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좌담회스케치 – “G20 완장 차고 사람잡네”

- 은유

“G20의 G가 무슨 뜻인줄 알아?” “Global?” “Great?” “Grand?” 다들 영어로 말할 때 모국어로 답했을 뿐이다. “혹시…쥐 아냐?” 발칙한 상상력은 그라피티로 승화됐다. 지난 2일 G20 홍보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린 박정수 수유너머R연구원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과잉대응 논란 속에 ‘G20 완장정권’의 인권 탄압 사례가 속속 밝혀지면서 정부의 요란스런 태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위클리 수유너머’는 지난 8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사무실에서 ‘G20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이진경 한국과학기술대학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두 시간의 열띤 토론을 스케치한다.

국격 높이는 ‘생각대로 G’

“G가 Group의 이니셜이랍니다. 정말 싱거운 뜻이죠. 그런데 G 이니셜 하나에 비밀이 숨어 있어요. 하나의 형상을 발음으로 연상하는 언어유희는 우리의 전통 민중예술이지 않습니까?” 전날 밤 늦게까지 경찰에서 추가 수사를 받고 온 박정수 연구원은 G에 깃든 무의미의 의미를 설파했다. 정부의 요란스런 준비를 보면서 70년대 국가행사 총동원령 같은 유치한 생각이 들었고 이를 그라피티로 풍자한 것뿐인데 공안검사가 나온 것은 “모기를 잡는데 칼을 든 것 같아 우수웠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조광희 변호사는 “재물손괴는 영장 청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뒤 G20의 의미를 정리했다. “G20은 세계를 작은 마을이라고 했을 때 큰 불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대책을 세우기 위한 회의입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회의를 하는데 불이 안 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지 우리 집에서 회의를 한다고 집에서 애들 잡고 굶기면서 떡 하는 형국입니다.” 조 변호사는 이어 “국격은 인격과 마찬가지로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전시행정은 국격을 오히려 낮추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G20완장 차고 사람 잡네

이정원 이주노조 교육선전차장은 G20을 앞두고 5월부터 10월까지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테러범으로 규정하고 집중 단속을 벌여왔다며 베트남 이주노동자 찐 꽁 꾸안(35)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단속반은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을 봉쇄하고 영장도 없이 건물로 진입해 찐 꽁 꾸안 씨를 포위하고 잡으려고 하자 당황한 그가 가까운 4미터 높이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머리부터 떨어져 치료를 받았지만 지난 3일 결국 사망했다.

“찐 꽁 꾸안은 2002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8년 동안 일하며 결혼했고 사망 당시 생후 4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 출입국 사무소에 항의방문을 했지만 적법한 단속이었다는 말만 계속하고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애도를 표하거나 유감스럽다는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노숙인들 역시 G20을 앞두고 ‘청소의 대상’이 되어 곤혹을 치르고 있다. 박사라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노숙인들은 하루에 기껏해야 2시간 정도 지하도에서 쪽잠을 자는데, G20을 앞두고 한밤에 잠자는 걸 깨워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가 하면 테러의 방지 차원에서 지하철 물품보관소 이용이 금지되어 노숙인들이 불편을 겪는다고 말했다. 시트콤을 같은 웃지 못 할 일도 많다.

“노숙인들은 일상용품을 담아서 보통 짐이 들어 있는 큰 가방을 들고 다닙니다. 한 노숙인이 큰 가방 하나를 전철역에 잠시 놓고 자리를 떠났는데 비상이 걸렸어요. 경찰특공대가 주변을 둘러싸고 ‘폭발물이 있을 수 있다’며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가방을 열었더니 노숙인이 모아놓은 폐지만 가득했지요.”

그라피티, 불법이 아니면 무슨 재민겨

권은비 그라피티 작가는 언론을 통해 G20을 접한 것은 경제효과가 얼마이고, 각국 정상들이 먹는 스테이크가 어떤 거고 요리사가 누구냐는 것뿐이라며 정부가 이렇게 오바 하는 것은 잘 사는 나라에 끼고 싶어서 자존심도 다 내팽개치고 놀고 있는 모습 같다고 꼬집었다. 또한 작년에 코펜하겐 기후협약 회의에 ‘시위 구경’을 갔던 지인의 사례를 들어 “관례상 국제적인 큰 회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포퍼머, 환경운동가 등이 모여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뽐내는 표현의 장”이라며 이를 억압하는 정부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했다.

“그라피티는 늘 법과 대결해요. 힙합문화, 하위문화, 아웃사이드 문화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예술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기 위한 도구적 수단이에요. 유럽에서 시작해서 미국에까지 정착했고 현대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됐죠. 그라피티 작가들은 메시지 전달보다 불법의 경계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그것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죠. 좌우 위아래 잘 짜인 사회 프레임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것. 이걸 좀 보라고 말하는 것을 예술이 해야죠.”

그런 점에서 대박을 터뜨린 ‘쥐 그라피티’는 작품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권 작가는 평가했다. 박정수 연구원은 “안 그래도 경찰이 증거품으로 압류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저작권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혀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조광희 변호사는 소유권은 경찰에 있지만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를 맡은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규칙을 깨면서 규칙을 다시 만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부딪치는 사람이 있어야 영역이 넓어지는 법”이라며 ‘쥐 그라피티’의 의미를 되짚었다.

내쫓는 자들과 환대받는 자들

G20이 국민에게 들롱꾼을 강요하는 그들만의 요란스러운 잔치임은 쥐 그라피티를 통해 공론화 됐다. 이진경 교수는 특히 “지하철에 군인이 총을 들고 서 있는 것은 80년대나 본 풍경”이라며 환대와 적대가 선명히 갈리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조광희 변호사는 “테러를 방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표현의 자유 등 국민들의 기본권이 깨지는 것이 문제”라며 “몇 백 년 만에 한 번 있는 회의도 아닌데 ‘G20경호특별법’까지 만든 것은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말했다.

이정원 차장은 정부가 G20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벌임으로 인해서 인종차별과 적대감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한국인들이 하루도 못 버티고 나가는 3D업종에 종사하죠.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있고 또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아시아의 문화도 알리는 등 경제적, 문화적 순기능이 더 많아요. 그럼에도 환대는커녕 범죄자 취급당하고 추방당하는 실정이죠. 우리 대다수의 삶과 이주민의 삶은 모순되거나 배치되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지 이루고 다 조화롭게 잘 살아갑니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라도 나서서 그들을 환대해야 합니다.”

박사라 활동가는 정부는 G20이 모든 국민들의 축제인 것처럼 홍보하지만 그곳에서 소외된 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노숙인의 자활을 위한 대책이라고 내놓았지만 사실은 G20기간에 노숙인을 보이지 않기 위한 대책에 불과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 10월부터 일정한 심사를 거친 노숙인들에게 4개월 간 수련원과 쪽방 등 임시거처를 제공했다. 노숙인 문제의 구조적인 해결이 아니라 임시방편용 대책인 것.

이진경 교수는 “G20의 화려함에 가려지고 치워지고 청소시켜버린 대상들이 존재하는 것이 G20의 진짜 모습”이라며 “우리가 TV에서 베이징이나 평양의 거리를 보면서 휴지 하나 사람 한 명 없이 거리가 깨끗하고 군인까지 나와 주민들을 통제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부가 그대로 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논의된 대로 정부당국은 환대의 범위는 좁히고 적대의 범위는 넓히는 배타적이고 옹졸한 방식으로 G20을 준비했다. 그러나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며 “노숙인, 이주노동자, 예술가 등이 다 같이 어우러지는 G20이 돼야한다”고 마무리했다.

응답 3개

  1. 존경합니다말하길

    예로부터 수많은 성인과 선지자들 중 박해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죠. 언젠가 우리나라가 정말 “품격”있는 사회가 된다면 이 아방가르드적 예술을 통하여 발현된 시대의식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2. 여하말하길

    수업용 자료로 쓰겠습니다. 그런데 이진경선생님이 과기대로 옮기셨군요.

    • 말하길

      옮긴게 아니라 산업대 이름이 바뀐 겁니다. 과학 기술 대학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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