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 치열했던 마지막 여정

- 이소미(수유너머N)

『Aura 외국어영역』. 우연하게도 지금 내 옆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여학생이 보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벤야민이 역설한 ‘아우라’의 단어 그 자체가 현시대에는 복제되어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벤야민이 진중하게 생각했던 ‘아우라’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에 벤야민의 텍스트를 무작정 읽으려 한다면 아마 사상적 교감이라기 보다는 미로로 빠져들어가는 혼란함만 가중될지도 모른다.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몽환적 에세이를 보기 전에 그의 삶에서 그의 사상적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제이 파리니는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에서 1940년,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 속 벤야민의 마지막 행적을 좇는다.

내게 벤야민의 사상은 겹겹의 베일에 쌓여 있어 한번에 이해하려고 하면 되려 경외감만 느끼게 했던 까다로운 글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읽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 사랑 받게 된 이유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상이라기 보다는 한편에 아포리즘적인 그의 개성적인 문체는 사유의 막을 한층 강화시킨다. 때로는 겹겹의 사유의 막이 우리에게 벤야민이 했었던 수십 년간의 사유의 막을 되풀이하도록 종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때문에 독창적인 에세이를 쓸 수 밖에 없었던 벤야민의 궁극적인 내면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저절로 소설 속, 치열했던 마지막 순간으로 이끌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런’글을 썼던 것일까.’ 하는 묘한 반항심과 오기까지도 벤야민의 글에 대한 경외심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의 삶 속, 처절한 고뇌부터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첫 표지를 넘기려는 순간 무언가를 매섭게 응시하는 벤야민의 시선과 필연적으로 대면할 수밖에 없다. 자칫 괴기스러운 공포영화의 분위기처럼 섬뜩해 보이기도 하는 날카로운 눈초리는 우리를 긴장감에 빠지게 한다. 그것은 두꺼운 근시용 안경너머로 예리하게 사회를 바라본 벤야민의 무언의 경고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독자를 압도하는 그의 묘한 시선은 부정의 타자에게 경멸감과 동정심을 우회적으로 내 비추기도 한다. 그의 사상처럼 그의 모습에서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함과 동시에 날카로운 기재가 느껴진다. 동시에 이를 통해 프랑스 망명 당시, 파리 도서관에서 하루 9시간 무려 10년간 연구에 몰두하던 그의 눈빛을 상상해 본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파사젠베르크를 구상 중인 발터 벤야민

벤야민의 삶의 한 부분에 불과한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행적, 그리고 마지막 자살하기까지의 짧은 순간은 그의 삶 전부를 드러낸다. 프랑스를 나치가 점령하기 전에 신속히 그곳을 떠나라는 지인의 충고에도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두르며 프랑스에 머무르길 고집한다. 그 당시, 나치의 감시에 거의 쫓겨나다시피 카페를 나오며 우연히 마주친 군인은 벤야민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즉 사지는 멀쩡하지만 동공 없는 군인의 모습과 숨을 쉬기 조차 힘들어 했던 벤야민의 모습이 상반된다. 벤야민은 심장병으로 인해 육신은 피폐했지만 정신만큼은 사유로 무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혹한 상황, 무시무시한 나치, 숨을 쉬기조차 힘들게 했던 심장병, 그리고 죽음, 그 어느 것조차도 그를 굴복시키기엔 부족했다. 육신이란 수용소에 가두어 졌지만 부유하는 영혼은 어느 순간이나 자유로웠다. 어쩌면 그의 사유의 막은 벤야민만의 도피처이자 불안한 사회로부터 그를 지켜낸 사상적 보호막이었을 지도 모른다. ‘신문을 읽기보다 보들레르를 읽을 겁니다’라는 단호한 태도에서 그가 외부에서 주어진 수동적 사유가 아닌 본질적인 사유에 접근하려고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즉 소신 있게 사유하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고집했던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사유의 행적과 유사하다. ‘벤야민은 상대 여성이 다른 남자와 살고 있거나 그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경우에만 매력을 느꼈다’ 는 벤야민의 절친 숄렘의 말처럼 그는 이기적인 일방통행인이었다. 책과 사랑에 동등한 우선순위를 매기고 때로는 목숨과 같은 원고보다 여자와의 섹스에 더 희열을 느끼는 본능에 충실한 한 남자이기도 했다. 결국 그에게 수동적인 상대를 생각하기 보다 멋대로, 이기적이게 사랑과 사유를 지속했던 것이다. 강연의 서문에서 고의적으로 헤겔을 언급하며 무지한 청중을 배제시켰던 대담함에서 그는 결코 그를 위해서였든 아니든 지나친 배려를 삼가 했다. 게다가 스페인 국경을 넘는 도중, 국경수비대를 코앞에 두고 괴테의 책을 읽으며 벼랑 끝에서 유유자적하게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은 거의 달인 수준에 가까워 보였다. 만약 벤야민의 행동 때문에 국경수비대에 들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짐짝이라 생각하기 쉬운 원고가방을 그의 분신처럼 여기며 매 순간의 위기와 마지막의 죽음 앞에서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벤야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그저 선택의 불과한 하나의 사유의 과정 같아 독자인 나도 벤야민의 죽음 앞에서 놀랄 만큼 담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런 죽음까지도 의연히 받아들이는 벤야민의 태도에서 저자는 하나의 아우라를 창출하여 우리에게 그를 신화적 존재로 여기게끔 하려는 건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벤야민

벤야민이 언급한 앗제 사진 프랑스

무엇이 그토록 그를 끊임없이 절망으로 빠트리고 고립시키며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했을까. 소설에서 언급되는 심각한 난시와 숨통을 죄어오는 신체적 병환 때문이었을까. 아마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고국에서 버려지다시피 했고 전쟁에서 숱한 우정을 잃어야 했으며 사랑에서도 버림 받은 일련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수한 추측과 상상으로 벤야민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처절히 머리를 굴려본다. 그의 사상이 이토록 놀랍게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전해지며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벤야민의 삶의 원천에서 비롯된 것임에는 분명하다. 무언가 풀지 못하는 절망감을 사유와 지식의 발로로 삼으며 삶을 가까스로 지탱했던 처절한 삶에서 그의 사상 자체를 삶으로 여기는 것은 그리 과도한 것이 아닌 듯 하다.

벤야민은 문학, 철학, 영화, 정치, 예술이란 분야를 경계 짓지 않고 하나의 유기물같이 여기며 사유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정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일련의 순환고리로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이는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침이 없이 독특한 사상을 전개해 나가려는 의지이다. 게다가 유년기의 부르주아적인 특성에 편향되지 않으면서도 프롤레타리아적인 특성에도 국한되지 않아 계층의 구분에 자유로웠던 벤야민. 결국 그 자신은 혁명을 주장했지만 한번도 혁명에 발을 들인 적도 없었고 부르주아지의 삶을 경멸했지만 결코 프롤레타리아트화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가 날카로운 사유의 배경이었음을 추측해 본다. 즉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독특한 관점에서 자유로운 사유의 막을 형성했던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시대적, 계층적 상황을 막론하고 제3자의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21세기를 살면서도 발터 벤야민이 살았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회상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것은 지나친 과대망상은 아닐 것이다. 풍부한 사회의 이면에는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혼란이 도처에 존재하고 근거 없는 풍문이 사회를 미혹시키며 민중을 선동한다. 더 절망적인 것은 우리 시대엔 제2차 세계 대전의 역사적 격변기라는 그럴듯한 구실거리조차 없다는 것이다. 전시 상황에서는 육체가 피폐해져 영혼도 그에 상응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오늘날 모든 것이 풍부한 최첨단의 삶에 화려한 육체 속의 텅 빈 사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벤야민은 우리의 위치, 우리의 공간에서 역사를 비롯한 현재까지도 우리들의 방법으로 재 응시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우리의 사유는 자유로운지, 온전히 나의 것임을 자부할 수 있는지. 벤야민의 모든 것을 꿰뚫는 사상적 기지가 우리에게 그 해답은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벤야민이 역설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필적하는 사유의 전환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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