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넘사벽 없는 자기계발서 말.말.말

- 은유

그 많은 책은 누가 읽었을까. 서점가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차는 부동의 1위 자기계발서. 도대체 안에 꿀이라도 발라놨는가. 뭐가 들어 있길래 그렇게 와글와글 사람들이 모여들까. 별 내용 없다고 치부하기엔 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CEO는 출장길에 비행기에서 훑고 신입사원은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보고 취업준비생은 도서관에서 읽는다는, 요즘 뜨는 자기계발서 내용을 추려봤다.

일에 미쳐라

왜 내게는 성공의 길이 보이지 않느냐고 한탄하지 말라.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라. 그들은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일에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미쳤기에 성공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던 것이다. 성공하는 길을 찾고 싶은가? 그러면 미쳐라.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딱 1년. 1년만 제대로 미치면 당신의 삶이 변화될 수 있다. – <1년만 미쳐라>

자기계발서는 ‘자기경영’에 관한 지침서다. 경쟁력 있는 국민이 되기 위해 삶의 목표와 사명을 스스로 설정하고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하도록 독려한다. 그래서 성공, 변화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자기혁신, 자기계발, 자기관리를 하되 대충 해서는 안 된다. 7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 슬로건이 ‘하면 된다’ 였다면 21세기 글로벌무한경쟁 시대에서는 ‘미쳐야 된다’는 것이 정론이다. 미치지 않으면 낙오된다. 더 보자. 모 그룹에서는 가치에 따라서 직원을 뛰고 있는 직원, 걷고 있는 직원, 서 있는 직원 크게 셋으로 분류한다고 써놓았다.

‘뛰고 있는 직원은 선두그룹으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직원을 가리킨다. 이들은 경영실적이 좋고 건강이나 전문지식 면에서 뛰어나 회사에서 가장 필요로 한다. 걷고 있는 직원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로 뚜렷한 실적도 없지만 과오도 없다. 대부분 직원들이 이에 속한다. 서 있는 직원은 실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 부담이 되는 사람들로 한마디로 출근해서 자리만 차지할 뿐이다.’ (같은책)

얼마나 뜨끔한가. 김대리는 책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학교에서 성적에 따라 상중하 반을 가르듯이 회사도 실적에 따라 뛰는 놈, 걷는 놈, 서 있는 놈으로 분류한다. 한 줄 세우기의 인간관리 구조는 유사하다. 그런데, 놈놈놈 공히 입사 때는 동등한 우수인력이었다. 어쩌다가 운명이 갈렸을까. 저자의 진단은 이렇다. 남들은 뛰고 있는데 당신은 서 있다면 그것은 ‘미치지 못해서’이다. 미칠만한 목표와 신념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미칠 거리를 찾아 매진하자. 그러면 앞서 가는 사람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샐 틈 없는 자기점검과 시간 관리가 요구된다.

그게 가능할까? 회의하려는 순간, 책 마디마디 마다 미쳐서 성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사례가 박혀있다. 프로게이머 임요환 씨의 스펙터클한 성공스토리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젊은 나이에 돈과 명예를 다 쥐었다. ‘파티를 만드는 사람들’의 대표 박재우 씨도 일개의 바텐더에서 중소기업 사장으로 성공했다. 당신이라고 ‘명품인재’가 안 될 리 없다. 성공은 내일 죽을 것처럼 준비하고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며, 오늘 하루를 웃은 얼굴로 시작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으로 흘러간다. 이제 남은 것은 금과옥조와 같은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자기수련’에 가까운 철두철미한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일에 미쳐라. 미치면 만사형통이다. 거두절미, 조건무시. 자기계발서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은 없다.

혼창통을 가져라

‘혼창통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2010년 상반기에 대박 난 자기계발서이다. 조선일보 경제섹션 위클리비즈 이지훈 편집장이 지난 3년간 만난 최고의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들, 세계적 석학 등 수많은 대가의 삶에서 성공 비결을 세 가지 뽑았다. ‘혼·창·통’이 그것이다. 먼저 큰 뜻을 세우고(魂),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며(創), 물이 흐르듯 소통하라(通)라는 뜻이다. 일단 겉포장은 엄청 섹시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뭐가 좀 새로운 게 있나 싶어 본문 제1장을 넘기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우리의 니체 씨 금언이 떡하니 새겨져 있다.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 니체

얄궂다. 어쩐지 니체전집보다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본 듯한 문구다. 머리가 아닌 가슴, 즉 혼을 다해 일해야 성공한다는 진부한 얘기가 1장을 가득 메운다. 스티브잡스 애플 CEO가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도 그는 사람의 마음에 열정의 불길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거다. 혼(魂)을 다한다고 끝이 아니다. 창(創)이 가능하려면 ‘1만 시간’도 바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창이란 단어에서 새로운 것, 독특한 것, 기발한 것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구루들이 이구동성 이야기하는 창의 비결은 ‘부단한 노력’이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경영 구루로 불리는 비즈니스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비범한 성취를 이룬 사람, 즉 아웃라이어들의 공통적인 성공비결로 딱 한 가지를 지목했다. 다름 아닌 ‘1만 시간의 경험’이다. 그는 1만 시간은 어떤 분야에서 숙달되기 위해 필요한 절대시간이라고 했다. 1만 시간이라면 하루 3시간씩, 10년을 보내야 확보되는 시간이다.’ <혼창통,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1년만 미쳐라가 ‘10년만 미쳐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다음은 통通. 통하면 살고 통하지 않으면 죽는다. 조직의 생리다. 인간관계 조직관계에서는 경청, 칭찬, 배려의 덕목이 필요하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라, 그리고 삐져나온 못은 더욱 삐져나오게 하라고 책은 조언한다. 일본 최초의 벤처기업 호리바제작소 최고고문이 쓴 <남의 말 듣지 마라>라는 책을 인용했다.

“우리 회사 사람들 중에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평소에 ‘회장님, 참으로 멋진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해서 그런지 사원들은 내 말을 추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법이다…건강한 조직은 서로 속을 터놓고 얘기하기 때문에 문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 통이야말로 최고의 혁신이다. (같은 책)

자기계발서에는 세계적인 명망가 기업인이 거론된다. 자기계발서 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레전드’ 리스트가 있다. 전 GE회장 잭 웰치,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드러커,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 애플 CEO 스티브 잡스 등등은 기본이고 이웃나라 일본의 도요타, 소니 등의 기업문화와 인재양성 사례 인용이 빈번하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의 상사가 일본 최초의 벤처기업 호리바제작소 최고고문과 같은 인품과 가치관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고 어느 신입사원이 사사건건 팀장에게 다른 생각을 말했다가는 그 결과가 어찌될지 궁금하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면 왜 스티브 잡스가 전설이 됐겠는가.

혼창통. 왠지 호통 치는 듯한 뉘앙스의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이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의 재구성’임을 알 수 있다. 원래가 자기계발서 텍스트는 대동소이하다. 잠깐 예를 들자면, 국내 자기계발 분야의 그루 공병호 씨는 두 달에 한권씩 책을 내는데 그 책들이 최소 5만 부 이상이 판매된다. 책 쓰는 사람은 의아할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자기계발서는 안 되는 게 없다. 새로운 포맷으로 기획해서 기존의 책들 짜깁기하고 그럴듯한 제목 달아놓아도 빵처럼 팔린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올라온 ‘혼창통’ 한줄 서평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 ‘자기계발서 많이 읽는 분들은 이 책을 굳이 볼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을 보면 또 손이 갈 것이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기업은 실행력(do-how)을 갖춘 인재,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가치를 발견해 조직에게 부가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I자형 인재가 절실하다. 위의 가로는 지식, 스킬, 경험의 기본능력, 아래의 가로는 경영전반의 넓은 지식을 갖춘 일반역량, 세로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탁월한 전문역량을 의미한다. 전문성이냐 다양성이냐 고민은 무의미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 –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한우물만 파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다. 또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능사도 아니다. 주어진 일을 기필코 성과로 변신시켜야 한다. 성과를 내는 법은 ‘스펙’도 ‘인맥’도 ‘행운’도 아닌 오로지 ‘역량’뿐이다. 역량을 키워라. 어떻게?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I자형 인재가 되는 것이다. 일의 본질을 간파하고 일하는 방법을 혁신하고 일의 주인으로 우뚝 서서 언제 어느 곳에서든 ‘정말 일 잘하는 사람, 성과를 기대해도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그래야 조직에서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 다 잡는 자기혁신의 최종목적은 자기 상품화, 고가의 상품화이다.

사소한 습관을 고쳐라

일만 잘한다고 장땡이 아니다. 사소한 습관이 당신의 능력을 10배 더 빛나게 한다. <사소한 습관의 힘>에는 ‘능력을 10배 더 빛나게 하는 자기경영 기술’이란 부제가 붙었다. 이 책에는 비즈니스 식사에서 예의 지키는 법, 고객에게 이메일 쓰는 법 등이 소개된다. 프로들이 피해야할 산만한 행동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만지작거리기 2. 고무밴드나 클립 만지작거리기
3. 콧수염꼬기 4. 손가락 두드리기
5. 볼펜 딸깍거리기 6. 입술을 핥거나 물어뜯기
7. 손톱 물어뜯기 8. 발로 바닥 두드리기
9. 이 쑤시기 10. 안경 매만지기
– <사소한 습관의 힘>

자기계발서는 ‘완전정복’류의 참고서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한 페이지씩 요약정리가 나오고 책의 뒷부분에는 ‘TO DO LIST’가 있다. 이 책도 ‘지금 당장 시작해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20가지의 사소한 습관’이 보너스로 나온다.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하는지 몇 가지 사례만 보자. 자신의 표정을 의식하라. (많은 이들이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모른다) 농담은 재치 있게 하라. (농담은 구원투수가 될 수도,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사무실에 치실, 구강 청결제를 구비해두라. (남자들은 오후 5시에 면도를 하라) 이유도 없이 “죄송해요”라는 말을 하지 마라. 확실히 알 때는 ‘…인 것 같은데요’ 식의 불충분한 뉘앙스를 풍기지 마라. 등등이다. 이쯤 되면 인간개조 프로젝트라 할만하다. 개개인 욕망의 흐름은 세부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복리로 돌아온다

저항은 없다. 저항은커녕 생각할 틈도 없이 밀려오는 거센 파도가 자기계발 담론이다. 자기계발서는 대기업에서 조직적으로 소비된다. 경제연구소, 기획실이나 홍보실에서 ‘이달의 추천도서’ 형식으로 전산망을 통해 직원 개개인에게 전달된다. 대기업은 직원 개인별로 도서구입비가 일정금액 지원된다. 이 돈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도 사고, 혼창통도 사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도 사는 것이다. 팀별로 ‘독후감’ 대회 같은 것을 열어 문화상품권을 주기도 한다. 실적경쟁이 심한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권에서 자기계발서는 더욱 열정적으로 소비된다. 나를 관리하고 남을 관리하고 돈까지 관리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서 더 악착같이 자본의 신체에 달라붙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10권 더 읽는다고 일의 효율이 10배 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읽을수록 결핍만 쌓인다. 고쳐야할 습관 갖춰야할 스펙이 늘어나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라도 읽고 실천하다보면 ‘이익’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굳은 믿음이 있다. 아이들 영어교육 광풍현상과 닮았다. 이렇게 읽고 투자하면 언젠가 ‘복리’로 돌아올 거라 여긴다. 어른들은 평생학습의 주체가 되어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자기경영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자발적으로 복무하는 것이다.

자기구원 빼고 다 있다

자기계발서는 불친절하다. 신발 끈 풀어지지 않게 묶는 법, 뛰는 요령, 앞 사람 추월하는 법 등을 상세히 설명하지만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은 이리저리 꺾일 수 있다는 것은 예고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우리가 ‘무한경쟁’의 트랙 위에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점시 절대 혼자 먹지 말라’ 업종을 달리해 친교관계를 쌓고 주말에는 자원봉사 다니며 도덕마일리지 쌓으라고 관계 지향적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가 어떤 가치를 낳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혼창통으로 이 시대의 아수라장을 통과하라고 선동하지만 그것은 김예슬 선언대로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 위한 노하우일 뿐 인간의 길을 ‘선택’하는 법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적 선택의 조합이 나쁜 것은 늘 동일한 것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한다. 고액연봉. 명품인재. 세계일류. 자신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 의해 창조된 세계에 의존하는 것은 노예의 삶이다. 소수자를 위한 배려보다 주류를 선망하게 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게 하고, 더 많이 일해서 더 많이 가지라고 부추긴다. 이것은 자본의 지령이다. 미주알고주알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지만 정작 필요한 자기구원이 없다. 자기계발서, “넌 너무 불친절해”

응답 1개

  1. 곰바리말하길

    와 이 많은책들이라니 하지만 잘정리해주셔서 애써 볼필요는업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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