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주담 객설 4

- 김융희

경애하는 나의 벗…

지금까지 서너 번의 만필을 써온 “나의 술 이야기” 타이틀을 “주담 객설”로
바꿔야겠다. 처음엔 나의 술 이야기나 한 번 해보겠다며 별 다른 생각없이 붙인
타이틀이 두 번, 세 번으로 계속되면서 자꾸 어색하여 늘 마음에 걸린다.
지극히 보편적이요 평범한 객담이요, 술김에 떠벌리는 허튼 소리가 분명하다싶어
바꿔본 이름이 나에게는 훨씬 편하게 느껴지며, 뜻으로도 지당하다고 여김이다.

그런데, 타이틀 주담객설의 부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라니..”
가까운 친구에게 술타령이라도 전하렴인가? 또, 술 이야기를 전하면서, 존경하며
사랑하는 친구라니, 어쩐지 어울림보담 조금은 어색하기만 하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그 어떤 친구이기에, 그토록 지극한 존경의 사랑하는 벗인지… 요즘도
그런 친구가 있기나 하는 건지…

그런데 사람도 아닌 내 좋와하는 술에 대한 표현이라니, 술도 제일 하급이요
지천의 막걸리에 붙인 타이틀이고 보면, 궁금증보다는 싱거워 웃고말 일이다.
그러나 지기지우의 막걸리에 대한 나의 애정에는 전혀 불변 지당의 소신이다.
막걸리는 결코 윗자리를 넘보며 거드름으로 군림하려 들지 않아서 존경스럽다.
항상 그의 본성인 배려와 포용의 지극한 겸손의 자세가 또한 그러하며,
소탈하며 친근함이 가까이 어울려 지내는 벗처럼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의 덕을 보고 배우며 따르려 함으로 나의 스승이기도한, 그와의 정분을 갖고
지냄이 벌써 오십 해를 넘겼다.
막걸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나와 함께 즐거워 하면서, 나를 즐겁게
부추겨 주었고, 고난의 때나 슬픈 일엔 맨 먼저 찾아와 위로하며 슬픔도 함께 해주는,
격의없는 이웃이요, 때로는 나를 흥에 겨워 춤추게하여 주었고, 밥상머리에도
자리를 함께하면서 맛과 신묘의 기운으로 근심 걱정은 물론, 나쁜 질병까지도
치료해주며, 나의 건강까지 보살펴 주는 충직한 나의 분신으로, 반세기를 함께한
나의 경애스러운 막역지우가 막걸리인 것이다.

이와같은 믿음직스럽고 자애로운 벗, 막걸리가 때로는 심통이였다.
까닭없이 울리기도 하고, 염치도 수치심도 모두 가려 나를 야만인으로 만드느가
하면, 형편없는 상스러움을 불러들여 남들에게 천한 객기를 보이게도 한다.
그래서 술과 친한 놈은 개만도 못하다는 참아 못들을 악담도 듣게 만든다.
심하면 치고 받게하면서 지나치면 남의 목숨을 빼앗는 악질 짖거리도 때로는
방관하는 것이다. 그래서 술에 대한 경구를 마구 쏟아내게 만든,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술의 짖거리라며, 경멸하여 형편없이 앝잡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술 탓이란 말인가? 지나치면 안된다며 한계를 알리면서
얼마나 조심하기를 당부했음에도, 다만 인간들의 그토록 좋와하는 자유로움과
거리낌을 참아 막지 않았기로, 지나친 자기들의 욕심을 생각지 않고서 오히려
술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술이면 모두가 같은 술이랴? 비록 억울한 덤터기를 쓸망정, 그 같은
짓거리를 착한 나의 벗인 막걸리는 결코 하지를 않는다. 막걸리는 자기를
스스로 낮춰(양주 배갈같은 증류주는 주도가 50여 도요, 소주와 갈은 희석주도
20여 도가 넘지만, 발효주인 막거리는 맥주보다도 낮은 육칠 도에 불과하다)
취기를 낮춰 주며, 포만감을 쉽게 느껴 양을 미리 조절해 줌으로, 구세제민으로
독주를 들어 취기를 부리는 사람의 심통을 막아주는 것이다.

독주는 몸을 상하게 하기도하고, 정신을 망가뜨려 주정뱅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막걸리만을 드는 사람은 몸과 정신을 상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나의 경애하는 벗, 막걸리를 믿는다. 그는 한사코 자기로 인한 어떤 나쁜
일이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좋은 일이라면 어떻게 하서든
(누룩이 발효되어 술이 되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막걸리가 무었보다도 고마운 것은 배골픈 사람에게 허기를 매꿔주는 그의
능력이다. 농경사회인 우리의 배곮는 농부와 노동자들에게 허기를 달래주는
막걸리의 역할을 현대인들이 알기나 할까? 같은 곡주면서도 맥아로 빚은 맥주는
겨우 목타는 갈증을 해결할 수 있지만, 막걸리는 해갈은 물론 허기를 달래는 데는
정말로 신통방통의 속효이다. 여름철 농삿일을 하면서 농부는, 새참으로 들었던 농주인
막걸리가 없었더라면 참으로 참기 힘들었을 것이며, 노동 효과도 줄었을 것이다.

막걸리를 폄하하는 말로는 먹으면 냄새가 난다고 불평한다. 또 트림이 나와
품위에 손상이 간다고도 말한다. 먹어 냄새 안나는 음식이 있을까? 있을 수 없지만,
있다고 한들 그것은 음식의 구실을 못할 것이다. 방귀가 싫다고 방귀를 회피해 보라.
특히 생사의 대수술후 방귀의 소중함을 알기나 하는가? 수술후에 방귀가 나오지
않으면 식사도 못하며 결국 생명까지도 지탱을 못하는 법. 트림도 위장의 음식물을
잘 발효시키면서 발생하는 방귀와 똑같은 생리현상인 것이다.

또 막걸리를 마시면 금방 배가 불러서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못된 탐욕을
누가 맡겠는가? 내 착한 막걸리이기에 배부르게 하면서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자기의 탐욕은 외면하면서 불평할 일은 아니다.
참으로 막걸리는 좋은 술이요, 우리에게는 고마운 음식이다. 마땅히 국주
(國酒)로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다. 막걸리를 술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언제부턴가 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며 애호가들이 늘면서 그로 인한 여러 짓거리를
본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의 막걸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인들이 맥주를 들 듯, 프랑스인들이 포도주를 즐겨 들 듯이, 막걸리가 우리의
일상사 먹는 음식이 되어야 한다.
막걸리는 맥주, 포도주와는 그 격이 다르다.
건강에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막걸리의 덕성을 다른 술들이 감히 넘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서양과는 달리, 우리의 밥상머리에 와인잔을 놓고 밥을 드는
상차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상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막걸리는
지극히 아랫 사람들의 지천한 밥상머리에서나 가능한 반주요, 또한 지금까지 그래
왔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요즘 조금 덜떨어진 신식이라는
이름의 족속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품위있는 최고의 국빈을 맞은 만찬장에서도 귀품나는 반주로 손색이 없는,
막걸리가 우리의 격을 높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수준으로 알기나 할까?
막걸리의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는 덕성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우리의 전통주인 막걸리는 정말 훌륭한 술이다. 우리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으로써 우리는 막걸리를 애용해야 한다., 물려준 좋은 지혜와 정성인
막걸리를 잘 활용하여 지키며 널리 보급해야 할 일이다. (계속)

응답 4개

  1. 이경호말하길

    제가 처음에 과거에 취하기 시작한 것은 녹차였고, 그다음은 중국차, 그 다음은 와인이었죠. 솔직히 막걸리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추억이 없었어요. 대학교 확사주점에 마시면 꼭 머리 아팠던 기억만 있었는데, 한 1년전부터는 막걸리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번에 하얀술 제작은 실패해서 모두 버렸어요 ^^;; 대신 술 생각이 나면 꼭 막걸리를 사서 집에서 아내와 장모님까지 불러서 한잔씩 돌리고 살짝 취하곤 하는게 낙입니다. 물론 애들도 한모금씩 주곤 합니다~ 정말 고마운 술입니다~

  2. 김정미말하길

    drunken rice가 막걸리의 영어 이름이라는 말을 얼마전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선생님 막걸리 예찬에 동의는 충분히 합니다. 그렇게 좋은 술 막걸리 영어 이름이 영~~ 별로인 듯 합니다. 직역하면 ‘술취한 쌀'(?)이라니.. 김치가 그냥 kimchi이듯이 막걸리도 그냥 makgeli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딸아이와 해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아주 이로운 술임을 오늘도 실감했습니다. 오늘 친정에 가서 김장하고 왔거든요. 김장하다가 배추쌈에 속싸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그렇게 맛날수가 없었어요. 힘내서 김장 잘 하고 왔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니 마치 막걸리 한잔 배부르게 마신 기분입니다. 내일 부터 추워진대요. 건강조심하세요.

    보내주신 [돈의 달인] 잘 받았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구요. 열심히 읽고 발제가 돌아오면 연락드릴께요. 모임에 참석해 주세요.
    그럼 오늘도 편안히 계세요…

  3. 말하길

    접때 감자탕 집에서 먹었던 막걸리, 정말 맛있었습니다. 열무김치와의 환상적인 조합! 샘의 막걸리 예찬에 동의합니다.

    • 김융희말하길

      덤님, 막걸리 맛 보담은 그 곳 분위기가 더 좋왔지요.
      자리(곳)와, 시간이 좋음 술맛 또한 상승하지요.
      그 때, 우리들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주가 있을 수 있겠어요. ..처럼 탁주는 두루 쓰이는 팔방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집 열무김치 맛 또한 일품이었죠. 덤님 또 그 곳에서 봐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