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 은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초>, 문학과지성사

사는 일에 미련이 없다. 없었다. 그말을 예사롭게 해댔다. 진심이었다. 자식 두고 죽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쯤이면 나한테는 생의 마지노선까지 다녀온 거다. 한편으론 죽음이 목전에 닿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팔자 좋은 말잔치 같아 부끄러웠다.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아니다. 삶의 밀도에 연연하지 길이엔 관심없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명제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이론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사는 동안 존재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만 순한 양처 럼 주어진 시간에 복종하고 싶다.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질 길. 그저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전화할 때마다 ‘아침에 눈 뜨면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빨리 가고 싶다’는 대사를 반복하는 시어머니의 말은 진심일까. 살고 싶다는 표현에 비가 새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어머님의 말은 왜 반어법이라고 단정했을까. 늙은 자의 말, 그것은 생의 갈망도 생의 포기도 전부 생의 미련으로 번역했다. 세련된 투사. 내가 생에 미련이 많았나보다. 합정역 2번 출구 파리바게트 앞, 아침 10시부터 휴지통에서 먹을 것을 뒤지는 할아버지는 지금 살고 싶을까, 죽고 싶을까. 배고프세요. 빵을 들고 빛처럼 사라진다. 살기 위해서 죽고 싶어져야 하는 생이 지긋지긋 할 것 같다. 아무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흔을 앞둔 어느 목수. 전란에 태어나 고생이 극심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최장 5일까지 굶어봤다고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흔치 않은 귀결. 아니 보상. 요즘은 운전기사가 모는 에쿠우스를 탄다. 대궐같은 전수관 지어 제자도 기르고 기부도 한다. “사는 동안 다 퍼줄 테니까 하나라도 더 배우라” 제자에게 죽비처럼 호통친다. 100% 일본어인 건축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유의미한 작업도 진행한다. 생의 의지가 만발한다. 인터뷰 말미 그가 고조곤히 이야기한다. “사람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 내가 한 가지 욕심이 생겼어… 더 좀 살았으면 좋겠어..” 옛날엔 살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돈도 쉽게 벌고 일이 잘 되니까 오래 살고 싶다며 내 눈을 쳐다본다. 애원하듯, 늙은이 욕하지 말라는 듯. 처마 끝에 하얀 구름이 흘러갔다. 연민 없이 십오초 정도가 흘렀다. 오래 살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는 어르신, 처음 봤다. 나도 오래 살고 싶어졌다. 생에 매달리지도 않고, 생에 발목 잡히지도 않고 양껏 사는 법이 있을 것 같다.

응답 1개

  1. 곰바리말하길

    꿈보다 해몽이라고 글이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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