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글라바 코리아

내 고향, 김포

- 소모뚜

올해 초
나에게 김포 지역 다문화 강의를 맡아 달라고 김포이주여성 센터 소장님께서 연락이 왔다.

김포…
95년도. 내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 8년 동안 일했던 곳이다.
그때는 김포읍 이였었는데 이젠 김포시로 변했다.
내가 일했던 곳도 그때 작은 마을 같았는데 이젠 높은 건물들로 꽉 찬 동이 됐다.
마을버스밖에 안 다녔던 그 곳에 이젠 커다란 버스들이 정신없이 다니고 있고
좁았던 도로도 이젠 지하 지상 도로로 서로 눈치 보필 없이 바꿨다.
95년도부터 2003년까지 8년 동안 내가 일했던 언덕에 있는 작은 회사도 이제 어떻게 됐을까. 너무 궁금해서 김포 첫 강의 끝난 후 거기로 찾아 가봤다.

오랫동안 살았던 곳인지
내가 지냈던 도로,
내 친구들이 일했던 공장,
외국인들하고 같이 목요하기 싫다는 한국인들의 항의 때문에 우리를 거부했던 사우나,
회식 할 때 늘 갔던 고기 집 등등
하나하나의 앞에서 서서히 지나 갈 때마다 왠지 애인과 첫 만남을 하러 갈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은 슈퍼도 큰 슈퍼로 변했고 늙은 아주머니도 늙은 할머니가 되셨다.
내가 일했던 공장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자 심박 수가 더욱더 빨라진다.
참 신기하다.
15년 전 김포에 처음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그때 2명의 아주머니가 김포에 있는 내가 일할 곳으로 승용차로 데려다 줬다.
높은 건물. 재밌을 것 같은 곳이 많은 서울을 떠나 논밭 밖에 없는 김포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19살 어린나이에 시골 같은 곳보다 볼게 많은 서울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나는 서울에 꼬박꼬박 올라가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 공장에 놀러 갈거나, 동대문시장이나 광화문교보서점 등에 구경하러 갔었다. 아마 한국 드라마 에서 본 대도시에 거주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살게 된 어린 결혼 이주여성들도 나와 같은 기분일 것 같아. 누가 재미없는 곳에 살고 싶겠나.
드디어 도착.
내가 8년 동안 일했던 일터, 먹고 잤던 집이 있는 공장.
이젠 이미 이사 가버려서 공장은 완전 폐쇄 상태다.
나는 한참동안 공장 앞에 서 있었다.
공장 내 내가 일했던 자리. 내가 생활했던 낡은 집. 출입국단속반에 잡혀간 내 소중한 친구들이 열심히 일했던 자리. 하루에 15시간 이상 우리와 함께 수고했었던 낡은 기계. 이젠 쓸모없어서 버리고 갔네.
우리공장. 종이 상자를 만든 작은 공장.
이곳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일하러 오지 않았던 곳 이였다.
사장님의 동생도 며칠 일하다가 그만뒀고 일이 아주 힘들다는 선박에서 일했던 내 친구도 일주일 일하다가 말없이 도망갔던 이 곳. 그는 나한테도 왜 그 지옥 같은 공장에서 계속 있냐고 했었다. 그의 질문에 내 대답은 아주 단순했다. 첫째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쁘지 않아서. 둘째 월급 제때 줘서. 셋째 힘들어서 포기한다면 더 이상 해 낼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넷째 내 역사에 포기했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원치 않아서…

하지만 거기서 계속 일하게 된 이유 중 큰 이유하나는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 할 곳은 그런 곳 밖에 없다는 것. 또한 그런 곳들의 필요성 때문에 우리들이 한국에 들어 와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도, 이주노동자들도 아무도 오랫동안 일을 해주지 않아서 나는 아주 일 잘하는 내 친구3명을 회사에 소개 해줬고 나와 내 친구들의 노력함으로 작은 공장이 큰 공장으로 변했다.

6년 후 나도 주임이 됐다. 나보다 3년 늦게 회사에 들어온 내가 일을 가르쳐줬던 한국인 후배가 계장이 됐다. 내 후배이지만 그는 한국인이니까 그게 가능 할 수 있다고 마음 편히 생각 해 줬다. 하지만 그는 그 후에도 나에게 일을 계속 배워가면서 했었고 가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그러 때마다 나는 참 불편했다.

내 키만한 입구를 가진 작은 공장에서 큰 공장이 되어 우리 사장님도 사장다운 사장이 됐다. 그는 새벽에 일이 끝나고 야식 할 때마다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전에 내가 데려온 친구들이 일이 힘들어서 그만둘 때마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친구들이 가도 나는 오랫동안 여기서 있어라. 내가 버마갈 때 뭘 해주겠다고 진지한 모습으로 약속 했다. 나는 그 뭘 해주겠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약속 때문에 거기서 8년 동안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장님에게 정도 들고 나에게 형제 같이 잘 해 준 한국 분들, 나 때문에 참고 일하고 있는 내 친구들 때문이다.

내가 일 잘 한다는 소문이 나서 우리공장에 방문한 몇 몇 사장님들은 나에게 다가와 30만원 더 줄 테니 우리 회사 와서 일 해주겠냐고 물어 볼 때마다 나는 거부했었다. 왜냐면 돈 때문에 정을 끊고 좋은 친구들을 배신하기 싫어서 그랬다.
하지만 우리 사장님은 약속을 안 지켰다.(2부에서 계속됩니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하지만 우리 사장님은 약속을 안 지켰다. 음, 다음 호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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