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띠싹이 예쁘기보다

- 정경미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선물을 ‘동관彤管’이라고 한다. 이 말이 시경詩經 패풍邶風의 「정녀靜女」라는 시에서 나왔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 아닐까. 맛있는 거 있으면 같이 먹고 싶고, 가을날 단풍이 아름다운 길을 보면 함께 걷고 싶은 거. 무엇이든 선물을 하고 싶고, 서로에게 선물이 되고 싶은 마음. 「정녀靜女」는 연인들의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시이다.

靜女其姝 참한 아가씨 예쁘기도 하여라
정녀기주
俟我於城隅 나를 성 모퉁이에서 기다린다 하네
사아어성우
愛而不見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해
애이불견
搔首踟躕 머리 긁적이며 서성이네
소수지주

‘정靜’은 얌전하고 단아하다는 뜻이고 ‘주姝’는 얼굴이 아름다운 것이다. 둘 다 예쁘다는 뜻이 있지만 ‘정靜’은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참하다’라고 표현하는, 내면적인 덕까지 포함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러므로 「정녀靜女」라는 이 시의 제목은 ‘예쁜 그녀’ ‘참한 아가씨’쯤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쁜 그녀를 성 모퉁이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안 와. 머리 긁적이며 서성이네. 여기서 그녀를 만나기로 한 장소-‘성 모퉁이[城隅]’는 이후 연인들의 밀회 장소를 뜻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이별의 장소는 주로 물가[川邊]이듯 연인들이 만나는 장소는 주로 성모퉁이이다. 실제로는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만나도 연인들이 만날 때는 관용적으로 ‘성우城隅에서 만난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은 ‘소수지주搔首踟躕’이다. ‘그녀를 만나기로 했는데 안 오니 머리를 긁적이며 서성이네’라고 할 때 이 ‘머리를 긁적이며 서성이는’ 몸짓. 그녀가 올까 안 올까 오면 뭐라고 할까 설레임과 불안이 반반 섞인,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표현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듯 이후 ‘머리를 긁적이다 : 소수搔首’는 연인을 기다리는 몸짓의 관용적인 표현이 되었다. 머리를 안 긁어도 그녀를 기다릴 때는 관용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네’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靜女其戀 참한 아가씨 아름답기도 하여라
정녀기련
貽我彤管 나에게 붉은 대통을 선물했다네
이아동관
彤管有煒 붉은 대통 빛나니
동관유위
說懌女美 그대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노라
열역여미

사랑하는 사람 사이 주고받는 선물을 ‘동관彤管’이라고 한다. 붉을 동彤, 대통 관管. 붉은 칠을 한 통을 말한다. 붓통이나 필통 같은 거. 피리라고도 한다. 동관이 어떤 물건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든 동관에는 나를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동관유위彤管有煒’라는 표현이다. 동관은 외부의 대상일 뿐인데 그것이 어떻게 스스로 빛난다는 말인가. 선물을 받아서 기쁜 것은 나인데 어떻게 동관이 빛난단 말인가. 여기서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일어난다. 나와 동관이 그녀를 좋아하는 순수한 기쁨으로 하나가 된다. 나를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이 담긴 동관은 나를 기쁘게 하고, 그 기쁨이 동관을 빛나게 한다. 나와 그녀와 동관이 사랑의 기쁨으로 하나가 되는 놀라운 체험!

自牧歸荑 들판에서 띠싹을 선물하니
자목귀이
洵美且異 진실로 아름답고 특이해라
순미차이
匪女之爲美 띠싹이 예쁘기보다
비여지위미
美人之貽 그녀가 선물한 것이라서
미인지이

‘이荑’는 띠풀 새로난 것. ‘삘기’라고도 하는, 띠싹을 말한다. ‘귀歸’는 일반적으로 ‘돌아가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주다give’의 뜻도 있다. ‘귀이歸荑’라고 하면 ‘띠싹을 주다’ ‘띠싹을 선물하다’의 뜻이다.

그녀가 나에게 띠싹을 주었다. 들판에 지천으로 있는 풀이 뭐가 그렇게 귀하고 특별할까. 그런데 이 시는 그녀가 나에게 준 띠싹을 보고 “진실로 아름답고 특이하구나!”라며 감탄하고 있다. 그건, 띠싹 그 자체가 예쁘기보다 예쁜 그녀가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앞의 구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일어난다. 내가 띠싹에게 감동하는 것은 사실은 그녀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띠싹을 선물하는 그녀의 마음-나를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에 나는 감동한다. 여기서 나와 그녀와 띠싹은 각각 다른 대상이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서로 통한다.

그녀가 나에게 준 띠싹, 참으로 아름답고 특이하구나. 그러나 그것은 띠싹, 네가 예뻐서라기보다 아름다운 그녀가 주었기 때문이지[匪女之爲美 美人之貽]! 마지막 이 구절이 이 시의 백미白眉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이다. 연인들이 감동하는 것은 뭔가 크고 거창한 선물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 별거 아닌 물건에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쁘다.

이 시를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이렇게 풀이한다. “「정녀靜女」는 시대를 풍자한 시이니, 위衛나라 군주는 무도無道하고 부인은 덕德이 없었다[靜女 刺時也 衛君無道 夫人無德].” 즉 모시서에 따르면 이 시는 군주가 무도하고 부인이 덕이 없어 풍기가 문란한 위나라를 풍자하고 있다는 것. 애들이 이렇게 연애질이나 하고 다니니 나라 꼴이 되겠냐고오! 하하 과연 이 시는 도덕의 판단 기준을 넘어, 시대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생기발랄한 연애감정을 전하는 ‘동관彤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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