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네 편의 영화를 통해 본 전쟁국가 이스라엘(1) : 뮌헨 (2005)

- 황진미

–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제겨디딜 곳조차 없다”-

들어가며

이스라엘, 혹은 팔레스타인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올해 들어서만도 몇 개의 굵직굵직한 외신이 전해진다. 2010년 5월 31일, 구호물자를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공해상의 국제구호선에 이스라엘 해병특공대가 총격을 벌여, 국제 활동가 등 19명이 사망하였다. 8월에는 레바논과의 교전으로 5명이 사망하였다. 왜 그곳은 이토록 무자비한 살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걸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 맞기는 할까?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항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이고,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끊임없는 자살폭탄테러 위협을 받는 곳이라지만, 최근 수입되어 개봉된 이스라엘 영화들 가령 <젤리 피쉬>(2007), <누들>(2007), <밴드 비지트>(2008), <사이즈의 문제>(2010) 등을 보면 별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상당히 서구화된 사회에 지중해식 풍경이 보이는지라 히브리어 문자를 보기 전에는 한참동안 남부 유럽의 어느 나라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누들>의 여주인공이 30대에 벌써 두 번이나 남편과 사별하였으며 그 중 한명은 전투기조종사였다는 것이나, <밴드 비지트>의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 읻들과 미묘한 감정의 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나, <누들>, <젤리피쉬>, <사이즈의 문제> 에서 동아시아 이주노동자들과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발언과 강제추방이 눈에 띄는 정도이다. 물론 이런 사소한 것들도 상당한 진실의 이면을 보여준다. 가령 이스라엘 조종사가 자나 레바논에 폭격을 퍼붓다가 로켓포의 공격을 당해 죽기도 하며, 이집트는 아랍국가 중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나라이긴 하나 수차례 전쟁경험과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등으로 악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였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들의 이스라엘 내 취업을 제한하면서 모자라는 하급노동력이 동아시아에서 조달되고 있는데 유대순혈주의로 인해 인종차별주의가 강하게 존재한다는 등의 진실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언제나 진실은 억압받는 편에서 보았을 때 더 많이 보이는 법이다. 팔레스타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들은 더 많은 진실을 발언한다. 자살폭탄테러에 나서는 팔레스타인 청년의 내적 갈등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천국을 향하여>(2005)와 분리장벽으로 인해 레몬 농장을 빼앗기게 된 팔레스타인 중년여성의 법정투쟁을 그린 <레몬트리>(2008)는 팔레스타인의 오늘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테러와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가해자적 자의식을 담아 사태를 중립적으로 보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영화 <뮌헨>(2005)과 <바시르와 왈츠를>(2008) 역시 70-80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 국내 개봉된 4편의 영화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되짚어보자.

1. 뮌헨 (2005)

<뮌헨>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하여 살해한 ‘검은 9월단’에게 보복 테러를 가하는 이스라엘 모사드의 첩보 암살 작전을 그린 영화이다. 홀로코스트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친유대주의적 색체를 드러내었던 스필버그가 911 이후 첨예화되고 있는 아랍권과의 갈등을 어떤 식으로 그려내었을지 관심을 집중시켰던 영화 <뮌헨>은 비교적 중립적으로 테러가 테러를 낳는 보복의 원환을 보여준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72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하여, 전사를 훑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발흥하던 19세기 말, 헤르츠 등에 의해 유대인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오니즘이 최초로 주창되었지만, 유럽사회에 동화된 채로 살기 원했던 대다수 유대인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라비아의 로랜스>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만 투르크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랍민족운동을 지원하며 중동에서의 패권을 잡고자 하였던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 내 시오니스트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벨포어 선언’(1917)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약속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유대인 이주가 본격화되는데, 20년대 영국의 위임통치하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유럽의 유대인들이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비슷한 회사를 건립하여 아랍인 지주들로부터 땅을 사들이고 소작농들을 내쫓았다. 30년 대중반 나치의 학대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토지로부터 쫓겨난 팔레스타인 소작농들은 1936년부터 민중봉기를 일으켜 영국정부를 향해 대대적인 시위, 파업, 게릴라 전쟁을 벌이지만, 영국군과 유대인 치안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넘겨버리는데, 2차 세계대전 후 영향력이 커진 미국은 자국 내 유대인 이민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 1947년 UN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영토를 56:42로 양분하고 예루살렘을 국제 관리하는 분할 안이 통과된다. 이스라엘은 즉각 수용하고 1948년 건국을 선포하기까지 약 6개월 동안 시오니즘 민병대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75%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영역 내 팔레스타인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추방하는 작전을 펼쳐 418개 마을을 파괴하고, 80만 명의 난민들을 영토 밖으로 쫓아내고 토지를 몰수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선포 직후 주변 아랍국들과 벌어진 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전하면서 전 팔레스타인 면적의 78%를 장악하였는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들을 쫓아낸 땅에 250개가 넘는 유태인의 도시와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1967년 이스라엘의 선재공격으로 3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고, 팔레스타인의 땅 22%(그린라인)를 마저 점령해버리고,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 등을 점령한다.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과 군사동맹을 통해, 주변 아랍국들과 동맹관계에 있던 소련을 견제하고, 중동에 퍼지기 시작하던 반서구 이슬람 민족주의에 맞서 석유자원의 수송로를 확보하도록 하는 지역맹주로 내세웠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새로 점령한 가자와 서안에서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나갔다. 이러한 공세적 상황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학술적 대중 문화적 조명이 줄을 이었다. 이 시기 대량으로 만들어지던 할리우드 홀로코스트 영화와 미국의 주류언론은 이스라엘의 패권주의에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미지를 덧씌워나갔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팔레스타인 땅에서 추방된 난민들은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등의 난민촌에 거주하며, 그곳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결성하고 저항투쟁을 펼친다. 특히 요르단 강을 사이에 두고 서안지역과 마주보는 요르단의 동안지역에 많은 난민들이 몰리면서, 해방운동의 거점이 된다. 그러나 1970년 6월 미국이 주도한 평화협상에 요르단이 참여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여,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이 항공기 납치를 벌인 것을 계기로, 요르단 국왕은 팔레스타인게릴라들을 토벌한다. 이때 만들어진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은 1971년 요르단의 총리를 암살하고,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 납치사건을 벌이게 된다.

<뮌헨>의 첫 장면은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진입하여 총격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뉴스화면에는 이들이 인질을 잡고 대치하는 장면과 독일경찰의 진압 장면이 나오고, 이 뉴스를 보는 주인공 아브너 부부의 평온한 일상이 보인다. TV에서 순서대로 나오는 사망한 인질의 얼굴과, 누군가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얼굴사진을 책상위에 하나하나 내려놓는 장면이 교차 편집된다. 테러리스트 사진을 둘러싼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 여성총리와 모사드(정보기관)로 보복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총리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법이 있는 문명국으로서 살인자를 용납할 수 없으며, 또한 보복으로 문제를 푼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총리는 협상을 거부하였다는 비난 때문에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못하면서, 모사드 요원 아브너에게 비밀 미션을 내린다. 아브너는 독일태생 시오니스트 어머니에 의해 키부츠에 맡겨져 조국을 어머니로 알고 자란 청년으로, 조국에 대한 의무감으로 임신한 아내를 뒤로하고 작전에 투입된다. 그는 마치 <실미도>의 그들처럼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 4명의 팀원과 더불어 ‘검은 9월단’ 11명을 암살하기 위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모세의 기적으로 이집트인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을 언급하며 ‘유대인을 죽이지 마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이들 중 누구도 선악의 문제나 이념을 고민하지 않는다. 한다. 운운하며 선악, 진리, 자유의지, 마르크스, 자본주의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유일한 사람은 점술가 여성으로, ‘미국인을 돕는 일’이라는 말에 달러(지폐속의 벤자민 프랭클린)를 가리킨다. 그녀에게 소개를 받는 정보제공자 프랑스인 루이 역시, 아브너가 찾아달라는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어떠한 정부와도 일하지 않으며 돈을 받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업으로 일을 한다고 원칙을 밝힌다. 루이 조직의 보스인 아버지는 아브너가 가족을 위해 힘든 일을 하는 가장임을 동정하고, 어서 임무를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가길 기원한다. 영화는 가족과 평온한 일상을 나누고 싶어 하는 주인공과 암살임무를 수행할수록 자신도 암살당할 수 있다는 불안으로 피폐해져가는 아브너를 조명한다. 그러나 그의 괴로움은 어머니로부터도 주목되지 않는다. 유대인의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에 복무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뿐이다.

영화 속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루이의 농간으로 아브너 일행이 아테네의 안전가옥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시퀀스이다. 아브너는 친팔레스타인 유럽인인양 가장한 채,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책임이 없는 팔레스타인들을 죽이고 있지만, 정작 유대인을 죽여 왔던 세계는 공범의식을 가지고 유대인 편을 들고 있으며,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용한다고 말한다. 영화는 또한 암살대상자인 팔레스타인 유력인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24년간 이스라엘로부터 집을 빼앗기고 세계최대의 난민이 되어, 미래의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문제에 무관심했던 세계 여론이 뮌헨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신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이러한 말은 영화의 도입부 모사드의 회의에서도 동일하게 있었다. 그들은 뮌헨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이미 팔레스타인 근거지를 폭격하여 6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보고에 대해, 팔레스타인에서의 보복은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유럽 등지에서 가능한 많은 이들이 공포를 느끼게끔 폭탄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논리의 결정판이 911테러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화는 테러리즘의 논리와 더불어 끝없는 보복의 메커니즘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뮌헨 사건에 이은 모사드의 암살을 중심으로 두면서, 이와 병렬적으로 이루어지는 독일 여객기납치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자행된 학살이 언급된다.

그러나 영화가 취하는 정치적 입장의 한계는 분명하다. 아브너를 둘러싼 모사드와 어머니 의 발언은 짧지만 간명하게 이스라엘 건국과 아랍의 공격에 맞서는 정당성을 역설하고, 아브너 역시 “아랍인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더라도 살 곳이 많다”고 말하며, 팔레스타인을 추방하고 유대인의 조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의심 없이 대변한다. ‘피로 물들긴 우리도 마찬가지’ 등의 회의론이 발화되는 순간, 유대인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말로 재갈이 물려지고, ‘생각하는 것이 두렵다’고 토로하는 아브너의 가치판단이 흔들리는 순간, 최초의 원인사건인 뮌헨의 납치 극이 아브너의 생생한 꿈의 형태로 스크린에 틈입하며, 관객들을 환기시킨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쌍둥이 빌딩을 보여주면서, 많은 의미를 함축해낸다. 테러리즘과 그에 대한 보복이 얼마나 끝이 없는 소모적인 과정인지를 보여주면서도,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아랍이고, 그에 대한 대항폭력을 행하는 이스라엘과 서방세계의 피로감을 회의적으로 전하는 것이 <뮌헨>의 정치적 포지션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치적 포지션조차 친유대주의적인 서구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그들은 ‘이스라엘 요원과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도덕적으로 동등하게 표현했다’면서, 감독을 ‘눈먼 평화주의자’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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