지자들은 개인으로부터 초점을 바꾸어 더 광범위한 사회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환경으로 향하려고 한다. 즉 장애인이 직면한 문제는 환경을 고치는 정책 변화를 통하여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Bernell의 개념적 틀을 적용하여 우리나라의 장애의 법적․행정적 정의를 검토해보자. 먼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서는 제15조(특수교육대상자의 선정)에 따르면 교육장 또는 교육감이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신지체, 지체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이와 관련된 장애를 포함), 의사소통장애, 학습장애, 건강장애, 발달지체,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진단․평가된 사람을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한다. 이에 동 법은 의학적 질환 내지 손상의 특정 목록을 열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학적 접근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법정 장애의 범주도 아직 좁은 범위만을 포함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 제1항에 의하면, “‘장애인’이란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동 법은 제1항만 보아서는 얼핏이상․손상에서 기인하는 활동 제한, 즉 기능적 제한 접근법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2항과 동 법 시행령을 통하여 장애 종류를 정하고 있고, 그 법정 장애 범주 역시 아직 좁다. 심지어 시행규칙에서는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있어, 이에 장애인복지법은 철저하게 의학적 접근법에 따라 장애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도 장애를 정의함에 있어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하고 있어, 역시 의학적 접근법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제2조(장애와 장애인)에 따르면, “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ㆍ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동 법은 신체적ㆍ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일상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장애를 정의하고 있어 기능적 제약 접근법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 법이 인권법인데도 불구하고 서비스․프로그램법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법의 제2조 제1항과 매우 흡사한 장애 정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 법률을 먼저 제정한 외국의 예를 보아도 매우 드문 경우로서, 인권법으로서의 동 법의 위상을 생각할 때 매우 우려스러운 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법”)에서는 제2조(정의)에 의하면 “‘장애인 등’이라 함은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이동과 시설 이용 및 정보에의 접근 등에 불편을 느끼는 자”를 말한다. 동 법은 의학적 질환이나 손상의 목록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이동, 시설 이용, 정보 접근 등에 불편을 느끼는 자를 장애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제2조만 보아서는 그 불편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 수 없으나, 법률의 전체 내용을 보았을 때 그 불편이 개인의 의학적 질환이나 손상 또는 기능의 제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물리적 장벽에서 온다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동 법은 우리나라 장애 관련법 중에서 매우 드물게 사회정치적 접근법에 따라 장애를 정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장애 정의를 검토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장애 정의에 있어서 개선할 부분이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과 장애인복지법의 경우에 장애 범주를 더 확대하는 것을 우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도 장애 범주를 확대하는 쪽보다는 좀 더 종합적인 장애의 정의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위 두 법률의 경우에 손상되지 않은 신체 기능과 구조, 활동을 하는 능력, 그리고 제약 없는 참여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 물리적․사회적 환경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위 두 법률이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법’처럼 완전히 사회정치적 접근법에 근거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두 법률에 사회정치적 접근법의 요소를 가미하여 다른 두 접근법과 통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통합적으로 장애를 정의하고자 할 때 우리가 준거할 수 있는 예로서 ‘기능, 장애 및 건강에 관한 국제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를 들 수 있고, 법률로는 미국의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과 재활법(Rehabilitation Act)을 참고할 수 있다. 특히 재활법의 경우에 section이나 title에 따라 각기 다른 정의를 융통성 있게 채택하고 있어 우리가 꼭 고려해 보아야 할 방식이라 할 것이다. 더불어 인권법의 위상에 걸맞게 사회정치적 접근법에 근거한 장애 정의를 갖도록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개정하는 것도 꼭 해야 할 작업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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