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권이를 뜯고 뜯어도 기운 광주리 차지 않네

- 정경미

采采卷耳 不盈頃筐 도꼬마리를 뜯고 뜯어도 기운 광주리 차지 않네
채채권이 불영경광
嗟我懷人 寘彼周行 아, 님 그리워 바구니를 큰길가에 던져두네
차아회인 치피주행

陟彼崔嵬 我馬虺隤 저 높은 산에 오르려 하나 내 말이 병들었구나
척피최외 아마훼퇴
我姑酌彼金罍 維以不永懷 내 우선 금잔에 술을 따라 기나긴 그리움 잊으리
아고작피금뢰 유이불영회

陟彼高岡 我馬玄黃 저 높은 언덕에 오르려 하나 내 말이 병들었구나
척피고강 아마현황
我姑酌彼兕觥 維以不永傷 내 우선 저 뿔잔에 술을 부어 기나긴 시름 잊으리
아고작피시굉 유이불영상

陟彼砠矣 我馬瘏矣 저 돌산에 오르려 하나 내 말이 병들었구나
척피저의 아마도의
我僕痡矣 云何吁矣 내 마부도 병들었으니 아아, 어찌할거나
아복부의 운하우의

-詩經 周南 「卷耳」

시경의 시는 크게 풍風, 아雅, 송頌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뉜다. ‘풍’은 여러 나라의 민요라는 뜻으로 흔히 ‘국풍國風’이라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중가요, 가요 중에서도 포크송folk song이라고 할 수 있다. 풍에는 주남周南, 소남召南, 패邶, 용鄘, 위衛, 왕王, 정鄭, 제齊, 위魏, 당唐, 진秦, 진陳, 회檜, 조曹, 빈豳 이렇게 열다섯 나라의 민요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요즘도 유명한 노래는 주남, 소남에 많이 실려 있다. 주희朱熹는 《시경집전詩經集傳》에서 주남과 소남을 정풍正風, 나머지 열세 나라의 노래는 변풍變風이라고 했다. 즉 시경의 시들 중에서 주남, 소남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그것을 따라하거나 조금 바꾼 것이라고 보았다. 공자가 아들에게 “너 시경 읽었니?”라고 물을 때도 “시경 읽었니?”라고 하지 않고 “주남 소남 읽었니?”라고 했던 것을 봐도 주남 소남이 시경의 대명사로 통했나 보다.

주남周南은 주나라의 남쪽 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지역을 말하고, 소남召南은 소공召公이 다스리던 지역을 말한다. 주공과 소공은 주나라의 건국 공신이다. 주공은 주나라의 첫 번째 왕인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주나라를 세우는 데 많은 공을 세웠고, 나중에 무왕의 아들인 어린 성왕成王(즉 주공의 조카)을 도와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확립한 사람이다. 소공 또한 무왕을 도와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립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이때 주공은 낙양洛陽의 동쪽 지역을 다스리고 소공은 서쪽 지역을 다스렸는데, 시경에서 주공이 다스리던 지역의 노래를 ‘주남’이라고 하고, 소공이 다스리던 지역의 노래를 ‘소남’이라고 한 것이다.

아雅는 왕실에서 불려졌던 궁중음악이다. 국풍이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불려졌던 노래라면 ‘아’를 짓고 불렀던 사람들은 주로 사대부士大夫들이다. ‘아’에는 대아大雅도 있고 소아小雅도 있다. 소아는 궁중에서 잔치할 때 불렀던 노래이고, 대아는 대신들이 궁전 뜰에 모여 왕에게 문안을 올리고 정치 일을 의논하는 조회 때 불렀던 노래이다. ‘아’는 왕의 덕을 찬양하고 후손들에게 잘못을 경계하고 올바른 덕을 권장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많다.

송頌은 제사지낼 때 불렀던 노래로 “아아, 공 많으신 조상이여! 받은 복 크기도 하네/거듭 끝없이 내리시어 지금까지 이르렀네.”(「烈祖」) ···이렇게 신을 송양하거나 조상의 은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송頌에는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이 있다. ‘주송周頌’은 주周나라, ‘노송魯頌’은 노나라, 상송商頌은 상나라 조상들의 은덕을 칭송하는 노래이다. 시경의 시들은 이렇게 노래의 성격에 따라 풍風, 아雅, 송頌으로 나뉜다. ‘풍’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을 노래한 것이고, ‘아’는 궁중에서 잔치를 하거나 조회를 할 때 불렀던 노래이고, ‘송’은 제사 지낼 때 불렀던 노래이다.

한편, 시경의 시를 표현 방법에 따라 흥興, 비比, 부賦로 나누기도 한다. 주희는 시경의 시 구절마다 “이것은 흥이다” “이것은 비다” “이것은 부이다”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흥’은 이것이 저것을 불러오는 표현 방식, 이질적인 사건이 하나의 공통성으로 호응하는 것을 말한다. ‘어여쁜 복숭아 나무여 桃之夭夭/꽃이 활짝 피었네 灼灼其華/시집 가는 아가씨여 之子于歸/집안을 화락하게 하리 宜其室家’ 「도요桃夭」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이 시는 봄날의 화사한 복숭아나무에서 시집가는 날 아가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꽃이 활짝 핀 복숭아나무’와 ‘시집 가는 아가씨’는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가장 싱그럽고 고운 때’라는 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시집 가는 아가씨를 보면 꽃 핀 복숭아나무가 생각나고, 복숭아꽃이 활짝 핀 걸 보면 시집 가는 아가씨가 생각난다. 이렇게 상이한 사건이 하나의 공통성으로 호응하는 ‘흥’의 또다른 예로 「은기뢰殷其雷」라는 시가 있다. ‘우르르 천둥소리 殷其雷/남산 남쪽에서 울리거늘 在南山之陽/어찌하여 그대는 이곳을 떠나 何斯違斯/돌아올 겨를이 없는가 莫敢或遑’ 우르릉쾅쾅 하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집 떠난 남편을 걱정하고 그리워한다. 천둥소리가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을 흥興하게 한 것이다. 시경에는 이런 ‘흥’의 표현 방법이 많다. ‘흥’은 이후 한시漢詩 표현의 오랜 전통이 되었다. ‘선경후사先景後事’라고 하여 먼저 자연의 풍경을 묘사한 후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이 ‘흥’에 기원을 두고 있다.

비比는 비유적 표현이다. ‘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心之憂矣/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구나 如匪澣矣’ 「백주柏舟」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근심이 많은 마음’을 ‘빨지 않은 옷’에 비유하였다. 돛도 없고 닻도 없이 물결 위에 둥둥 떠가는 잣나무 배와 같이 의지할 곳 없는 버림 받은 여자. 술 마시고 놀면서 근심을 잊어 보려 하지만 버림 받은 여자의 처지란 그렇게 해서 잊을 수 있는 근심이 아니다. 형제들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오히려 미움만 산다. 근심이 많다는 것만 해도 가여운데 근심이 많다고 미움까지 받다니! 그리하여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이 가련한 여인은 자다 일어나 자기의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이렇게 탄식한다. 근심이 많은 마음이여, 빨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구나! 위안거리로 잊을 수도 없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길도 없는, 비탄에 가득 찬 마음을 빨지 않은 옷에 비유한 것이 절묘하다. 이처럼 ‘비’는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인 대상을 빌어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시의 육의六義(풍風 · 아雅 · 송頌 · 흥興 · 비比 · 부賦) 중에서 마지막-부賦! ‘부’의 대표적인 예로 시경詩經 주남周南에 나오는 「권이卷耳」라는 시를 보자.

采采卷耳 권이를 뜯고 뜯어도
不盈頃筐 기운 광주리 차지 않네
嗟我懷人 아, 내 님을 그리워하는지라
寘彼周行 광주리를 저 큰길가에 버려두고 가네

권이卷耳는 ‘도꼬마리’라고 부르는 풀이다. 옛날에 이 풀을 뜯어서 나물을 해 먹고, 약으로 쓰기도 했단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가시가 많아서 산길을 가다 보면 옷에 잘 달라붙는 풀이다.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슬픔을 노래한 시이다. 그런데 이 시의 첫 구절을 보면 그런 정황을 알 수가 없다. ‘권이를 뜯고 뜯어도 采采卷耳/ 기운 광주리 차지 않네 不盈頃筐’ 경광頃筐은 뒤는 높고 앞은 낮게 만든 대광주리이다. 뒤는 높고 앞은 낮으니까 앞으로 기울어져 보인다. 그래서 기운 광주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거 참 이상하네. 권이를 계속 뜯어도 왜 바구니가 차지 않을까. 그리고 권이를 다 뜯었으면 바구니에 잘 담아 집에 가지고 가서 나물을 해 먹던가 말려서 약으로 쓸 일이지 왜 바구니를 큰길가에 버려두고 가나.

이런 의문은 다음에 이어지는 ‘아, 내 님을 그리워하는지라 嗟我懷人’라는 구절에서 조금 풀린다. 아, 권이를 아무리 열심히 뜯어도 바구니가 차지 않은 것은, 그리고 덜 찬 바구니조차 한길가에 던져두고 어디 다른 데로 가버리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어서 이 시의 화자는 얼이 빠진 거야. 그러니까 뭘 해도 집중을 할 수가 없지. 나물을 캐면서도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니 일이 야무지게 갈무리가 되지 않는 거야. 구멍이 숭숭 난 대바구니 그물 사이로 나물 뜯은 게 줄줄 새는 거야. 아니면 밑이 새거나. 그러니까 광주리가 차지를 않지. 이렇게 우리는 시 전체의 맥락에 비추어 이 시의 첫 구절을 이해하게 된다.

‘차아회인嗟我懷人’이라는 구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愛人’이라고 하지 않고 ‘회인懷人’이라고 한 것이 재미있다. 사람을 품다. 사랑은 너를 내 맘속에 품는 것이고, 너를 내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회인’이라는 말에는 나와 대상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동양적 사유가 녹아 있다.

사랑은 내가 너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전부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슴이 심장을 품고 있는 것처럼 너와 나는 사랑이라는 사건 속에서 하나가 된다. 나는 네가 되어 이 세계를 함께 바라보고, 함께 느낀다. 나와 네가 따로 있어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나’와 ‘너’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연失戀은 내가 가진 어떤 것 중에서 무언가를 조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심장이 사라지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되는 ‘치명적인’ 사건이다. 내 존재의 근거 자체가 무너지는, 생명의 순환 리듬이 일순간 끊어지는, 일종의 ‘죽음의 체험’이다. 그래서 실연을 당하면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내 생명의 근원을 상실하는 것이므로. ‘너’가 없는 ‘나’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권이를 뜯고 뜯어도 기운 광주리 차지 않네’, ‘광주리를 저 큰길가에 버려두고 가네’와 같은 표현을 부賦라고 한다. ‘부’는 이것이 저것을 불러내는 방식[興]도 아니고,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하는 방식[比]도 아니다. 이것 혹은 저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 부賦는 사실 그대로의 표현이다. 나물을 뜯어도 광주리가 차지 않는다. 그 광주리를 큰갈가에 버려두고 간다. 이건 그냥 사실의 표현이지 거기에 다른 무슨 속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론, 이 사실이 시에 쓰인 이상 산문의 기록과는 다르다. 아, 광주리가 덜 찼네. 갈기에 광주리가 버려져 있네. 이렇게 단순히 사실의 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이의, 뭘 해도 집중을 할 수 없는 멍한 마음의 상태를 짐작하게 된다. 즉, 부賦는 사실 그대로의 표현이어서 그 구절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지만, 시 전체의 정황을 보여준다.

이렇게 풍風 · 아雅 · 송頌 · 흥興 · 비比 · 부賦를 시詩의 육의六義라고 한다. 풍 · 아 · 송은 시의 기능에 따른 분류이고, 흥 · 비 · 부는 시의 표현 방식에 따른 분류이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을 노래한 것은 ‘풍’, 궁중에서 잔치할 때나 조회할 때 불렀던 노래는 ‘아’, 제사 지낼 때 불렀던 노래는 ‘송’이다. 이것이 저것을 불러오는 표현 방식은 ‘흥’이고,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하는 방식은 ‘비’이고, 이것 혹은 저것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만 시 전체의 독특한 분위기나 정황을 나타내는 것은 ‘부’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얼이 빠진, 권이를 아무리 뜯어도 바구니가 차지 않고 그 바구니조차 한길가에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버린,「권이卷耳」의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권이卷耳」의 뒷구절을 보자.

陟彼崔嵬 我馬虺隤 저 높은 산에 오르려 하나 내 말이 병들었구나
我姑酌彼金罍 維以不永懷 내 우선 금잔에 술을 따라 기나긴 그리움 잊으리

陟彼高岡 我馬玄黃 저 높은 언덕에 오르려 하나 내 말이 병들었구나
我姑酌彼兕觥 維以不永傷 내 우선 저 뿔잔에 술을 부어 기나긴 시름 잊으리

陟彼砠矣 我馬瘏矣 저 돌산에 오르려 하나 내 말이 병들었구나
我僕痡矣 云何吁矣 내 마부도 병들었으니 아아, 어찌할거나

원래 하나였던 너와 나 사이에 높은 산, 깊은 바다가 가로놓이게 된다. 아 어찌할 것인가. 너와 나 사이 아득한 간극을 어떻게 메워서 다시 너를 만날 것인가. ‘높은 산[崔嵬]’ ‘높은 언덕[高岡]’ ‘돌산[砠]’은 너와 나 사이를 막고 있는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험준한 산을 넘으려면 말[馬]을 타고 가야 하는데 말도 병들고 마부도 병들어 움직일 수가 없으니 에라 술이나 마시며 회포를 풀어보자 하는 것이 「권이卷耳」의 뒷구절 내용이다. ‘병든 말[我馬虺隤/我馬玄黃]’ ‘병든 마부[我僕痡矣]’는 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움이 깊으면 병이 된다. 너와 나 사이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을 때, 너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함에 절망하면서, 그렇다고 너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으니··· 희망과 절망 사이의 간극만큼 고통이 커지고, 그 고통만큼 병이 깊어지는 것이다.

「권이卷耳」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약간의 괴리가 있다. 나물 뜯는 여자의 노래-이 시의 전반부에서 시의 화자는 평민 여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 시의 화자는 귀족 여성으로 바뀐다. 금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거나[我姑酌彼兕觥], 마부를 부리는[我僕痡矣] 상황은 귀족 여성의 생활과 연관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일적으로 해석해서 귀족 여성이 나물도 뜯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나물 뜯는 아가씨 노래에 귀족 여성의 노래가 후대에 전승과정에서 합쳐졌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많은 괴로움을 겪지만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괴로움만큼 큰 것은 없을 것이다. 「권이卷耳」는 바로 이런,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아픔을 노래한 실연가失戀歌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사람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다. 헤어진 사람을 생각하느라 얼이 빠져서 무얼 해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실연 당한 사람의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이 시는 ‘나물을 뜯고 뜯어도 광주리가 차지 않는다’ ‘그 광주리를 한길 가에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버린다’고 표현했다. 평범한 상황으로 실연 당한 사람의 마음을 어쩌면 이렇게 곡진하게 담아 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 된 체험 속에 함께 있다가 험준한 현실 속에 던져진 상황을 너와 나 사이 높은 산 높은 언덕이 가로놓여 있다고 표현한 것도 절묘하다.

정말 그렇다. 매일 만나는 사람과도 조금만 마음 쓰는 일에 소홀하게 되면 아득한 거리가 느껴진다. 바로 옆의 사람과 만나는 일도 첩첩산중이 된다. 그러니 사랑을 얻고 잃음은 대상이나 물리적 거리의 문제라기보다 내 삶의 능력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품을 수 있을 때[懷人], 너의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이나 불행까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너와 함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 내가 너를 대상화시켜 소유하고 지배하려 할 때 나와 너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존재의 간극이 가로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진실로 사랑하는 이는 부단히 자기를 써서[用],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써서 존재의 간극을 메우고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려고 힘을 쓰는 사람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