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시집

우리 동네 구자명씨 / 고정희

- 은유

– 여성사 연구 5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히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 고정희 시집 <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사

가끔 궁금하다.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릴 때야 먹여주고 재워주는 엄마가 침묵의 여신이지만 2차 성징에 접어든 사춘기 아들에게 엄마는 말 많은 무수리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어봤다. 평가가 용이하도록 수우미양가로. “아들아, 나는 점수로 따지면 몇 점짜리 엄마야?” “음..20점이요.” “뭐야? 야! 너무 한 거 아니니? 내가 오십 점도 안 돼는 엄마냐…” “왜요? 20점 만점에 20점인대요.” 어이가 없었다. 만점을 맞고도 성적표에 ‘가’라고 찍힌 느낌이다. 100점 만점 평가가 보편적인데 의도가 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쪽지시험은 20점 만점이라고 항변한다. 티격태격. 나는 찔리는 게 있는지 아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점수로 읽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엄마의 자리를 돌아봄’이란 취지를 떠올리며 민원 접수 차원에서 의견을 청취했다. 아들이 엄마의 장점은 잔소리와 체벌, 강제 등 억압적이지 않은 것이란다. 민망하게도 평소에 내가 주입했던 대사다. “친구들한테 물어봐. 나 같은 엄마 없다…”라던 대략 5분짜리 레퍼토리.

이어 아빠의 장단점도 말했다. 아빠는 다 좋단다. 그럼서 부모의 비교평가까지 진도를 빼다가 나는 2차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엄마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 보여요.” 아들이 계속 말하기를, “아빠는 사람이 여유롭잖아요. 편안하고” 이런다. 나의 허둥지둥, 남편의 천하태평.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못마땅함이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스러움이었다. 또한 내가 여자-엄마이기 때문에 겪는 고질적인 불편이자 질곡이기도 했다. 문득 서글프고 참담했다. 작고 귀엽던 내 아들도 수컷이 되어 가는가. 남자는 다 그래, 심수봉의 노래가사가 진리란 말인가. 안 되겠다 싶어서 아들에게 퍼부었다. “엄마도 결혼하고 니네 낳기 전엔 무척 여유로웠어. 아빠랑 죽이 잘 맞는 풍류파였다고. 지금도 놀 줄 알아. 청소도 안 하고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쌓아 놓고.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고. 집안이 돼지우리가 되거나 말거나 니네가 밥을 먹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안 쓰면 엄마도 억척 안 부리고 여유롭게 살 수 있어. 왜 이러셔!”

아빠와 엄마 성정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젠더의 문제로 사고하라고,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이데올로기는 남자들이 만든 유언비어라고 강조했다. 나도 인정한다. 아빠의 가부장지수는 낮다. 가사노동과 육아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아빠에겐 언제든지 손 놓을 권리가 있고 비교적 자유를 누리지 않느냐. 대체인력이 대기 중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노동 강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할머니 세대는 더 했다…. 하려다가 입이 아파 그만두었다. 말해도 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인 나도 그 땐 몰랐다. 애기 낳고 키우면서 찬바람이 불 때마다 할머니와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예전엔 뜨신 물도 안 나오고 세탁기도 없었다. 자고나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그 기저귀 빨래를 다 어떻게 해냈을까. 자식도 좀 많은가. 심술보 달린 별난 시어머니를 모시거나 남편들은 무능력 하고 술과 여자를 탐하기 일쑤였다. 밭일과 논일이나 없었으면 다행이지.

용산02. 마을버스에 10분만 앉아 있어도 보인다. 할머니들이 탈 때마다 고작 두 칸인 버스 계단이 북한산 인수봉처럼 험해진다. 아이구 다리야, 오른 발, 어이구 다리야. 왼 발. 관절도 성치 않은데 무거운 보따리는 또 왜들 그렇게 들고 다니시는지. 한 식구의 안식을 떠받치느라 허물어진 육신들. 분장도 대사도 증상도 똑같은 여자들. 약하게 태어나 강하게 살다가 희미하게 머무는 유령들.

응답 3개

  1. ewqe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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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성자말하길

    그런 여자로 살아 온 세월이 올해 47년이네요. 그 동안 정말 이 땅에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이라 느낀 것이 여성이라는 것이었어요. 위에서 쓰신 것들 다 이 온 몸으로 다 겪어 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우리 딸들에게는 이런 현실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요.
    하지만 이제 늙어가니 조금씩 생각도 바뀌어지네요.
    그 고통들이 다 내게는 이제 힘이 되었다고요. 한없는 굴레로만 여겨졌던 가사노동조차도 인간의 독립을 위해선 꼭 필요한 자격인 것만 같습니다. 한 가정을 떠받치는 발판으로서의 내 능력이 이젠 그 마무리에서 오롯이 나 자신의 독립을 위한 발판으로 기능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고 남자들의 그 뺀질함을 받아들인다가 아니고요, 그들이 권리가 이제 그들의 독약이 되었다는 뜻이죠. 억압으로서의 노동과 권리로서의 뺀질함이 독립과 독약으로 나뉘어지는 이런 구조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횡설수설합니다.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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