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아, 자유!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며칠 전 사소한(?) 일로 사흘 동안 유치장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오늘은 매이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그때 얘기를 할까 한다.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일 때문에 구속영장 실질검사를 기다리던 지난 월요일 밤이었다. 저녁 7시쯤 경범죄(사실, 나도 경범죄인데!)로 벌금형을 받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노숙인이나 일용직 노동자쯤 되어 보이는 40대 중반의 남자다. 소지품 검사할 때부터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더니 유치장에 들어가서도 뭔가 계속 소리를 질렀다. 경상도 사투리에 하층민 특유의 거친 억양으로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한 시간 가량 계속 떠드는 소리를 들으니 “경찰청에 전화해서 석방명령서를 받아내라”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자기는 경범죄로 벌금 8만원 형을 선고받았는데, 벌금 내는 대신 이틀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기로 했다는 것, 통상적으로 하루에 4만원 치니, 오늘 밤 자정을 넘으면 자신은 형기가 만료된다는 것, 그러니 자기를 자정에 풀어달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간신히 알아들은 건 그 남자가 두 시간 가량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고 나서였다. 경찰은 헛소리 말라며 으름장을 놓고,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도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야단쳤다. 그럴 때마다 이 남자는 철창을 발로 차고, 슬리퍼를 바깥으로 집어 던지고, 머리를 철창에 들이박으며 자기주장을 계속했다.

술을 먹어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 불콰한얼굴빛, 날카롭게 찢어진 눈, 작지만 다부진 체격, 흡사 김동인의 <붉은 산>에 나오는 ‘삵’을 연상시키는 외모였다. 경찰은 혹시 자해라도 할까봐 그 남자를 투명 플라스틱 벽을 철창에 덧댄 옆방으로 옮겼다. 자해 위험은 줄었지만 소리는 더 커졌다. 그 남자는 우리에 갇힌 ‘삵’처럼 온 몸을 플라스틱 벽에 부딪고, 머리를 들이박고, 손바닥으로 두들기고, 발로 차며 “빨리 경찰청에 전화를 해서 12시에 나를 풀어주라는 석방 명령서를 보내달라고 하라”고 소리쳤다.

나랑 같은 방을 쓰던 ‘히로뽕 아저씨’(그 아저씨 인생관, “늙어서도 인생을 즐기는 데는 마약만한 게 없다”)가 “돈 8만원이 없어서 유치장 신세 지는 놈이 12시에 풀어주면 갈 데나 있냐. 그냥 찌그러져 잠이나 자”라고 힐난했다. 그 말에 그 ‘삵’은 길길이 날뛰며 “어떤 놈인지 찢어 죽이겠다”고 으르렁거렸다. ‘시대의 양심’을 밝히는 지식인(?)으로 잡힌 나는 그 ‘삵’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경찰에게 저 사람 말도 일리가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글쎄, ‘이틀 동안’이라는 게 만48시간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저 사람 말처럼 횟수로 이틀인지, 그렇다면 석방 시간은 자정인지, 다음날 오전 9시인지, 아님 정오 12시인지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같은 방에 있는 ‘빠찡코 아저씨’(꽤 지적인 이 아저씨 대뜸 나를 보더니, “대학 강사요? 음, 정치범인게군”하고 말하였다. 허걱!)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분 말은 “글쎄, 징역형의 경우는 자정이 넘으면 석방 가능한데, 벌금형의 경우도 그런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런가? 소설 <오래된 정원> 앞부분에서 자정에 형기가 만료되었지만, 아침이 되어서야 풀어주게 되었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 아무튼 그 말을 들었는지, ‘삵’ 아저씨는 “징역형이나 벌금형이나 똑같이 자정이 만기 시간이며, 통상적으로 다음날 아침 밥 먹고 9시에 풀어주는데, 굳이 몇 시간 더 잡아둘 게 뭐 있냐. 내가 나가겠다는데. 그러니 경찰청에 전화해서 당직 서는 사람한테 석방 명령서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하라”고 항변했다.

그러기를 또 몇 시간, 자정이 가까워 오자 ‘삵’ 아저씨는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온몸으로 철창 벽을 두들겨 댔다. 내 옆에서 잠을 청하던 ‘히로뽕 아저씨’가 또다시 욕을 해 대며 “너 같은 놈은 하루 4만원이 아니라 2만원”이라며, “그러니까 포기하고 잠이나 퍼 자라”고 비아냥거렸다. 그 말에 또 화가 난 ‘삵’은 “내가 하루 4만원이니까 들어왔지, 하루 2만원씩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냥 벌금내고 말았을 것”것이라며, 소리치며 정신 줄을 놓은 듯 길길이 날뛰며 으르렁거렸다. 옆방에 있던 한 사람은 경찰한테,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묶어 놓든가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소리쳤다.

어느새 나는 그 ‘삵’에게 마음이 끌렸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풀려날 텐데 한시도 감방에 갇혀 있기는 싫다는 그 야생적인 자유정신이 경탄스러웠다. 그에 비해 어떻게 하면 경찰하고 친해져서 유치장 안에서도 편익을 누려볼까 잔머리 굴리는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순한 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갈 데가 있건 없건, 길거리에서 얼어 죽든 말든 자신은 철창이 싫다는 ‘삵’의 자유를 향한 동물적 감각이야말로 얼마나 고귀한가! 머리를 들이박는 ‘삵’씨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양심적 지식인’(?)의 깊은 사색에 잠겼다.

자정이 넘자 ‘삵’씨는 억울함과 분함을 참지 못하고 “도대체 왜 만기 죄수를 가둬 두고 있냐. 나는 이미 민간인인데 왜 나를 이 철창에 가둬 두고 있냐. 제발 경찰청에 전화 좀 해 봐라. 틀림없이 석방 명령서 나온다. 왜 전화를 안 하냐. 도대체 왜 날 가둬 두고 있냐 말이다” 라며 울부짖었다. 유치장을 지키고 있던 경찰은 다른 수감자들에게 화장지를 조금씩 떼어 주며 “대꾸 하지 말고 가만히 두면 제풀에 지칠 것이니. 그때까지만 이걸로 귀를 막고 있으라”고 했다.

양들의 침묵이 이어졌고, 휴지로 귀를 틀어막은 자들을 향한 ‘삵’의 고독한 외침만 들려왔다. 나는 그 소란의 와중에 스피노자의 <에티카> 4부 정리들을 읽으면서, 나만이라도 그 고독하고 긴 울음에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 귀를 활짝 열어놓았다. 참 긴 밤이 지났다. 그곳의 누구도 단 한 순간도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었던 ‘삵’은 해방의 아침을 맞았을까? 아뿔싸, 간밤에 긴가민가하던 경찰이 아침에 상부에 알아본 결과 하루 2만원이 맞는 계산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삵’은 기다리던 석방명령서 대신 지명수배자 얼굴과 대조해야 한다는 명령서가 팩스로 날아오는 바람에 경찰청에 불려가야 했다! 나 역시 영장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삵’이 이후 어떤 몸짓으로 해방을 향한 몸부림을 계속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응답 1개

  1. 성향말하길

    푸핫 ㅋㅋㅋㅋ 삵은 어찌 되었을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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