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정치의 사유

미하일 바흐친 : 유혈 낭자한, 도래할 사건으로서의 혁명

- 최진석

1.

바흐친과 혁명, 혹은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먼저 조심스럽다. 이유는 간단한데, 바흐친 자신의 지적 이력에서 그가 정치적인 주제에 관해 발언하거나 글을 쓴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사유와 저작 활동을 철저히 문예학과 문화 연구에 한정시키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1980년대에 영미 지성계에 ‘바흐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대개 문예학과 언어학, 미학 혹은 문화 연구에 국한된 일이었고, 그 이후 바흐친의 철학 저술들이 새로 발견되고 집중 탐구되었을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바흐친의 사유와 이론적 관점이 스탈린 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 의식과 공명한다는 점에 주목한 연구가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최근에야 제기된 이런 논점들은 아직 바흐친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명료한 분석틀을 생산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바흐친을 혁명과 정치의 사유의 전면에 포진시키려는 이 글은 다분히 모험적이며 실험적이다.

바흐친이 정치 문제에 말을 아꼈던 이유는 그의 개인적 이력과 밀접히 관련된다. 그의 이름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사연을 소개해 보자. 1895년생인 바흐친은 대학에서 문헌학을 전공했고 졸업후 혁명의 격랑을 피해 백러시아의 네벨과 비테프스크를 전전했다. 그게 1920년대이고 그의 나이 20대 후반으로 가장 지적 열정이 충만하던 때다. 순탄치 않은 지방에서의 삶을 보내면서도 서클을 조직하여 강의와 연구, 토론으로 시간을 보냈고, 메드베데프의 이름으로 <문예학의 형식적 방법>(1928)을, 볼로쉬노프의 이름으로 <프로이트주의: 비판적 시론>(1927)과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1929)을 출판했다. 이 책들의 진정한 저자가 누구인가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바흐친적 사유의 반향과 공명을 통해 세상에 나온 저작들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왜 자신이 아닌, 친구들의 이름을 빌어 책을 썼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지인들과 연구자들에 의해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본명이 아닌 대명(代名)을 사용한 것 자체를 일종의 정치적 행위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왜냐면 이 세 권의 저작들은 표면적으로 당대 지성계와 문화계의 문제 의식들을 다루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라는 표제를 걸고 있으며, 논의의 배면으로는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와 방법론에 대한 ‘비정통적인’ 논쟁의 씨앗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 사회로 점차 경화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와 공명하는 목소리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따라서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여하간 정치적인 논점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에둘러 말하길 즐겼던 바흐친이 자기 이름으로 낸 책은 겨우 1929년,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문제들>에서였다. 이 책은 1963년 해빙의 분위기에서 개정·증보되어 재출간되고 곧장 국경을 넘어 서구 지식 사회에 지적 충격을 안겨다 주게 된다. 바흐친의 이름과 포스트모던을 연결시키는 접점의 하나가 이 책이다.

기묘한 우연이랄까, 1929년 첫 번째 저작이 출판된 직후 바흐친은 소비에트 당국에 체포되어 카자흐스탄 유형길에 오르게 된다. 이유는 역시 분명치 않은데, 아마도 스탈린의 대숙청 와중에 ‘미심쩍은’ 지식 분자의 하나로 검거된 게 아닌가 싶을 따름이다. 다행히 죽음은 면했지만 당시 중앙 아시아의 황무지로의 유배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하방(下方)된 5년을 보내는 동안 골수염으로 악화된 다리를 잘라내야 했고, 회계와 부기법을 공부하며 사유를 단련했는데, 또한 우연의 기묘함 덕택인지 유형 기간 동안 과거의 친구들은 대부분 충살당하거나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책상물림들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완화되며 바흐친은 집단 농장에서 풀려나 연구와 강의로 되돌아가게 된다. 물론, 모스크바로의 접근은 불허되고 다른 지역 공화국으로 거주지와 활동지가 한정되었으나, ‘지방에서의 삶’은 그가 자신의 사유를 벼리고 표현하는 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론 평범한 문학 교사로 일하거나, 때론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글을 써왔는데 30년대의 괴테와 크로노토프에 대한 논의나 40년대의 라블레에 대한 책이 그것들이다. 특히 <프랑수아 라블레와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 문화>(1965년 출간)는 시간이 갈수록 경탄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현대 철학과 문화 연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탈린 사후, 일군의 문예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소비에트 지성계에 정식으로 복권된 바흐친은 60년대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서구 사회에서도 환영받으며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공식적인 복권이 이루어진 뒤에도, 과거의 사건이든 현재적인 상황이든 여하한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도 회피한 채 1975년 사망한다.

2.

흔히 다성악과 대화주의로 표방되는 도스토예프스키론은 주체 중심적인 근대적 사유에 타자를 적극 도입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문학 작품에서 작가의 세계관과 주제를 대변하는 게 주인공이라면, 전통적 서술 기법에서 그는 자신의 반대자들의 도전에 맞서 투쟁하고 좌절하며 재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작가의 입장을 독자들에게 입증한다. 우리가 주인공의 사상을 작가의 사상과 곧 등치시키거나, 그의 인생 역정에서 작가 개인의 이력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도 그런 탓이다. 김동인이 ‘인형조종술’이라 불렀던 바, 작가의 아바타인 주인공의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런 구도에서라면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은 그의 의지를 꺾는 안타고니스트, 혹은 조력자에 머물거나 기껏해야 부수적인 배경에 그치고 만다. 주인공이라는 주체의 타자로서 그들은 삶의 과정의 생산자라기보다 사용되고 소모되는 도구로서 존재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바흐친의 공적은 이들 타자들이 결코 우연의 대상들이 아님을 보여준 데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상은, 비록 작가의 입장에 근사한 인물이 있다는 게 명시적으로 지각된다 할지라도 그가 주도권을 쥐고 자기 의지를 실현시키는 기관차로 변형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타자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패배하거나 억압되지 않으면서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려고 투쟁한다. 주체의 목소리는 타자의 목소리에 의해 끊임없이 간섭당하고 굴절되고 변형되면서 이 세계를 복속시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타자들의 세계는 결코 주체의 배경이 아니다. 주체는 타자들의 목소리를 잉여적이고 우연적인 것,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분쇄하거나 동화시키려고 애쓰지만, 타자의 이질성은 이질성 그 자체일 뿐 절대 주체의 것이 되지 않는다. 주체와 타자들간의 이 기진맥진한 투쟁이 바로 소설 속의 대화이며, 근원적인 세계 관계란 뜻이다. 설령 전통적인 플롯의 구조를 따라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누군가가 마침표를 찍더라도,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고 모호하며 양보적이다. 주체의 자리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헤겔과 루카치를 따라 소설을 ‘근대의 서사시’라 부른다면, 소설 속 주인공이 타자들을 위압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근대적 서사 체계, ‘큰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무너뜨리는 주장이 된다. 목소리의 상대성과 상호 공존을 내세운 바흐친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영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 있으며, 이것 자체만으로도 도스토예프스키론이 일종의 정치적 담론의 하나였음을 인정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가볼 필요가 있다. 역으로 여기서 바흐친은 화해의 철학자에서 불화의 철학자로 새로이 자리매김된다.

하버마스의 의사 소통 행위론과 비교하면서 바흐친을 상호 주체성의 주창자로 설정하는 관점은 대단히 문제적이다. 삶의 유비로서 소설 속의 인물들은 결코 이성주의적 대화의 지향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화에 참여하고 서로간에 굴복할 수 없는 논리와 수사를 들이대며 목청을 올리는 까닭은 상대방에게 자기 의지를 설득하고 명령하기 위해서이다. 교섭과 타협이 대화의 기본 기술이겠지만, 궁극의 목적은 화해가 아니라 불화, 자기 관철이다. 타자의 목소리들이 가득 울리는 대화주의와 다성악의 세계는 평화롭고 공평무사한 다자간의 공존이 아니라, 절멸시킬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공-존하는, 그러나 끊임없이 물어뜯으며 투쟁하는 현실이다. 그것은 일원적인 척도로 환원되지 않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맞물려 서로를 잠식해대는 ‘지옥도’에 가깝다. 안정과 평온을 희구하는 이들에게 사실 정치와 혁명이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닌가?

타자의 목소리, 그것은 온화하고 부드럽게 우리를 감싸안는 화음이 아니다. 엄마와 친구, ‘우리편’의 목소리는 낯설지 않다. 타자적이지 않다. 나를 거역하는 말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고막을 찢는 굉음과 소음과도 같은 낯선 감각만이 실로 타자적이다. 다성악이 화성(和聲)이 아니며 대화주의가 절충주의나 타협주의가 아닌 것도 그런 까닭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논평했듯, 명령-어들의 무차별한 방사와 투쟁, 혼성이 다성악이며 대화주의의 본래 면목이다. 바흐친이 도스토예프스키론에서 거듭 강조했던 바, 낯선 목소리들은 내게 단지 들리는 것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뒤흔들고 전복하며 변형시킨다. 그런 한에서 ‘네’ 목소리나 ‘내’ 목소리의 구별도 분명치 않으며, 모든 있는 것은 그저 혼합과 혼효된 낯선 사물들의 (목)소리들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끔찍하고 회피하고만 싶은 정치와 혁명의 진상(眞相)이 그것일 테지만, 현실을 이질적인 타자성들이 그침없이 새어나오는 장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이 과정이 아닐까?

3.

박사 학위 논문이라는 다분히 아카데믹한 주제와 절차 속에 제출된 라블레론은, 학제가 요구하는 동일성에 대한 기대와 반대로 타자성의 원천에 대한 탐구에 바쳐졌다. 그런데 이 원천은 결코 타자에 대한 찬미나 존중, 숭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타자성에 대한 역설, 이질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진 혼성성과 다양성의 진원지다. 달리 말해, 라블레론은 다원론을 가능하게 하는 일원론, 일원적인 다원론의 전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흐친에 따르면 서사시는 예로부터 국가와 민족, 거대 공동체의 운명과 결부된 장르다.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아>가 그렇고, <롤랑의 노래>와 <베오울프>, 혹은 <이고리 원정기>와 같은 개별 민족들의 고대 서사시들은 건국과 망국, 영웅들의 공훈과 파멸에 대한 노래들로서 미소한 개인을 전체와 동일시하도록 독려한다. 엄숙함과 필연성, 총체성이 서사시의 주된 정조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부터 이런 서사시의 전통에는 평행적인 이종(異種) 장르가 늘 달라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장르는 우스꽝스러움과 우연성, 파편성을 본성으로 삼는 것으로, 그 자체 독립적으로 존속하지 않고 언제나 서사시적 장르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왔다. 가령 <일리아드>의 자매편처럼 존재하던 것은 <개구리와 쥐들의 전쟁>이란 ‘짝퉁’ 서사시로서 그리스 세계의 대 전쟁을 우화적인 형식으로 우스꽝스럽고 황당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당연하게도, 패망과 영웅들의 죽음이라는 비장미 넘치는 비극이 아니라 웃기고 뜬금없기만 한 이런 ‘아류’들은 ‘걸작’과는 다른 의미에서 널리 알려지고 대접받던 작품들이었다고 한다. 배철수만큼이나 배칠수가 잘 팔리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 패러디적 이종 장르의 존재는 이 세계가 무겁고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휘둘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세계 속의 모든 존재는 가치의 일의성을 부정하고 전복시키는 제2의 가치, 두 번째 존재성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에 결코 단일한 위계에 복속되지 않는다.

소설의 기원은, 헤겔이나 루카치와 달리 고대의 이런 이종 장르의 전통에서 발견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로망스들, 중세의 기사담이나 모험담에 연원하고 있으며, 오늘날 문학사의 유구한 걸작들로 평가받는 작품들과는 상이한 장르적 흐름을 형성한다. 요긴하게 기억해둬야 할 점은 소설의 이와 같은 소수적 전통은 현대 문예학의 원칙들, 즉 엄밀한 작법이나 구성적 원리에 기대기보단 (허무맹랑하고 빈틈이 많은) 상상력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의 문예학자라면 이지(理智)의 미발달로 폄하했을 일이지만, 바흐친에게는 오히려 서사의 본성이란 본디 그런 것, 정합적인 논리로 봉해지기보다 끊임없이 덧붙여지고 증식하는 상상들에 있다. 상상들은 항상 다른 상상들의 끈과 이어지고 그것들과 포개지거나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며 다른 형태로 분기해가는 분열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민중의 욕망이란 게 핵심이다. 지배의 논리로 볼 때 얼토당토 않은 허구, 아름답고 조화롭게 구축된 이성의 건축물에 낙서하고 오줌을 싸며, 삽질하는 행위는 급진적인 해체와 파괴의 시발점이 되기에 위험하다. 모든 기성의 것들을 보존하고 재현하려는 지배의 관점에서 가장 해악스런 것은 무기를 든 혁명가들이 아니라, 주변을 얼쩡대며 광대짓을 하거나 낯선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우스개꾼들일 것이다. 그들이 남긴 농담 한 마디, 오줌 냄새와 부삽 한 자루도 권위를 침식하고 권력을 희롱하며 끝내 뒤집어 놓으려는 민중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다. 라블레 소설의 모티브이자 역사적 사례로서 카니발은 이렇게 도락과 봉기의 양가적인 지점을 잘 드러낸다.

봉건 귀족들과 사제들은 순치되지 않는 민중의 이교성(異敎性) 다스리기 위해 축제를 허락한다. 축제는 뒤집어진 세계이며 탕음난무가 판을 치는 부조화, 외설의 무대이다. 거기서 왕은 욕지기와 침세례로 모욕당하지만, 거지와 광대는 왕좌에 앉아 마음껏 먹고 마실 것을 명령한다. 포식과 폭력, 음행이 허락되는 시간이 열린다. 경건한 사제라면 ‘현세에 펼쳐진 지옥도’에 탄식할 일이지만, 민중들에게는 억압과 공포가 사라진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의 삶이 시작된다. 낯익은 국가와 교회와는 다른 세계, 다른 삶의 실현은 카니발을 ‘허락된(/구성된)’ 공간을 넘어 ‘모든 것을 허락하는(/구성하는)’ 자동사적 시간으로 이끄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중세 민중의 카니발은 문화 산업의 이론가들이 비판하는 권력의 통제 장치를 훌쩍 넘어선다. 허락되고 조직된 것으로서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통제되지 않고 무목적적으로 분기해 나가는 힘으로서 카니발은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은 그 힘의 구체적 표현이다. 웃음은 강렬한 비하와 격하의 벡터를 그으며 나타나는데, 그 어떤 엄격한 통치 체제라도 웃음의 대상이 된다면 이미 부식하기 시작하고 균열과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선망과 존경의 미소가 아니라 조롱과 패러디의 웃음은 모든 견고한 것들을 대기 중에 녹여없앨 것이다! 독재 국가의 지도자들이 텔레비전 토론과 같은 공식적 장치들의 비판은 견뎌내도 떠도는 비웃음이나 희화화, 농담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아닐까? 그러나 웃음은 그 누구의 소유주를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을 넘어선 전체로서의 민중이 익명적으로, 나아가 비인칭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브이 포 벤데타>에서의 무수한 가면을 쓴 얼굴들이며, ‘미네르바’에게 열광적으로 호응하고 그 힘을 재생산하던 누리꾼들의 연대이기도 하다. 각자가 아닌 모두로서 현존하는 힘으로서의 민중과 웃음.

문화론을 통해 암유적으로 제시되는 바흐친의 정치와 혁명에 관한 입장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라블레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함은 서술상의 부조리와 역설들일 뿐만 아니라 그 신체적 이미지의 잔혹과 위험에 있다. 심신의 긴장을 덜어주고 힘겨운 일상의 위로하는 소프트 코미디가 아니라, 본격 하드 코어이자 포르노적 외설성이야말로 웃음의 폭발력인 까닭이다. 라블레의 세계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신체는 갈가리 찢어지고 요리되고 잡아먹히며 소화된다. 물론, 그것은 재생과 창조라는 순환을 밟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탄생’을 통해 유지되는 것은 삶/생명 그 자체이지 인격적인 개인의 동일성이 아니란 것이다. 창조를 위해 내게 익숙한 사회와 내 목숨을 던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사회, 내 목숨이 (세대간의 연장을 통해서) 이어진다는 믿음에 입각해 있을 때가 많다. 조국을 위해, 민족과 사회를 위해 희생하라는 권유(?)는 바로 그 신념을 나타내지 않는가? 하지만 만일 인간 아닌 종을 위해, 이 사회와는 다른 공동체를 위해 사멸해야 한다면? 동일성/정체성에 매달려 있는 한, 우리는 혁명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게 마련이다.

라블레론이 정치와 혁명에 관해 역설하는 것은, 이 과정들이 피와 폭력을 끌어들이고 우리가 아는 익숙했던 것들이 파괴되고 소진할 것이란 사실, 그러나 그 결과로서 다른 존재와 다른 삶의 가능성이 싹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쉬워할 것은 없다. 해체는 엔트로피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며 창조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를 (-)가 아니라 끊임없는 (+)의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동일성/정체성이란, 마치 끓는 수프의 공기 방울들 같이, 그 구성의 와중에 유독 솟아올라 지표화된 하나의 고원일 뿐이며, 곧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새로이 분기해 나타날 고원의 전조일 따름이다. 라블레가 중세와 르네상스의 민중들 가운데 잠깐 솟아올라 그들의 힘을 표현한 작품을 남겼던 것처럼.

4.

라블레론에 대한 비평사도 굉장히 흥미롭다. 다분히 독신적인 유물론적 분위기에 대경실색한 사람들도 있고, 조화롭게 포장된 르네상스의 이미지에 온갖 똥칠을 퍼부었다고 분노한 이들도 있다. 또한 피와 폭력의 무대로서 카니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바흐친을 스탈린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재생과 창조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파멸해도 좋다는 식의 해석은 결국 스탈린이 만든 소비에트 사회의 풍경이 아니었느냐는 물음이다.

정치적 문제로부터 평생 간격을 두던 바흐친이지만, 그의 사유로부터 읽을 수 있는 정치와 혁명의 문제 의식은 과격할 만큼 급진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라블레, 두 문인을 두고 연구한 결과만을 읽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피와 폭력, 익숙하고 동질적인 것들을 무너뜨리는 혁명에 대한 암유임을 충분히 직감하는 탓이다. 그것은 사유와 행동, 정치적인 것에 있어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며, 혁명의 극한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만약 미리 한계지어진 정치의 울타리 속에서 배회하거나 서로 명예롭고 조화롭기 만한 혁명의 평화를 누리는 데 그친다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런 자위와 자기 만족은 동일성/정체성을 지키려는 보수적 본능에 불과하지 않은가?

바흐친에게 혁명은 자기성의 목적 의식을 넘어설 때, 그리고 자기 존재의 파멸을 감수할 때 기꺼이 맞아들일 수 있는 과정이다. 대화란 그 과정에 신체적으로 섞여드는 행동이며, 웃음은 휘발성 강한 폭탄으로서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의 모든 주어진 경계들을 뒤섞고 무화시키며 새로(/다르게) 긋는 힘이란 것을 역설한다. 모든 카니발의 축제가 그렇듯, 이 정치와 혁명의 과정은 단지 관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거기 뛰어듦으로써, 자기 변형의 맹렬한 소용돌이에 휩쓸림으로써 비로소 도래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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