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북문을 나서니 근심이 가득

- 정경미

出自北門 憂心殷殷 북문을 나서니 마음에 근심이 가득
출자북문 우심은은
終窶且貧 莫知我艱 어렵고 가난하거늘 나의 어려움 알아주는 이 없네
종구차빈 막지아간
已焉哉 어쩔 수 없다
이언재
天實爲之 謂之何哉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말한들 무엇하리오
천실위지 위지하재

王事適我 政事一埤益我 나라 일 나에게 돌아오고 정사가 모두 내게 밀려드네
왕사적아 정사일비익아
我入自外 室人交徧謫我 내 밖에서 들어가면 집안사람 돌아가며 나를 책하네
아입자외 실인교편적아
已焉哉 어쩔 수 없다
이언재
天實爲之 謂之何哉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탓한들 무엇하리오
천실위지 위지하재

王事敦我 政事一埤遺我 나라일 내게 던져지고 정사도 모두 내게 맡겨졌네
왕사퇴아 정사일비유아
我入自外 室人交徧摧我 내 밖에서 들어가면 집안사람 돌아가며 나를 탓하는구나
아입자외 실인교편최아
已焉哉 어쩔 수 없다
이언재
天實爲之 謂之何哉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말한들 무엇하리오
천실위지 위지하재

-시경詩經 패풍邶風 「북문北門」

북문北門,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동쪽이나 남쪽은 해가 잘 드는 곳이다. 이에 비해 북쪽은 해가 잘 들지 않는 음지陰地이다. 그러니 ‘북문’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제목만 봐도 우울한 정서의 시이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뜻을 얻지 못하고 낮은 벼슬로 가난하게 사는 하급관리가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탄식한 노래이다. 말단 관리직에 있다 보니 궂은 일은 모두 나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지만 늘 가난해서 집안 식구들에게 타박을 받는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요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내 친구 남편은 이번에 승진했다는데 당신은 뭐하는 거야! 아버지 바지 무릎이 다 해졌어요 새 옷 사줘요! 등등.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궂은 일 도맡아 하는 것도 고달픈데 집안 식구들마저 이렇게 닦달을 하니 이거 완전 살맛이 안 난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두어라, 이게 다 운명이려니···”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볕이 잘 들지 않는 곳-권력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탄식하면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내용의 시라고 할 수 있다.

出自北門 憂心殷殷 북문을 나서니 마음에 근심이 가득
終窶且貧 莫知我艱 어렵고 가난하거늘 나의 어려움 알아주는 이 없네
已焉哉 어쩔 수 없다
天實爲之 謂之何哉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말한들 무엇하리오

‘어렵고 가난하거늘[終窶且貧]’이라고 할 때 ‘높고 좁을 구 : 窶’ 자를 쓴 것이 재미있다. 다락 같은 곳이 연상된다. 뜻은 높지만 세간 없이 궁색하게 사는 모습.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선비-지식인은 대체로 가난하다. 우리는 어떨 때 책을 읽는가. 크게 두 가지 경우이다. 첫째, 일을 얻기 위해서. 과거 시험 합격하기 위해 선비들은 책을 읽는다. 둘째, 일이 없어서. 벼슬자리 얻고 나서는 일하기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은 주로 벼슬자리에서 쫓겨난 사람이나 벼슬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다. 유배지에서 많은 책들이 읽히고 씌어졌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료! 하면서 산속에 숨은 은자隱者들은 세상 눈치 안 보고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는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과 일자리가 없는 사람. 그러니 책 읽는 사람은 주로 가난할 수밖에 없다. 가난은 주로 물질적 궁핍을 뜻한다. 선비에게 가난은 물질적 궁핍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을 뜻한다. 나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해주는 군주를 만났을 때 선비는 비로소 자신의 힘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때 돈과 명성도 따라온다. 그렇지 못할 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때 선비는 세상에 쓰이지 못한 채 잊혀진다. 이처럼 옛날 사람들에게 부귀와 빈천의 문제는 재물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가 못 만나는가 하는 문제-‘지知’의 문제와 연관이 된다.

王事適我 政事一埤益我 나라 일 나에게 돌아오고 정사가 모두 내게 밀려드네
我入自外 室人交徧謫我 내 밖에서 들어가면 집안사람 돌아가며 나를 책하네
已焉哉 어쩔 수 없다
天實爲之 謂之何哉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탓한들 무엇하리오

지知의 문제는 『논어論語』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논어, 학이 1) 옛날 선비들에게 부귀와 빈천의 문제는 지知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고귀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나의 능력과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뜻을 얻게 된다[得意]. 그래서 마침내 무명無名의 어둠에서 벗어나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세상에 나의 힘과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이름을 얻게 된다[立身揚名]. 이른바 출세해서 가문을 빛낸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많은 선비들이 재야에 묻혀 수양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러나 끝내 때를 만나지 못하여,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하여 출세를 못 해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선비라고 『논어』는 말한다. 왜냐. 공부의 목적이 입신양명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의 더 큰 목적은 완성된 인격체-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성인-되기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쉼없이 계속하는 과정이다. 출세했을 때는 세상을 경륜하며, 재야에 있을 때는 자기 수양을 한다. 처해진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적절한 공부를 한다. 따라서 출세 못 했다고 “나를 왜 알아주지 않는가”라고 세상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입신하는 방법을 걱정할 것이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주게 되도록 애써야 한다.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논어, 이인 14)

王事敦我 政事一埤遺我 나라일 내게 던져지고 정사도 모두 내게 맡겨졌네
我入自外 室人交徧嶊我 내 밖에서 들어가면 집안사람 돌아가며 나를 탓하는구나
已焉哉 어쩔 수 없다
天實爲之 謂之何哉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말한들 무엇하리오

이 시의 화자는 실업자, 지식인 백수는 아니고, 권력의 주변부 미관말직에 종사하는 하급관리인 듯하다. 물도 하류가 탁하듯이 사람들이 모두 피하는 궂은 일은 주변부 사람들에게 몰린다. 그래서 『논어論語』에서 군자는 상류에 거하지 하류에 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군자는 하류에 거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류에 있으면 천하의 악이 모두 돌아온다[君子惡 居下流 天下之惡 皆歸焉]” (논어, 자장 20) 하지만 누가 하류에 살고 싶어서 사는가! 상류가 있으면 어떨 수 없이 하류가 있는 법. 권력의 중심이 있으면 주변부도 반드시 생기게 마련 아닌가. 햇볕이 잘 드는 쪽이 있으면 그늘, 음지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 아닌가. 나는 어쩌다 보니 북문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 궂은 일이 모두 나에게 밀려온다. 힘들게 일하지만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고달프고 서글픈 삶. 집에 가면 식구들이 따뜻하게 맞아주겠지. 쉴 수 있겠지. 하고 갔는데 웬걸! 식구들의 무시와 냉대가 장난 아니다. “돌아가면서 나를 탓한다[室人交徧嶊我]” 겨우 북문이나 지킨다고. 왜 더 좋은 지위를 얻지 못하는가. 부귀와 명성을 차지하지 못하는가. 식구들 호강시키고 가문을 빛내지 않는가. 밖에서 실컷 고생하다 집에 들어와서 식구들에게 또 이런 박대를 받으니 이 사의 화자는 참으로 가련하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말한들 무엇하리오! [已焉哉 天實爲之 謂之何哉]”라고 하면서 탄식하고 체념하는 가운데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人不知而不慍]’, 과연 진정한 선비라 할 만하다. 말단 관리의 고달픈 생활은 「소성小星」에서도 읽은 바 있다. 별 보고 나와서 별 보며 들어가는, 수시로 야근까지 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이것은 운명이 다르기 때문이다[寔命不同]”라고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 「북문北門」도 바로 이러한 운명애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응답 1개

  1. 비포선셋말하길

    그냥저냥 공부에 매달리긴 쉬워도 처해진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적절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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