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의 사진공감

벙깍호숫가 이별의 오찬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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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 ‘벙깍호수’ 4구역 마을. 이곳은 오랜 기간 도시빈민의 안식처였습니다. 돈 없고 땅 없는 이들. 날품팔이로 하루를 채워가는 이들. 비 피할 곳 찾는 이들. 하나 둘 이곳을 찾아온 그들은 나무판자 몇 개로 얼기설기 호숫가에 집을 지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났고 세간도 늘었습니다. 호수에 넘쳐나는 물고기를 잡아 밥을 지어먹고 시장에 내다팔며 내일을 기다렸습니다. 호수를 둘러싸고 모두 7개 구역의 마을이 생겨났습니다. 벙깍호수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의 둥지가 되었고 그렇게 30년이 흘렀습니다.

벙깍호수에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호수의 절반을 메워 종합유통단지와 고급아파트를 짓겠다는 저들이 몰고 온 거센 흙바람입니다. 이 호수에 기대어 살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개발신화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돈 몇 푼 쥐어주고 ‘여기서 나가라’ 명령합니다. 견디다 못해 한 집 두 집 마을을 떠났습니다. 못나간다고 버티던 이들도 철거반원에 등 떠밀렸습니다. 집은 종잇장처럼 뜯겨 나갔습니다. 벙깍호수 4구역 마을이 통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른 아침, 벼락처럼 들이닥친 철거반원에 의해 소피어씨 집이 부서졌습니다. 맨바닥에 냄비며 의자며 세간 늘어놓고 망연자실 앉아있는 소피어씨 가족을 위해, 친하게 지내던 이웃 잔티어씨가 이별의 오찬을 준비합니다. 뜨끈한 국물로 허한 가슴 풀어내라고 말없이 장작불을 붙이며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소피어씨 가족도 따라 웃습니다. 냄비 속 닭 한 마리는 이제 막 보글보글 몸을 달구는데, 그들은 이미 허기진 뱃속을 채운 듯합니다.

2009. 8. 재개발로 쫓겨나는 벙깍호수 4구역 마을. 프놈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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