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매실이 떨어집니다

- 정경미

摽有梅 매실이 떨어집니다
표유매
其實七兮 열매 일곱 개 남았네요
기실칠혜
求我庶士 나를 맞이할 그대는
구아서사
迨其吉兮 좋은 날 오기를
태기길혜

摽有梅 매실이 떨어집니다
표유매
其實三兮 열매 세 개 남았네요
기실삼혜
求我庶士 나를 맞이할 그대는
구아서사
迨其今兮 지금 오기를
태기금혜

摽有梅 매실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표유매
頃筐墍之 광주리에 주워 담습니다
경광기지
求我庶士 나를 찾는 그대여
구아서사
迨其謂之 말이라도 건넵시다
태기위지

– 시경詩經 소남召南 「표유매摽有梅」

시경詩經 소남召南 편에 나오는 시 「표유매摽有梅」는 동양 문화권에서 대표적인 청혼 시請婚詩이다. 단순한 구절이 반복되면서 경쾌한 리듬감이 있고, 이 반복의 리듬 속에서 중요한 뜻이 조금씩 변하는 재미. 차이와 반복의 묘미가 있다. 소리내어 읽으면 더욱 경쾌하다. 길이가 짧고 반복되는 구절이 많아 외우기도 쉽다. 단순한 시형에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 좋아하는 시경의 ‘인기 가요’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애求愛의 표현을 할 때 꽃이나 과일을 던진다. 「모과木瓜」에서 보면 사랑하는 그녀에게 모과를 던진다. 「진수와 유수溱洧」라는 시에서는 물가를 걸으며 남녀가 작약芍藥을 주고받는다. 「예쁜 그녀靜女」에서는 띠싹[荑]을 선물한다. 「표유매摽有梅」에서는 매실을 던진다. 매실나무가 ‘그대’에게. 여기서 매실나무는 혼기가 된 처녀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혼기를 맞은 처녀가 매실나무의 목소리를 빌어 “날 데려가요”라고 하면서 짝을 부르는 노래이다. 여성이 청혼을 하고 있다는 점, 은근히 감추는 듯하면서 사실은 자기 욕망의 표현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매실나무에 열매가 일곱 개였다가, 세 개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다 떨어져서 없다. 결혼 적령기가 점점 지나가는 상황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열매가 일곱 개인 때는 결혼하기에 딱 좋은 때이다. 일반적으로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때.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나무와 같다. 이때는 여유가 있으니까 ‘좋은 날 오세요[迨其吉兮]’라고 한다. 열매가 세 개 남았다는 것은 결혼할 시기를 놓칠락말락 하는 시기. 노처녀의 시기라고나 할까? 이때는 마음이 급하다. 좋은 날 싫은 날 골라서 올 여유가 없다. 깨딱하면 혼기를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오세요[迨其今兮]’라고 한다. 열매가 다 떨어졌다는 것은 이제 결혼의 시기를 지나버렸다는 뜻이다. 그대에게 줄 매실이 없다. 그러니 이제는 “날 데려가라”고 하지 않고 “말이라도 건넵시다”라고 한다.

기실칠혜其實七兮, 기실삼혜其實三兮, 경광기지頃筐墍之 중에서 당신은 어느 때에 속하는가? 나의 경우에는··· 기실칠혜의 시기, 실속 없이 많은 애인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작 단 한 사람에게도 청혼을 하지 못했다. 기실삼혜의 시기, 이러다간 혼자 늙어 죽겠다 싶어 막차 타는 기분으로 생애 처음으로 맞선이란 걸 봤는데 남자 쪽에서 연락이 없다. 소개한 사람 편에 물어보니 “아가씨가 다 죽어가더라”고 하더란다. 즉 결혼해봤자 별로 생산력이 없어 보이더란 얘기다. 나쁜 놈! 사람이 죽어가면 구해줘야지 버리다니! 그래서 결국 나는 결혼 포기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어느새 나는 ‘경광기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결혼하자”고 말하기는 힘든 나이가 되었다. 어찌해야 할까요 매실이 다 떨어졌습니다··· 슬퍼하는 그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노래··· 그래, 우리에게는 노래가 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할 때라도 언제나 우리 곁을 잔잔히 흐르는··· 시詩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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