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쥐20 낙서 사건, 제3제국 미학의 낡아빠진 복귀

- 반이정(미술평론가)

코엑스 주변을 한시적으로 둘러친 녹색 방호벽이 철거되었다. 방호벽이 있는 동안 코엑스 인근, 아니 강남 서초 전 지역 노점상이 사실상 일주일간 영업 정지되었다. 노상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는 물론이고, 공공 휴지통도 도심 정비의 일환으로 치워졌다. 광고물 정비팀의 순찰은 매일 반복되었다. G20 정상회의 안전 개최를 위한 철통경계는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를 생산했다. 강남구청장이 배석한 반상회를 나온 한 강남 주민이 남긴 소감은 의미심장하다. “불편해도 참아야죠. 이게 애국이잖아요.” 비슷한 시기 10월 31일 새벽 강북 도심에서 G20공식 포스터를 낙서로 훼손한 혐의로 40세 남성이 체포되었다.

10월31일 G20정상회의 포스터 위에 스텐실기법으로 쥐를 올린 '쥐20 낙서'


물 샐 틈 없이 빡빡한 일정 가운데 이 사건도 국제행사를 둘러싼 소동들 중 하나로 분류되고 잊힐 만했다. 정상 국가에서라면 그랬을 텐데, 그리 되지 않았다.

혹자에겐 좀체 믿을 수 없는 사실일 테지만, 전적인 예술과 전적인 반정부 시위 사이를 가르는 엄밀한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듣자하니 ‘쥐20 낙서화 사건’(이하 쥐20 낙서)을 바라보는 담당 검찰의 태도가 이 낡은 이분법에 매달려 있단다. 보도에 따르면 쥐20 낙서 혹은 낙서 행위를 ‘국가 품격에 대한 도전, 더 나아가 조직적 정치 행위로 배후가 있을 거’라고 검사가 확신하더라는 얘길 들었다. 하지만 반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조형물로 제작하고, 당대 정권의 심기를 저촉하는 미학적 제스처가 미술사 정전에 비중 있는 사례로 기록된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미술사의 급변은 기존 관행에 반하는 조형 행위로 촉발된다. 이런 반론 앞에 ‘그렇지만 쥐20 낙서는 미술이 아니지 않냐!’고 반박할 게 분명하다. 세상에! 이를 어쩐다. 반동적 길거리 낙서화(가)로 출발하여 제도 예술계의 기린아로 급성장한 전례까지 너무 많으니! 미술사의 정전이 이들을 전위예술로 평가한 건 새로운 사실조차 아니다. 현대적 예술의 전개 과정에 한국 공안검사가 관심을 경주할 리 만무하다. 일탈적 미학의 내막을 이들은 애써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굳건히 신봉한 미학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가 통째로 뒤흔들릴 소지가 있으니까. 그러나 반동적 조형주의는 후진국 공권력의 미감과 무관하게 도도한 흐름을 이어왔고 지지받고 있다.

쥐20 낙서의 주동자로 지목된 ‘40세 시간강사 박씨’의 고백에서 보듯, 그는 당대 영국 낙서 화의 간판스타 뱅크시(Banksy)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 예술가 뱅크시의 낙서


관행적 예술에 반하는 뱅크시의 낙서는 영국 사법당국의 요주의 대상은 아니었다. 올해 그를 다룬 영화 “Exit Through the Gift Shop”이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될 만큼 비중 있는 대우를 받는다. 공공의 거리를 더럽힌 낙서가 예술사의 주요 사건으로 대두된 것은 뱅크시가 처음이 아니다. 과거사의 거물로 기록된 예술인의 수는 더 많다. 앤디 워홀과 동급으로 거론되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출발은 뉴욕 뒷골목과 지하철 벽면을 스프레이 뒤덮는 흔해빠진 낙서였다.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를 하는 장 미셸 바스키아, 1981년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미학적 논거도 뉴욕 지하철 낙서에서 시작된다.

뉴욕 길거리 광고판에 낙서를 하는 키스 해링 1980년대 초중반


더군다나 해링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노골적인 동성애 도상들로 채웠다. 그렇다고 지탄되지 않는다. 성소수자의 소수 표현으로 ‘감상’될 따름이다. 이들은 예술판의 이단아이지, 범법자로 회상되진 않는다.

1980년대 전후를 주 무대로 활약한 바스키아나 해링의 반골 계보학은 이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세기 초반 현대적 미술 연대기의 첨병부대 역할을 한 전위 예술가 대부분은 당대 반문화의 이단아였다. 1910년대 다다이즘이나 프랑스 68년에 맹약한 상황주의 운동(Situationist International)은 반문화적 악동의 대변인 쯤 되지만 주류 예술과 후진에게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권 혹은 관행적 미학 관습과 불화를 빚었지만,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문화 다양성을 살찌운 공로까지 빛 바래는 건 아니다. 열거한 선례들로 미루어 현대적 미술의 일각에선 제도 권력을 조롱하며, 관례적 전시행태를 거부하다 못해 전시장 밖으로 탈주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는 현대미술의 가장 흔해빠진 레퍼토리다. 한편 상황주의 운동이 내세운 대표 전술이 ‘표류’와 ‘전유’인데, 이는 쥐20 낙서와 유사성을 공유한다. 도심의 구획을 무계획적으로 넘나들며 반정부 메시지가 담긴 낙서를 그리거나 전단을 살포하는 것이 표류라면, 관행화된 미학을 뒤틀고 변형시켜 야유하는 것이 전유다. 달리 말해서 ‘관료화된 메시지를 재문맥화’하는 것이 전유이다. 규모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G20을 홍보하는 상투적 문양의 포스터(관료화된 메시지) 위에, G20 알파벳과 동음이의어인 ‘쥐’를 실제 그려 넣어 본래의 의미를 비튼다(재문맥화). 낙서화의 본질은 반문화적 저항과 직접 행동의 결합으로 강화된다. 반문화 행동주의는 도시 전체를 전시 공간으로 확장한다. 중후한 화이트 큐브(제도화된 전시 공간)를 탈피한 거리의 낙서는 시각적 충격도 곱절로 부풀린다. 다변화된 현대 미술이 낙서를 간과하지 않고 엄연한 지류로 수용하는 까닭이다.

물론 잘 안다. 이런 미술사적 유사 전례를 열거해봐야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에는 무용하다는 사실을. 반동적 예술의 계보가 긴 것처럼, 예술 반동성을 향한 몰이해와 혐오의 역사도 유구하다. 관료집단이 옹립하는 예술 이데아는 별도로 존재하나 보다. 건설사 사장 출신 교회 장로(長老) 행정수반과 자리 보존에 연연하는 충성과잉의 경찰수장의 미감은 굳이 속을 털어보지 않아도, 역사적 선례를 통해 추정가능하다. 20세기 초 독일 집권당이 한 표본이다. 전형적 예술 유미주의에 저항하며 기지개를 켠 현대적 미술의 종주국 가운데 독일이 꼽힌다. 당시 독일 미술은 1차 대전 직후 붕괴와 쇠락을 괴이한 표현력으로 부풀렸다. 극우성향 민족주의로 독일을 재건하길 바란 제 3제국 총통 히틀러와 선전 부장 괴벨스는 자국 전위 미술의 비판적 내용과 추한 형식을 못마땅했다. 해서 예술이 아닌 것 혹은 ‘나쁜 예술’로 간주했고 급기야 실험예술을 ‘퇴폐 미술’로 낙인 붙여 공권력이 관리하려 했으니, 그 참혹한 결과가, 후대 미술사가 부끄럽게 기록하는 1937년 ‘퇴폐미술전(Ausstellung der Entarteten Kunst)’이다.

'퇴폐미술전'을 순시하는 히틀러 1937년


압류한 현대미술품을 한자리에 모아 순회 전람회를 개최하며 국민 계몽에 나선 사건이다. 나치는 동시대의 독일의 실상을 즉물적으로 표현한 이미지가 독일의 건설성과 이상주의를 저해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나치의 판단력은 쥐20 낙서를 대하는 한국 사법부 행정부의 강경대응으로 반복된다. 문화 다양성을 바라보는 관료의 몰취향은 과거사의 선례를 통해봐야 학습효과를 얻지 못하는 때가 많다. 소동으로 그칠 사건을 미학과 사회학의 평가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건, 창작자도 관람자도 아닌 당국의 과잉대응이다. 쥐20 낙서를 시국 사건쯤으로 판단하는 공안 검찰의 과대망상은 1930년대 제 3제국의 철권정치의 그늘을 연상시킨다.

쥐20 낙서화는 발견 직후 현장에서 철거되어, 저해상도 사진 자료만 남아있다. 사법 행정 당국은 그 비인가 낙서화가 대중 시선에 노출되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눈에 가린다고 ‘법 감정’ 저변에 깔린 시민의 카타르시스까지 앗을 순 없다. 2010년 서울 도심에 출연한 쥐20 낙서는 세계화 반대 집회 때 곧잘 관찰되던 (예측 가능한) 시위 유형에서 탈피해 있다. 짱돌과 화염병의 저항이 아니다. 그건 일상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국제행사PR의 상투성을 비웃는, 완화된 시각 저항물이다.
하 지만 정부 당국과 시민조차 쥐20 낙서를 G20에 대한 단발적 야유로만 한정 해석하는 것 같다. 그 지점을 넘어서 살필 부분이 있다. 쥐20 낙서는 2010년의 한국이 아닌, 2008년 이후 한국사회 지배방식에 대한 조롱과 은유다. 발음이 같아 쥐그림을 그렸을 테지만, 누구나 짐작하듯 행정 수반에 대한 공개적인 별칭이기도 하다. 어느덧 2008년 이후 무책임한 정치 지도자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우회로를 거쳐야하는 사회가 되었다. 짱돌도 화염병도 아닌 쥐 낙서조차 용인 못하는 공권력의 옹졸한 과잉방어에 맞선다는 면에서, 쥐20 낙서는 ‘완화된’ 시민 저항이다.

마치 2008년 이후 눈코입귀 사방을 봉쇄한 한국사회의 갑갑함은, 미술관 백색 사방에 갇힌 제도 미술의 답습과 유사하다. 일방통행만 존재하는 고립된 섬. 제도 전시 공간을 벗어난 쥐20 낙서는 익살맞은 해방구의 후련함이 있다. 낙서 특유의 시의성과 기동력을 갖췄기에. 2010년 쥐20 낙서가 미학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소동으로 그칠 일을 시국사건으로 부풀려 해석하는 당국의 대응이, 쥐20 낙서를 미학적 사회학적 논의 대상으로 부상시켰다. 결과적으로 쥐20 낙서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의 미숙함을 반증했고, 표현의 유연성에 대한 공동체의 고민을 촉진했다. 조형적 미숙함이 문제라면 문제지, 낙서가 촉발시킨 성찰의 내용마저 문제 될 순 없다.

ps 1. “모두가 만장일치로 침묵을 공모하고 있는 작은 방에서, 진실 한마디는 한 발의 총성 같은 소리를 낸다.” 198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체슬라브 밀로즈(Czeslaw Milosz)가 한 발언이란다. 발언이 아닌 낙서도 저 같은 힘을 갖는다.

ps 2. 생김새가 닮았다 하여, 쥐를 무능한 위정자에 빗대는 건 재기발랄한 풍자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선량한 설치류를 몹쓸 영장류의 가면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인류의 몹쓸 버릇 같다. 대체 쥐가 쥐 닮은 자의 행패보다 잘못한 짓이 뭐란 말인가? 혹은 쥐의 소용량 두뇌가 쥐 닮은 자의 사리사욕으로 꽉 찬 두뇌보다 사악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글은 한겨레 오피니언넷 ‘훅 Hook’에 동시 개재됩니다

응답 2개

  1. 자유인말하길

    정신나간 떡검, 색검들이 GR 발광을 하는군.

  2. November말하길

    쥐20 그래피티는 예술의 힘을 느낀 한발 총성 같은 사건이었네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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