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두려움과 상상력

- 매이아빠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매이의 만화 검열이 심해졌다. 예전에는 잘 보던 만화영화 중 무서운 장면이 있는 것은 절대 안 본다. 장편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대표적인 예다. 일단 공주(자스민)와 왕자(알라딘)가 나오는데다, 황당하고 (지니와 원숭이의) 웃기는 장면도 많아서 무척 좋아하던 만화영화였는데, 지난 주에는 마지막에 나쁜 마법사가 요술램프를 장악하여 지니를 무섭게 만들고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장면에서 매이가 사색이 되어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워. 괴물이야. 무서워” 사시나무 떨듯이 공포에 질린 매이는 TV를 끄고 나서도 한동안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다음 날 아침에도 꿈에 괴물이 나타나 매이 등을 움켜잡았다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타잔>도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멋진 노래가 어우러진 이 장편 애니메이션은 나도 좋아하는데, 귀여운 아기와 동물들의 익살스런 모습도 재미있거니와, 마지막엔 ‘공주’(제인)와 ‘왕자’(타잔)가 ‘결혼’하는 대목까지 나와 매이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만화영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타잔>이 무섭다며 안 보겠단다. 어디가? 첫 장면에서 표범이 아기 고릴라를 잡아먹는 장면과 이어서 아기 타잔을 잡아먹으려는 표범과 구해주려는 엄마 고릴라 사이의 각축전이 문제가 됐다. 큰 이빨을 드러내고 무서운 집념으로 아기 타잔을 추격하는 표범이 매이의 공포게이지를 건드린 것이다.

마치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주인공 아이 ‘부’가 특급 몬스터 ‘설리’를 귀여운 ‘야옹’이로만 여기다가 마지막에 무시무시한 본색을 보고 겁에 질린 것처럼, 매이는 지금까지 재미 있게만 보아 왔던 만화영화의 공포 장면에 치를 떨며 두려워했다. 먹고 먹히는 구강기의 세계와 잔혹성의 극장이 펼쳐지는 항문기의 세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폭력이 성기기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새삼 외상적인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먹힌다는 것, 맞는다는 것, 심지어 뭔가를 상실한다는 것조차 치명적인 상처와 폭력으로 내면화된다. 어른의 세계로 들어오는 첫 번째 관문이 공포심을 배우는 것이라니, 참 씁쓸하다.

공포심의 학습과 나란히 오는 것이 상상력의 학습이다. 요즘 매이의 상상력이 드라마틱하게 폭발하고 있다. 커다란 독수리가 자기 등을 발톱으로 움켜잡고 절벽으로 날아갔다는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고, 아빠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매이 아빠는 매이 엄마를 사랑해. 아기 낳아 줘서 고마워.”)를 받아쓰게 하고는 목욕하는 엄마에게 보여주며 깔깔거리거나, 잠 자기 전 침대에서 자기가 지어낸 뒤죽박죽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상상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림을 그릴 때도 상상력이 넘친다.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 까만 하늘에서 점점이 비가 내려” “음, 그래? 이건 뭐야?” “음, 이건 고구마야” “알록달록한 고구마?” “응, 고구마가 꾸불꾸불한 길로 여행을 가는 거야” “음, 고구마가 꾸불꾸불 여행을 하는구나.” 보이는 대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상상한 대로 그림을 그린다.

드라마틱한 상상력과 두려움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이 틀림없다. 두려움이란 확실히 상상의 드라마에서 온다. <올드보이>에서 오달수가 미도를 구하러 온 오대수를 붙잡아 망치로 이빨을 뽑으려 하면서, 처음엔 겁만 준 다음 “사람은 말이야..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 거래..그러니까..상상을 하지 말아봐..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라고 말하던 장면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고, 또 저렇게 되겠지? 그럼, 또 그렇게 될 거고, 그럼 나는…’ 자기가 만든 상상의 드라마 속에 나를 던져 놓고 미리 기뻐하고 미리 두려워 한다. 상상력의 드라마는 기쁨의 정서보다는 두려움의 정서와 훨씬 친숙하다. 즐거운 상상 속에서 행위에 돌입하기보다는 두려운 상상 속에서 행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나? ‘야밤에 정부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린다고? 그러다 잡히기라도 하면? 그렇게 되면…으, 그만 두자’ ‘대학을 안 간다고? 취업을 포기한다고?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으, 생각만 해도…그만두자.’ 상상의 드라마는 우리를 절뚝거리게 하고 행위 앞에 멈춰서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매이는 집 안에서 자주 넘어진다. 예전에는 아무리 혼잡해도 용케도 장애물을 피해 잘 다녔는데 요즘엔 자주 걸려 넘어지고 미끄러진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몸이 뻣뻣해지는 것 같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부’가 ‘설리’의 헌신적인 우정과 용기에 힘 입어 두려움을 이겨냈듯이, 매이도 괜한 상상의 드라마에 빠져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키워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우정을 키워야 한다. 사람과의 우정이든 사물과의 우정이든. 요즘 부쩍 친구에게 관계에 집착하는 매이가 우정의 관계에서 용기를 키우기를 바란다.

응답 1개

  1. 나나말하길

    사진의 매이 표정도 웃기지만, 언제나 배경을 차지하는 몽이의 포즈도 참 웃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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