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나만 잘 살면 무슨 소용인교? 벼룩시장 탐험기

- 졸린 달팽이

작년 아현동 언덕에 살림을 차린 후 달팽이 공방이 맺은 인연 가운데 특별한 분이 있다. 수유너머 N에서 강좌도 들으시고 상암 월드컵 홈에버 매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른 다큐멘터리 <외박> 상영회도 연구실에서 기획하신 일명 빨간 거북님. 이름만 들어도 왠지 달팽이랑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인걸 한 번에 알아보긴 했다. 달팽이 공방에 관심이 있다며 자신이 하고 있는 DIY 소모임 회원들과 함께 방문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때가 올해 늦봄 쯤이였나. 그리고 어느 날 함께 우리밀 브라우니를 만들면서부터 한 달에 한 두 번 달팽이 공방 식구들과 빨간 거북님이 이끄는 DIY 소모임팀의 만남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엔 주로 빵과자를 함께 만들었지만 요즘엔 빨간 거북님으로부터 손바느질을 배우고 있다.

빨간 거북님은 서부비정규노동센터준비모임 이라는 꽤 긴 이름의 단체에서 활동 중이시며, 다큐멘터리 지역 상영회도 기획하고 계신다. DIY 소모임은 서부비정규노동센터준비모임의 소모임 중의 하나란다. 오늘 소개할 벼룩시장도 빨간 거북님이 하시는 일 중의 하나다. 이정도쯤이면 빨간 거북님의 발검음이 꽤 빠를 거란 생각이 들지 않나요?

벼룩시장의 이름도 특이하다. “나만 잘 살면 무슨 소용인교? 우리동네에서의 자립과 공존을 위한 하루 벼룩시장과 캠페인”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에 응암역 근처의 작은 공원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달팽이 공방에서도 벼룩시장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 보러 갔다 오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계약도 곧 끝나가고 해서 새로 이사 갈 곳을 물색해볼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10월 16일 5개월 된 작은 아이는 앞에 안고, 4살짜리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응암역에서 나오니 곰 인형 의상을 입은 분이 손님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작은 공원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날은 의료연대에서 나와 무료로 혈압을 재주고 있었고, 북한산 공원 안에 케이블카 놓는 걸 반대하는 서명도 받고 있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주로 헌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떡볶이랑 오뎅을 판매하는 테이블도 있어서 시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빨간 거북님도 준비모임 회원들이 준 옷가지들이랑 책들 그리고 손수 만든 카드지갑이랑 북카버를 팔고 있었다. 요리책에 관심이 많은 난 두툼한 요리책 두 권을 2천에 사는 행운을 얻었다. 벼룩시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열리는 덕분에 은평구 내에서 꽤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말도 들었다. 다음 달에는 달팽이 공방에서도 직접 만든 물건들을 들고 참가하고 싶다고 전했다. 아현동에서도 벼룩시장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해보지는 못해서 아쉬웠는데 빨간 거북님이 여시는 벼룩시장에 동참할 수 있게 되서 기뻤다. 달팽이 공방 스스로 할 수 없는 건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으면 된다는 것! 너무 쉬운 걸 잊고 살았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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