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나의 술 이야기 2

- 김융희

쓰기가 껄끄러웠던 사연

내가 애주가임을, 특히 막걸리를 좋와함을 “나의 술 이야기1”에서 밝히면서 나의 술 이야기를 몇 차례 더 쓰겠다는 생각을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해오고 있다. 반 세기도 넘는, 그것도 거의 매일을 함께 했던 술과 더불어 지내온 경험담을 꺼리로 삼아 몇 차례는 충분히 쓸꺼리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다른 쓸꺼리가 막히면 그동안 겪고 생각했던 나의 술 이야기를 꺼내어 써먹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생각을 아직 잊었거나 부러 외면하여 회피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지금까지 거의 반 년이 지나도록 그냥 지내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실제로 술 이야기를 꺼내어 쓰기를 몇 차례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결국은 쓰기를 포기하면서 어언 몇 달을 지냈다. 분명 쓸 꺼리는 있다. 그 꺼리중에는 제법 흥미꺼리도 없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실제로 술 이야기를 꺼내어 쓰기를 몇 차례 시도하기도 했었고, 두어 번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을 내 보이진 못하고 놓아둔 채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 망설임이 옷장의 많은 옷들 중에서 마음에 든 옷을 고르거나, 잘 차려진 음식상에서 음식을 고르는 그런 사치스러운 주저로움이 아닌, 나의 술 이야기 꺼리는 남에게 내보이기가 매우 난처한 입장의 괴로운 처지인 것이다.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오래도록 함께 한다. 또한 인류가 가진 특권 중의 하나가 술을 담가 먹는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떻든 술과 인간은 긴 역사와 더불어 함께 하면서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밥을 제외하고서 술처럼 우리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밥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그러나 술은 밥처럼 그렇게 중요한 음식은 아니다. 없어도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오히려 술 때문에 삶에 지장을 초래하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만은 것이 술이다. 그럼에도 별로 무익한 술을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술이다. 두보는 濁醪有妙 “탁주에는 묘한 이치가 있다”했지만, 아무튼 술이란 묘한 음식물이다.

밥처럼 일반적으로 음식물은 먹으면 조용히 장을 거치며 소화되면서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그 공급된 영양으로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술은 생명과는 별로 무관하면서도 먹을 때부터 입은 걸쭉하여 바빠진다. 마시면서 안주거리를 함께 해야하는 걸쭉한 먹거리는 입놀림을 바쁘게 하며, 또 마시면서 점점 말들이 많아지며 목소리는 커지고 소리도 요란해 진다. 마시는 양이 늘어 많아지면 술은 입을 사로잡고 머리를 흐리며 몽롱하게 하여 결국엔 온몸을 사로잡는다. 술은 결코 홀로가 아닌 더불어 주위를 깐작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술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있다. 심하면 “술 먹는 개”라고도 했다.

술 좋와하는 사람 치고 실수를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내게도 실수의 경험이 없지 않다. 오래전에 있었던 경험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챙피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는 속상한 경험도 나는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속상한 경험이 술 이야기의 대부분으로 쓸꺼리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 경험을 꺼내어 이야기를 만들고 보니 그것이 남에게 내보이기에는 적절치 않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망설이는 난처한 문제였든 것이다. 좋겠다고 쓰고보면 자기 잘났다는 알량한 이야기요, 술 마시고 하는 실수지만 사람짖이 아니란 생각에 그걸 꼬집다 보면, 술마시는 즐거움의 술의 특성을 막아버리는 꼴을 보여, 무슨 군자같은 소리로 잠꼬대냐는 비아냥 꺼리가 분명해 깨름하며 그것이 나의 주저로움인 것이다. 이런 일들로 나의 술이야기는 계속되지 않고 망설임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술만큼 마시어 즐거움을 준 것이 흔치 않다. 항상 마시어 즐겁고 흥겨운 그런 술일지라도 막상 즐겁고 흥겹게 들기란 힘든 것이 또한 술이다. 흥겹고 호탕하여 사뭇 도연한 기분의 술이건만, 술에는 늘 그 복병이 있게 마련이다. 그 복병이 이른바 주정인 것이다. 채면을 중요시하는 인간이기에 맨송한 기분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을 일부러 술을 마셔가면서 하는 제법 의도적인 주정부림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떻든 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런 저런 약간의 비정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꺼리로 삼는 이야기이려니, 호탕하고 흥미로워야 할 술이야기가 술의 속성처럼 깐작거리는 세설이 되어 민망스럽다. 좀더 생각의 여유가 필요하다.

분명한건 술이란 많이 마시는 게 자랑이 아니라, 술을 마심으로 얼마나 즐거웠느냐이다. 오늘도 술을 많이 드는 주객이 아닌, 풍류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술을 즐기는 애주가는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객기나 주정의 꺼리가 아닌 건전한 술이야기를 위해 계속 노력해 볼 생각은 여전하다.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중요한 건 ‘술을 마심으로 얼마나 즐거웠느냐!’ 가 아닐까?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강쌤의 술과 더불어 즐거웠던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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