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우르릉 천둥소리(은기뢰殷其雷)

- 정경미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강좌나 세미나 때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 여자들이다. 지금 혹시 우리가 모르는 전쟁이 벌어져서 남자들은 다 거기 끌려간 게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든다. 하긴, 남자/여자를 생물학적 성性의 구분이라기보다 사회적 역할에 따른 구분으로 본다면, 직장에서 야근 밤샘을 밥먹듯이 해야 하니 남자들은 공부할 틈이 없는 게 당연하다. 옛날에도 남자들은 성 쌓고 제방 만들고 전쟁하느라 쉴 틈이 없었나보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편에 나오는「은기뢰殷其雷」라는 시는 부역負役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노래이다.

殷其雷 우르르 천둥소리
在南山之陽 남산 남쪽에서 울리거늘
何斯違斯 어찌하여 그대는 이곳을 떠나
幕敢或遑 돌아올 겨를이 없는가
振振君子 멋있는 그대여
歸哉歸哉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

‘은기뢰殷其雷’는 우르릉 쾅쾅 울리는 천둥소리를 말한다. ‘은殷’이라는 글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① 나라 이름 은殷.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주紂왕 때 망한 상商나라를 은殷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자가 나온 은허殷墟 유적지로 유명한 나라. ② ‘은殷’은 또 ‘많다’라는 뜻도 있다. 시경 패풍에 나오는「북문北門」이라는 시를 보면 ‘북문을 나서니 근심이 가득 [出自北門 憂心殷殷]’이라는 구절이 있다. ‘은은殷殷’은 ‘(근심 걱정이) 아주 많다’라는 뜻이다. 번영하여 성한 것을 ‘은성殷盛’이라고 한다. ③ 검붉은 색을 ‘은殷’이라고 한다. ④ ‘은殷’에는 또 ‘천둥소리’라는 뜻도 있다. 「은기뢰殷其雷」에 쓰인 은殷은 바로 이 네 번째 뜻에 해당된다. 그래서 ‘은기뢰殷其雷’라고 하면 ‘천둥[雷] 소리가 우르릉쾅쾅[殷] 울리네’라는 뜻이 된다.

殷其雷 우르르 천둥소리
在南山之側 남산 곁에서 울리거늘
何斯違斯 어찌하여 그대는 이곳을 떠나
莫敢遑息 잠시 쉬지도 못하는가
振振君子 멋있는 그대여
歸在歸在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소리를 들으면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 걱정을 한다. 봄날에 화사한 꽃을 보면서 시집가는 아가씨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린다든지(「桃夭」), 메뚜기들이 날갯짓하며 붕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손이 번성할 것을 기원한다든지(「螽斯」) 하는 식으로, 자연의 어떤 현상이 나의 특별한 정서를 환기시키는 표현 방법을 ‘흥興’이라고 한다. 천둥소리를 들으면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걱정하는 이 구절의 표현 방법도 흥興이다. 천둥소리는 총소리 대포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재난과 위험을 상징한다. 이 시는 천둥소리를 들으면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 생각을 한다. 비가 오면 새들도 둥지를 찾아 깃드는데 당신은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지금 뭐하는가. 어찌하여 잠시 쉴 겨를도 없는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애절하게 아내는 남편을 부른다.

殷其雷 우르르 천둥소리
在南山之下 남산 아래에서 울리거늘
何斯違斯어찌하여 그대는 이곳을 떠나
莫或遑處 잠시 편안할 겨를도 없는가
振振君子 멋있는 그대여
歸在歸在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

이 시는 전체적으로 단순한 시형이 반복된다. 천둥소리-남편 걱정-돌아오라는 기원 이 세 개의 의미가 4언言 2구句로 짝을 이루면서 세 번 반복된다. 천둥소리가 남산의 남쪽에서[在南山之陽], 남산의 측면에서[在南山之側], 남산의 아래쪽에서[在南山之下]에서 울린다. 천둥소리가 방향을 달리하면서 반복되는 것에서 이별의 고통이 강조된다. 천둥소리가 환기하는 지금의 현실-남편의 부재는 ‘어찌하여 그대는 돌아 겨를이 없는가[何斯違斯 莫敢惑遑]’ ‘어찌하여 그대는 잠시 쉬지도 못하는가[何斯違斯 莫敢遑息]’ ‘어찌하여 그대는 잠시 편안할 겨를도 없는가[何斯違斯 莫惑遑處]’로 비슷한 의미가 조금씩 다른 말로 변주된다. 이 반복과 변주를 통해서 남편의 부재를 걱정하는 아내의 불안한 마음이 더욱 강조된다. ‘멋있는 그대여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振振君子 歸哉歸哉]’ 이 마지막 구절은 변형되는 글자 없이 그대로 세 번 반복된다. 같은 구절이 여러 번 반복됨으로써 남편이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아내의 마음이 더욱 절박하게 느껴진다.

이 시는 단순한 시형이 반복되면서 간절한 염원을 전한다. 집을 떠난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판국에 수사와 기교가 끼어들 틈이 어디 있겠는가. 제발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일념으로 바랄 뿐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 시에 나오는 남편과 비슷하다.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시는 한밤중에 듣는 천둥소리처럼 절박한 외침을 전한다. 너 지금 어디 있는 거니? 너 지금 살아 있는 거니? 남의 전쟁에서 목숨 잃지 말고 본연의 네 자리로 돌아와 너의 삶을 살아라!

응답 1개

  1. 말하길

    남의 전쟁터에 헛되어 목숨을 던지는 남정네들에 대한 노래! 멋진 해석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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