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부당거래

- 황진미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가 유령처럼 배회한다. 왜 아니겠는가? ‘시비 걸려는 게 아니구요…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요…정의가 뭔가요? 혹시 먹는 건가요?’ 묻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정의가 쌈 싸먹는 것인지, 물 말아먹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진 대한민국에서 그 질문의 대극에 영화 <부당거래>가 놓인다. 물론 영화가 ‘정의란 무엇인지’를 알려주진 않는다. 대신 ‘정의란 무엇이 아닌지’는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지금 왜 하필 그 질문이 대나무 숲의 바람처럼 윙윙거리는지 알게 해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스폰서 검사는 요정에서 빨대 짓을~ 경찰은 배우 써서 사건해결~’

<사생결단>에서 보았던 ‘범죄자 위에 부패형사, 부패형사 위에 비리검사’의 먹이사슬을 기억하는가? <부당거래>는 이를 뼈대삼아 더 복잡하게 물고 물리면서, 서로의 약점을 틀어쥐고 협박과 협잡을 교환함으로써 자본과 권력의 그물코를 형성해나가는 거대한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동연쇄살인범이 검거되지 않자 대통령까지 직접 이벤트에 나서는 가운데, 유력한 용의자마저 경찰의 과잉액션으로 사망하자, 경찰수뇌부는 청와대보고를 위해 광역수사대 최철기(황정민)에게 ‘범인을 만들어오라’ 지시한다. 비(非)경찰대 출신으로 승진이 막힌 데다, 가족과 부하의 비리로 내사를 받던 최철기는 조폭출신의 해동건설사장 장석구(유해진)에게 용의자 이동석이 범인역할을 하게끔 협박하라 시켜 사건을 폼 나게 해결한다. 한편 장인과 스폰서 덕에 잘나가는 주검사(류승범)는 자신의 스폰서인 태성건설 김회장을 잡아넣은 최철기가 장석구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된다. 주검사는 골프장에서 접대를 받던 중 김회장이 살해되고 김회장과 함께 찍힌 사진이 배달되자, 위협을 느끼고 최철기를 회유하려든다. 그러나 주검사가 자신에게 배당된 이동석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눈치 채자 상황은 역전된다. 주검사는 기자에게 향응과 뇌물을 풀어 언론 ‘빨대 짓’을 해가며 최철기를 압박한다. 최철기는 다시 장석구를 통해 이동석을 살해하고, ‘빡친’ 주검사는 최철기의 가족과 부하들을 잡아들인다. 승진을 앞둔 최철기는 주검사 앞에 알몸으로 무릎 꿇고, 자신을 협박해오는 장석구도 죽여 버린다. 그러나 최철기 역시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느와르의 법칙에 걸맞게 원하는 것을 얻은 바로 그 순간, 장석구와 최철기는 자신의 심복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느와르의 장르 속에 건설업계 비리와 스폰서 검사, ‘빨대 짓’과 검경갈등, 그리고 부패경찰과 경찰조직 내부갈등까지 녹록치 않은 진실들을 폭로한다. 방대한 취재를 통해 얻었음직한 진실들은 단순히 르포르타주에 머물지 않고 촘촘한 플롯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팽팽한 긴장감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대사 빨이 살아있는 시나리오와 재치 있는 연출, 그리고 최고의 연기력을 뽐내는 주연배우와 절묘한 캐스팅의 조연들이 만들어낸 생생한 인물들은 영화적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거기에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아귀가 딱딱 맞고 관객의 감정 선을 쥐락펴락하는 편집 또한 장르적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첫 장면에 크고 작은 뉴스화면들을 훑으며 유려하게 움직이는 카메라가 용의자가 총에 맞는 거친 질감의 화면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나, 골프장 살해 장면을 몰래카메라 화면으로 옮겨오는 장면, 그리고 검찰청을 찍을 때면 로비를 아래에서 한번 위에서 한번 잡아 권력의 위용과 신분상승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앵글은 압도적이다. 영화는 굵직한 진실과 장르적 형식미를 완비했으면서도 마냥 쾌감을 안기지 않는다. 영화가 두 가지 반전을 통해 더 크고 씁쓸한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반전. 영화에서 가장 감정을 자아내는 장면은 이동석과 가족들이 나올 때이다. 그가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 같은 몰골로 장석구에게 맞다가 1억 원이 담긴 통장과 정신이상으로 처벌을 면해주겠다고 회유당할 때나, 면회실에서 정신지체 2급의 아내가 “집에 가”라 말할 때 실로 마음이 짠하다. 더욱이 장석구 일당에게 통장을 내어주고 과자 값을 받을 때나, 이동석이 죽은 후 과자 값을 쥐어주는 경찰을 향해 딸내미가 연신 “고맙습니다” 인사를 해댈 때 슬픔이 복받친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각자의 출세와 비리에만 몰두할 뿐, 누가 아이들을 죽였는지 수사는 뒷전이며, 이들의 파워게임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자가 희생되는 현실에 분개할만하다. 그러나 영화는 순진한 연민과 정의감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는 <마더>의 반전을 보여준다. 그는 진범이었고, 딸은 친딸이 아니다. 아내는 아동기호증자 이동석에게 자기 딸이 유린되는 것도 모르고, 그를 위해 거짓알리바이를 대주었다. 가장 약자처럼 보이던 이동석 역시 장애여성과 딸을 착취하고 있었으며, 그가 유치원버스를 운전하며 착실하게 사는 모습 또한 끔찍한 예비범죄행위로 되읽힌다. 영화는 자본가와 검․경찰, 기자까지 모두가 “참 열심히들 사시며” 비리와 약점의 그물코로 얽히는 것을 양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동석조차 그의 남성적 권력과 욕망을 저보다 약한 이들에게 행사하고 있었음을 음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음각의 그림이 드러난다고 해서, 양각의 그림이 달리지진 않는다. 주검사와 최철기는 진범을 앞에 두고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들의 욕망이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는 곳에 가있기 때문이다. 최철기는 ‘범인 만들기’와 그로 인해 ‘찐 붙는’ 장석구와의 관계를 터는데 골몰하고, 주검사는 자신을 “억울한 일 당한 사람, 풀어주는 사람”이라 말하며 이동석을 이용해 최철기를 압박하고 비리를 덮는데 집중한다. 정작 “억울한 사람 풀어주는 사람”이어야 할 국선변호사는 30만원 타령이나 하고 있고, 검찰청구치소에서 청부살인이 일어나도 자살로 처리되고 끝난다. 오직 국과수만이 제 할일을 하였지만, 진실은 사후적이며 회한을 안길 뿐이다. 최철기는 진범을 앞에 두고도, ‘쌩쇼’를 벌이다 부하까지 죽인 것에 오열하지만, 느와르는 이미 악인이 된 그의 회한을 길게 담지 않는다.

두 번째 반전. 비경찰대 출신으로 소외당했던 최철기의 부하들은 마지막에 그가 동생처럼 따랐던 마경장을 죽이고, 홀로 승진한 것에 배신감을 느껴 최철기를 죽인다. 그리고 스폰서검사동영상을 유출한다. 상업영화답게 박탈감을 느끼던 하층계급의 복수로 가진 자들이 파멸되는 포퓰리즘적 구도를 취할 법도 하건만, 영화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동영상이 유출되어도 주검사는 장인의 비호로 살아남는다. 노력하는 놈이 운 좋은 놈을 못 당하며, 운 좋은 놈이 빽 좋은 놈을 못 당하는 법이다. 그는 다시 폼 나는 마약사건을 맡아 회생할 것이고, 동영상은 곧 잊힐 것이다. 기자들의 플래시를 받으며 검찰청에 들어간 주검사가 장인과 덕담을 나누며 까마득한 계단에 오르는 걸 웅장하게 비추던 카메라가 마지막엔 수직으로 끌어올려져 마침내 서울 시내를 한눈에 담으며 ‘우리가 사는 이곳의 법칙이 대강 이러함’을 한 컷으로 웅변한다. 최철기는 말이 없고, 주검사는 오직 반어적으로만 말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죽고 빌딩은 올라간다. 진실은 이토록 신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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