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골짜기의 익모초도 말라버렸네

- 정경미

시경詩經 왕풍王風에는 유랑민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시가 많다. 왕풍은 주나라가 수도를 동쪽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이후의 노래이다. 이때 주나라는 천자의 나라에서 일개 제후국으로 축소된다. 그러면서 중국 천하가 많을 때는 200개에서 300개의 나라로 삼분오열되어 각축전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진다. 요堯 · 순舜 · 우禹 · 탕湯 · 문文 · 무武 · 주공周公으로 이어지는 고대 성왕聖王들의 덕치德治가 완성된 문물제도로 꽃피었던 주나라가 망하고 세상은 “힘과 힘의 대격전” 권력 다툼의 살벌한 전쟁터가 된다. 이때 어진 군주의 덕으로 살았던 많은 백성들이 망국의 유민이 되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농사 지을 땅은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늘상 이런저런 전쟁에 끌려다녀야 했다. 이러다 보니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런 당시의 삶이 시경 왕풍에 절절한 노래들로 전한다. 그중에 한 편-「중곡유퇴中谷有蓷」라는 시를 보자.

中谷有蓷 暵其乾矣 골짜기의 익모초 가뭄에 바짝 말랐구나
有女仳離 嘅其嘆矣 여자가 이별을 한지라 깊은 한숨 짓네
嘅其嘆矣 遇人之艱難矣 깊게 한숨 짓는 것은 어려운 때를 만났기 때문이라

한 여자가 깊은 한숨을 짓고 있다. 이런 여자의 모습은 마치 가뭄에 바짝 말라가는 익모초와 같다. 익모초는 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다. 어지간해서는 마르지 않는 익모초가 바짝 말랐다니! 얼마나 가뭄이 심하길래! 혹독한 환경 때문에 생명력을 상실해가는 익모초의 모습과 이별 때문에 깊은 슬픔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 짝을 이룬다. 시경의 세 가지 표현 방법-흥興 · 비比 · 부賦 중에서 ‘흥興’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자는 왜 이별을 했을까? 어떤 이별을 했을까? 남편의 마음이 변해서 쫓겨났을 수도 있고,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 시에서 여자의 이별은 어떤 경우인지에 대한 힌트는 ‘어려운 때를 만났기 때문이라[遇人之艱難矣]’라는 구절이다. 아, 여자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별을 하게 되었구나! 그런데 ‘어려운 때’라니! 어떤 상황을 어려운 때라고 하는 것일까?

中谷有蓷 暵其脩矣 골짜기의 익모초 그 긴 것도 말랐구나
有女仳離 條其嘯矣 여자가 이별을 한지라 긴 한숨 내쉬네
條其嘯矣 遇人之不淑矣 긴 한숨 내쉬는 것은 불행한 때를 만났기 때문이라

‘어려운 때[艱難]’라는 구절은 ‘불행한 때[不淑]’라는 말로 바뀐다. 비슷한 뜻의 다른 말이다. 이 시에서 어려운 때, 불행한 때라는 것은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주희朱熹는 이렇게 설명한다 : “흉년에 기근이 들면 부부 사이도 각박해져서 서로를 버리게 된다. 흉년 기근은 왜 드는가. 정치를 잘 못 해서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는가 없는가는 부부 사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상살이가 편안하면 부부 사이도 화목하다. 세상살이가 혹독하면 부부의 정도 각박해져서 헤어져 살게 된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여자. 이별을 당해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여자의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익모초가 바짝 말라가는 것은 가뭄 탓이지 익모초의 탓이 아닌 것처럼 부부가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은 가난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은 왜 생기는가. 힘과 덕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이 시를 “주周나라를 민망히 여긴 시詩이다” [中谷有蓷 閔周也 夫婦日以衰薄 凶年饑饉 室家相棄爾] 라고 하였다.

中谷有蓷 暵其濕矣 골짜기의 익모초 습지의 것도 말랐구나
有女仳離 啜其泣矣 여자가 이별을 한지라 훌쩍이며 우네
啜其泣矣 何嗟及矣 훌쩍이며 울지만 탄식한들 어찌 하리

주나라의 덕이 쇠퇴하면서 세상살이가 힘들어진다. 가난 때문에 부부 사이도 멀어진다. 그래서 이별을 당해 한숨 짓고 있는 여자가 가뭄에 바짝 말라가는 골짜기의 익모초와 같다고 이 시는 노래하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과 불행을 개인의 감정이나 기질에 환원시키지 않고 사회적 조건 속에서 풀이한 해석이 재미있다. 그렇다! 이별은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라기보다 ‘정치적인 사건’이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부부 사이도 멀어진다. 고대 사회에서 지금 세상살이가 어떤가 하는 것, 정치의 득실得失은 부부 사이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앞에서 한숨 짓던 여자가 이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운다. 이별의 고통이 극에 달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여자가 이별을 당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롭다’ 정도의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다. 생존의 근거,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다. 실업자, 망국의 유민이 되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 길이 막막하니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울 수밖에.

「중곡유퇴中谷有蓷」는 버림받은 여자의 슬픔을 가뭄에 바짝 말라가고 있는 익모초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여자의 이별은 주나라가 붕괴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유랑민들의 고달픈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시 외에도 전쟁터에서 돌아와 보니 나라가 없어지고 내 살던 곳은 피와 기장만 황폐하게 자라는 폐허가 되었더라고 탄식하는 시 「서리黍離」, 가난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남을 아버지라 부르고 남을 어머니라, 형이라 부르는 현실을 탄식한 시 「갈류葛藟」와 같은 시경 왕풍의 시들에서 우리는 개인의 감정이라는 것이 지극히 정치적인 사건임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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