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놀아줘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만 3년 5개월 만에 드디어 매이가 젖을 뗐다. 그동안 “젖좀 그만 먹자”고 무던히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매이가 젖을 끊게 된 것은 아내가 자주 아팠던 탓이다. 비염에 걸려 아내가 몇 주째 콧물을 훌쩍거리는 것을 본 교회 아주머니들이 모유를 계속 먹여서 그런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들은 매이도 들었나보다. “매이야, 이제 엄마 젖 그만 먹으면 안 될까? 매이가 엄마 젖 계속 먹으면 엄마가 아파” 라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 매이는 선선히 “알았어”하고 대답했다. 표정은 여전히 아쉬움이 그득했지만. 그길로 매이는 엄마 젖을 먹지 않았다. 처음엔 참느라 무던히 애쓰는 게 역력했다. 엄마 젖에 대한 유혹을 떨치려고 그 좋아하던 ‘엄마랑 목욕하기’도 일부러 마다하고, “아빠하고 씻을래” 하고 말했다. 너무 안쓰러워 그냥 만지기만 하는 건 괜찮다고 했지만, ‘보면 만지고 싶고, 만지면 먹고 싶다는 것(응? 19금?)을 아는지 처음엔 아내의 벗은 몸을 아예 보지도 않으려 했다. 그리곤 차츰 젖먹는 욕구를 참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자, 엄마랑 목욕을 하며, 슬쩍 만지는 장난을 쳤다. “만지기만 할게, 만지기만 하는 건 괜찮다고 했잖아!”하며 당당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젖을 먹고 싶은 욕구를 달래기 위해 엄마 젖꼭지를 입술에 문지르며 “립스틱 바르는 거야, 립스틱”하며 능청을 떨었다. 아내는 “야..무슨 담배 치우는 사람들이 담배에 불붙이지 않고 코에 문지르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만사에는 때가 있다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매이는 엄마 젖으로부터 독립했다. 전에는 엄마 젖을 물고 잠이 들었지만, 젖을 떼는 동안에는 잠이 오면 오히려 침대 가장자리로 가서 혼자 잠들었고, 익숙해 진 이후에는 엄마 품에서 잠을 청하다 잠이 쏟아지는 순간 고개를 아빠 쪽으로 돌리고 잠들었다. 만사는 때가 있다더니, 불가능할 것 같던 매이의 젖떼기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젖을 떼니 엄마의 역할이 바뀌었다. 젖 물리는 대신 놀아주기가 주된 일이 되었다. 더 힘들어진 측면도 있다. 그냥 젖 물리고 있으면 될 것을 끊임없이 매이가 제안하는 놀이에 동참해야 했다. 덩달아 나도 매이는 아내 젖에 맡기고 느긋하게 TV나 보던 시간이 아쉬워졌다. 일어나서 엄마랑 결혼식을 연출해 봐라, 키를 재 보자, 왜 각본대로 안 하냐며 성가시게 했다. 엄마와의 눈물겨운 신파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유나’와의 드라마가 볼만 해졌다. 아내, 나, 그리고 유나 엄마가 일주일에 두 번씩 돌아가며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유나와 매이를 돌봤다. 유나와 매이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 되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알콩달콩 재미나게 논다. 매이의 ‘개그 삘’과 유나의 ‘성숙함’이 환상조합을 이뤄 전에 없이 돈독한 관계를 이루었다. 덕분에 둘만 붙여 놓고 어른들은 잠깐이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여유가 생겼다.

다만, 둘을 떼어놓는 게 힘들었다. 날마다 하는 이별이건만 매이는 유나랑 헤어지는 걸 너무 힘들어 했다. “유나 언니랑 더 놀래, 유나 언니 따라갈래, 엉엉, 유나 언니랑 같이 잘래, 유나언니~” 유나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고 불며 가슴 저린 이별가를 불러댔다. “내일 또 만나면 되잖아” 해도 “싫어, 싫어, 유나 언니랑 같이 살 거야. 유나 언니~, 가지마” 라며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애타게 부른다. 고점리와 형가가 역수에서 이별하며 부른 노래가 이보다 애절할까. 60년대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엄마를 따라가겠다는 아이의 절규가 매번 재현되는 신파의 한마당이다. 조금 성숙한 유나는 조금 달랐다. 매이가 울며불며 헤어지기 싫어한다는 것을 안 유나는 “엄마한테 전화 왔어 이제 갈 준비해야 돼”하고 말해주면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매이야 지금 가려는 게 아니구, 추워서 입는 거야”라고 배려성 거짓말을 해주었다. 젖 먹이 ‘아기’에서 이제는 친구가 더 좋은 ‘아동’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 부모의 역할은 젖 먹이고 돌봐주는 게 아니라 친구를 찾아 주는 것임을 실감한다. 열심히 놀아준다고 해도 친구만큼 마음이 통하지는 않는다. 바야흐로 부모의 시대는 거(去)하고 친구의 시대가 래(來)했도다!

유나가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동안 매이를 누구와 놀릴까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 금요일에는 연구실 옆에 있는 자그마한 놀이터에 데려 왔다. 혹시 같이 놀아줄 친구가 있나 해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와서 그냥 가려는데, 일곱 시 쯤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그래, 매이는 초등학교 6학년 된 사촌 언니랑도 잘 놀지. 저 무리에 끼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매이 손을 잡고 멀찌감치 서서 언니들의 동태를 살폈다.

매이도 눈이 반짝이며 그 언니들에게 시선이 꽂혔다. 언니들은 한참 수다를 떨더니 연구실 주차장으로 내려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기 시작했다. ‘저건 매이도 할 수 있는 건데’ 싶어서 “매이야, 끼워 달랠까?” 하고 물었지만, 매이는 빨려갈 듯이 언니들의 노는 모습을 쳐다보면서도 선뜻 끼지는 못했다. 지난 호에 썼듯이 괜히 내가 나서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간절함과 긴장 탓인지 매이가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화장실에 데려 가서 오줌을 누이고 다시 와 보니 언니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파하고 잠시 우왕좌왕 하는 중이었다. 그 중 리더 격인 한 언니가 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 흥이 깨진 것이다. 어떻게 할까, 그냥 집에 갈까 싶은데 매이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자세다.

참 신기하다. 금방 깨질 것 같던 놀이판이 되살아났다. 언니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주차장을 가로질러 달리자 나머지 아이들도 따라 뛰고, 그래서 언니들은 릴레이 시합을 하기로 했다. 나는 매이 손을 잡고 계단 턱에 앉아 언니들이 달리기 시합하는 걸 구경했다. 한참 그러다가 나는 매이 등을 밀며 “매이도 끼워 달래봐. 응? 자, 가서, 같이 놀아요 해봐” 라고 종용했다. 매이는 세 발자국 앞으로 갔다가 뒤를 돌아보며 ‘괜찮을까?’ 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어서 가봐’ 라는 눈짓과 손짓을 했다. 이러기를 대 여섯 차례 했을 때 언니들의 달리기 시합은 또 소강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 중 한 아이가 갑자기 시무룩하더니 한쪽에서 훌쩍이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게 산만해진 무리 중 한 아이가 매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마지막 기회다 싶어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 애도 같이 놀아 주면 안 될까?” 라고 했다. 그러자 그 언니는 고맙게도 매이 손을 이끌고 “나는 이 아기랑 한 편!” 했다. 다른 언니도 “아냐, 내가 같이 뛸래” 했다. ‘됐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매이는 처음에 손 잡아준 언니랑 밑도 끝도 없이 달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같이 놀려나 싶었는데, 초등학교 4,5학년 여자애들의 분자적인 움직임은 도대체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다시 놀이판은 지지부진해져 버렸다. 매이는 언니들 사이에 가만히 서서 언니들의 알 수 없는 움직임과 표정을 살폈다.

언니들 무리는 흩어졌다가 놀이터에서 다시 뭉쳤다. 처음에 엄마가 부른다며 집에 갔던 리더 격의 여자애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매이 손을 잡고 다시 놀이터로 올라갔다. 언니들은 와일드 하게 그네타기도 하고 미끄럼틀 위에서 아크로바트를 하기도 하고 남자애들이 버리고 간 스티로폼을 땅바닥에 문대기도 했다. ‘날카로운 달리기의 추억’을 잊지 못한 매이는 언니들 언저리에 서서 ‘언제 또 같이 놀아 주려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각자 놀던 언니들 무리는 어느 새 스티로폼 쪼가리로 눈가루 만드는 데 집중했다. 놀이터 바닥은 삽시간에 스티로폼 가루로 하얗게 돼 버렸다. ‘저걸 누가 다 치우나’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재미 있을 것 같아서 “매이도 같이 해봐!” 했다. 매이는 조심스레 언니들 사이로 가서 스티로폼 덩어리 하나를 얻어 몇 번 바닥에 문질렀다. 긴장해서 별 재미가 없는지, 야단맞을 걸 직감했는지 매이는 금방 무리 언저리로 나왔다. 그때 애를 업고 오신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어지럽히면 누가 치우냐?”며 소리쳤다. 하지만 언니들은 당당했다. “우리 앞에 남자애들이 먼저 한 거예요.” 할머니는 가던 길을 가고, 언니들은 더 시끄럽게 눈가루를 만들어 댔다.

그 무리 중 한 여자애의 어머니가 왔다. 그 아줌마는 나도 안면이 있다. 여자 애 세 명을 두고 있는데 기러기 엄마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와 놀다가는 걸 자주 봤다. 여느 엄마들처럼 ‘관리’를 하거나 ‘놀아주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이들과 격의 없이 논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맞담배도 피우고 쌍욕까지 해 가며 얘기를 섞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 아주머니가 매이를 보더니 “너무 귀엽다”며 손을 잡고, 같이 놀자고 했다. 낮선 사람이건만 매이는 놀랄 정도로 아주머니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같이 그네도 타고 스티로폼 장난도 했다. 그러다가도 매이가 계속 언니들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걸 보자 아주머니는 “야! 이 아이랑 같이 놀아 줘!” 라고 소리쳤다.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한참 어린 아기랑 놀아줄 만큼 언니들의 흥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지부진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매이는 한 동안 언니들을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놀 친구를 찾는 건 애나 어른이나 쉽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큰 재산도 없을 것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