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시집

<가재미> 뒷표지글 / 문태준

- 은유

비오니까 여러모로 살겠다. 덥지 않아 살겠고, 책 읽기 좋아 살겠다. 철지난 유행가 싱크로율도 100%다. 올만에 김수철 <정녕 그대를>이랑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들었다. 김수철은 훌륭한 가수다. 가사와 곡조와 음성이 조화롭다. 밤 깊자 빗소리 커튼 삼아 골방모드 됐다. 비교적 행복하다. 긴 원고 한 편 쓰고나니 육신이 고되다. 삶의 진액이 빠져나간 것을 채우려 시집이 놓인 책꽂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거기가 내 우물가다. 한 권 뽑아서 아무데나 펴서 읽어본다. 이 어둠, 이 바람, 이 허함, 이 고요에 응하는 시를 제발 제발 만나길 염원했다. 문태준의 <가재미>가 눈에 들었다. 이리저리 매만지다가 뒷표지글을 봤다. 아, 그랬었다. 그 때 서점에서 이걸 읽고 놀래서 가슴에 포갰었다. 난 아름다운 책을 보면 일단 안아본다. 갖고 싶어서. 하나가 되고 싶다. 이 언어들이 내몸에 살면 좋겠다. 얼마전 새로산 노트를 꺼내서 썼다. 잘 쓰고 싶었는데 오타가 있다. ‘이것이 모자랐음을 알게 된다’인데 ‘보게 된다’라고 썼다. 고치지 않기로 한다.

결을 맞추는 시간. 왠지 요즘 나의 속도가 못마땅하다. 책 읽는 속도, 밥 먹는 속도, 실망하는 속도, 커피 마시는 속도, 문자에 답하는 속도, 글을 쓰는 속도, 눈물 나는 속도, 책을 사는 속도, 신경질 내는 속도, 그리움에 물드는 속도, 죄다 너무 빠르거나 느린 속도만 있다. 언젠가 속도에 대한 미약한 자각 이후 한조각 구름 떠가듯 살려했는데 그랬더니 게을러진다. 중간이 없는 인간인가 나는.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에 허천난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지지 않는줄 알았다. 사는 게 서툴었다. 내 마음 얼마나 얼뜨고 거칠었나. 들볶았고 들볶였다. 물에 녹지 않은 미숫가루처럼 둥둥 떠다니는 감정의 건더기가 사래처럼 목에 걸린다. 홀로 있는 시간에 이 결말을 생각하느니 슬픈 일이다. 삶의 속도 개선. 결에 따라 섬세하게 살피고 헤아려서 어떤 일은 느린 가락으로 어떤 건 빠른 템포로 살아야 한다. 이상은에게 삶은 여행. 나에게 삶은 숙제. 사랑하는 것들과 결을 맞추는 연습. 그리고 얻어온 것들의 본래자리를 기억하는 노력. 궁극에는 돌려보내야할 것들과 이별하는 연습. 비에다 대고 손가락 걸어보는 밤.

응답 2개

  1. 사나운 대지를 달리는 말말하길

    ‘얻어’ 오려는 수고 없이 ‘받아’내려고만 했던 부끄러운 마음..
    처음부터 내 것이였던 건 하나도 없는데 또 왜 그토록 부여 잡고 있었는지..
    연체료 더 쌓이기 전에 돌려 주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2. 깊은밤말하길

    시가 두편이 올라왔군요 깊은밤 생각할수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