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고향을 다녀온 일

- 김융희

강형, 이번에도 나 때문에 작업 차질이 많았지. 나에게는 자네의 도움이 고마웠지만, 자네의 일손에 차질이 왔을 것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미안해서 전화도 못한 채 며칠을 보내다가 말고, 오늘은 편지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네.

가을준비철에 김, 매생이 생산을 위한 준비가 겹친, 자네의 년중 가장 바쁜 계절이 바로 지금임을 알기에, 이번만은 자네를 보지 않고 오겠노라 단단히 다짐하고 내려 갔었는데 그 다짐이 공다짐이 되버렸으니 어쩜 좋은가!

부고라는게 그러기 마련이지만, 자네도 아는 강진에 사시는 나의 막내 이모님의 갑작스런 부음을 받고 부랴 내려 갔었네. 팔십이 넘으셨지만 아직도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어 자식들도 임종을 못지켜 봤다네. 읍내라지만 의료시설도 변변찮은데다 주위분들의 대처도 부실했겠지. 더구나 자식들과는 떨어져 혼자 지내는 독거노인이었으니…

심장병이라는 것이 본디 돌발적인데다 분초를 다투는 까다로운 질병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네. 자네나 나는, 읍내도 아닌 더 오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더욱 건강에 유념해야겠다는 생각이네. 평소에 늘 조심하며 건강을 지키는 일에도 소흘치 말아야겠네, 정말 유념하게.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버린 여섯 남매중 다섯 째이신 이모님의 영전에 서려니, 그동안 실타래처럼 얼설킨 외가의 연분들이 겹쳐 만감이 스치네. 어릴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도 애지중지 사랑해 주시며 맛있는 것도 많이 챙겨 주시던 외할머니를 비롯해 언제 보아도 귀엽게 보아주시며 애정을 배풀어 주신 이모님들, 이제는 이모님을 마지막으로 외가와의 연분들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에 새삼 덧없는 삶을 실감하게 되네.

안그래도 지난 봄에는 집안에 나의 윗 어른들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으로 헤어보니, 내외가를 모두해야 다섯 분의 손위 분이 계시더군. 많은 수도 아니고 생각키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충 안을 세워서 아내와 상의를 하여 즉시 연락을 드렸었네. 멘 먼저 자근어머니들 두 분, 그리고 고모님과 이모님에게, 마지막으로 육촌 형님께…

“그동안 서로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것이 너무 오랜 것 같으니 저희 집에서 모여 만나도 보고 말씀도 나누며 한동안 함께 지내자“는 취지로 초청의 뜻을 전함일세. 그런데 결과부터 말하면, 만사가 뜻만 갖고는 안된다는 절실한 생각이었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자근어머니들, 형님, 거동이 불편한 나를 생각하면 너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모님, 나이도 제일 많으신 고모님은 없으면 안될 손녀의 뒷바라지 땜에 안되겠다는, 모두가 한사코 거절하시더군. 아무리 설득하고 메달려도 막무가내, 나이 잡수시면 고집뿐이라더니… 어쩜 그리들 옹고집인지. 결국 포기하고 말았었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건, 그 이후 불과 몇 달사이에 자근어머니와 이모께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고인이 되었으니…

모처럼 자네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의 집안이야기가 길어졌네. 그러나 나의 집안이야기가 곧 공동 관심사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려니 생각되어 적어 보았네. 참 먼저 전해야 할 형수님께 고마움을 전해 주게. 뵙지도 못하고 와서 서운하였지만, 원채 자네보다도 부지런하셔서 바쁘게 사시는 분이라 이해하네. 그 바쁜중에도 내 선물까지 챙겨주시어 어찌할봐 모르게 고맙고 미안스럽네. 그 숨돌릴 틀도 없으신 분이 올처럼 불순한 날씨에도 벌써 말려 가루낸 애지중지의 고춧가루, 그것도 그렇게 많이 나에게 주어버리면 자네들 것이나 있을까 걱정이네. 사실 나도 고추를 심었지만 하나도 말리지 못했는데 자네가 준 고추자루를 내놓았더니 우리 집사람 어찌나 좋와하는지…

보던 날 자네 김발을 치고 있던데.. 그 김발 예전엔 추석 물때를 맞춰 설치를 했었는데 지금은 늦추어 이제야 시작이라니, 그것도 기후 변화의 영향 때문이겠지? 늦게라지만 나 때문에 차질이 없었어야 했을 텐데… 글쎄, 장지가 바로 선영 곁이기에 이번 추석에도 못한 부모님의 성묘를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 안했던 화장터를 거치면서 장례 내용이 길어지더군. 다음 날은 주일에다 우리 교회는 추수감사절로 지켜온 주일이며, 갑작스런 부고로 다른 약속도 있고해서 시간이 촉박하였네. 일부러라도 와야할 성묘를 가까이 와서 그냥 돌아설 수 없다는 생각이 아무래도 무리였었네.

자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오겠다는 생각이 나의 과욕으로 변한 걸세.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그 먼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자네의 도움이 없음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그래서 자네를 만나보는 것보다는 자네의 차를 이용하기 위한 나의 속샘이었네. 잠시 들려갈건데 내 신경 쓰지말고 하는 일 하라며 기별만 전해 놓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 성묘를 하고 장지도 들려서 일을 마치고 자네에게 갔더니 글쎄 어쩌자고 일손을 놓은 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자네가 참 딱했네. 눈치 빠른 자네는 말도 꺼내지 않는데 차를 대기시켜 두었고, 버스가 자주 있는 읍내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주고서 가버리는 자네를 나는 말도 못하고
멍한 채 바라만 보았었네. 차 한 잔도 없이 그냥 해어쪄야 했던 우리들의 처음 있는 경험도 맛보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고속도로의 정체로 결국 그날밤 집엘 못오고 싸우나 신세를 졌었네. 아직도 자네의 고마움은 쉽게 지워지지를 않는 군.

자네보다 더 바쁘게 산다는 경무 친구에게는 전화도 못한 채 왔고, 마침 토요시장이 서는 주말이라, 우리 셌이서 만나면 장날엔 함께 일어설 줄도 모르고 막걸리판을 벌리곤 했던 장터 국밥집을 오늘은 안에게도 연락 없이 나 혼자서 막걸리 한 병 놓고 국밥 한 그릇 시켜 먹고 왔네. 그래선지 국밥도 막걸리도 옛 제맛이 아니더군. 아무리 문상길이라지만, 모처럼의 고향길이 이처럼
경황중 싱겁게 끝내게 되어 계속 깨름한 마음일세. 다음 쉬 기회되는데로 여유롭게 차분히 다시 다녀오겠네. 그동안 집안 모두 몸 건강하게 잘지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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