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디지털 시대 저작권의 딜레마

- 오병일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라는 영화가 있다. 우연한 사고로 친구 마이크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비디오 가게의 비디오를 전부 지워버린 제리. 이 사실을 숨기고 비디오 대여를 위해 그는 마이크와 함께 직접 증흥적으로 영화를 찍어간다. 스스로 주연과 조연이 되어 <백 투 더 퓨처>, <로보캅>, <킹콩> 등 유명 영화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찍어가는데, 이들의 영화는 오히려 마을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만든 영화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폐기되는데… 이 영화는 소규모 비디오 대여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인터넷 환경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어다. 수용자가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 문화의 창작자와 수용자가 어우러지는 공동체, 그러나 우리가 그저 수동적인 소비자로 머물기 바라는 저작권법.

디지털 저작권의 강화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은 지식과 문화의 생산-유통-향유의 과정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소비자(이용자)가 지식, 문화의 배포자, 나아가 생산자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해본 사람치고, 소위 ‘해적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기존에 저작물 유통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던 문화-유통 자본의 입장에서는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련의 저작권 강화 경향은 자신의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문화-유통 자본의 반격이다.

사실 전 세계적인 저작권 강화 경향이 시작된 것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보편화되기 이전부터이다. 한때 유럽의 저작권자로부터 해적국가로 비난을 받았던 미국은 1980년대를 전후하여 무역 보복을 무기로 다른 나라에 지적재산권 강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제조업 등 전통적인 산업 영역에서 경쟁력을 상실해가던 미국이 자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던 정보, 문화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 첫 저작권법 전면개정은 1986년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한미통상협상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한 결과이다. 개별 국가를 대상으로 지적재산권 강화를 요구해온 미국은 아예 국제협정 차원에서 지적재산권과 무역을 연계시키는데 성공하는데, 그 결과가 1994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저작권, 특허 등과 관련된 국제협정이 있었지만, 트립스는 지적재산권의 전 세계적 보호수준을 한층 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역 보복과 연계시킴으로써 실효성을 담보하게 된 것이다. 화이자, IBM 등 초국적 제약, 정보자본은 트립스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미국의 무역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제협정과 각 국의 국내법 개정을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진다. 소위 ‘디지털 의제’를 다룬 국제협정인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저작권 조약과 실연음반조약이 체결된 것은 1996년이다. 이 협정은 ‘공중전달권'(쉽게 말해, 인터넷 상에 저작물을 업로드하는 행위가 ‘공중전달’에 해당한다)을 저작권자의 권리로 신설하고, 기술적 보호조치(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복제 등을 통제하는 기술적인 수단)를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8년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이 통과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00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전송권’이 신설되었다.

최근 저작권 강화의 초점은 ‘집행(enforcement)’ 영역이다. (법이 있어도 위법행위를 효과적으로 단속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을테니까!) 즉, 민형사적 구제조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의 책임 강화, 저작권 삼진아웃제 등을 통해 저작권이 효과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 저작권 선진국도 아니면서, P2P나 웹하드와 같은 ISP에 대해 필터링을 의무화하는 내용과 저작권 삼진아웃제(반복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한 경우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작권 침해를 했다고 정부가 판단한 경우 – 이용자의 인터넷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세계 최초로 입법화하였다. WTO나 WIPO에는 전 세계 대다수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고, 또 갈수록 제3세계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유럽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타국에 트립스보다 강화된 보호 수준을 요구하게 되는데, 한미 FTA와 한EU FTA 역시 마찬가지다. 나아가 선진국 중심의 일부 국가들만 모여서 지적재산권 집행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협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이 ‘위조 및 불법복제 방지협정(Anti-Counterfeit Trade Agreement, ACTA)이다. ACTA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 한국, 스위스, 멕시코, 뉴질랜드 등 10여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데, 2008년 6월 1차 협상을 시작하여, 2010년 10월 도쿄 협상에서 최종 협상문을 만들어냈다. WIPO에서와 같이 논의 내용이 공개되지도 않고, 브라질과 같이 지재권 강화에 비판적인 국가들도 빼놓고 진행할 수 있으니 미국이나 유럽연합 입장에서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지식에 대한 접근과 저작권

이와 같은 디지털 저작권의 강화는 인터넷 상에서 ‘해적 행위’를 통제해야 한다는, 그렇지 않으면 문화 산업이 붕괴될 것이라는 명분 하에 진행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역으로 정보에 대한 접근권,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상호 소통을 제약하고, 이용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이러한 규제가 저작권이 애초에 목적하는 바, 즉 ‘문화의 발전’에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최근 ‘가디언’지는 BBC의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아카이브에 공중이 접근하도록 하는데에 저작권이 질곡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기 위해 800명의 상근 직원이 3년 동안 필요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물론 법을 조금 바꾸면, 이러한 행정 비용의 낭비를 해결할 수 있다. 영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국내 도서관들도 90년대 말부터 ‘디지털 도서관’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안타깝게도 원격 열람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원격 열람을 할 수 없는 ‘디지털’ 도서관이라니!) 심지어 도서관 내에서 디지털화된 도서를 열람할 경우에도 허락받은 부수 이상 동시에 열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원격 열람이 가능해지면, 극단적으로 책이 1권밖에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출판계의 반발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절판된 도서나 비영리적 논문 등까지 원격 열람이 제한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 지식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

현재는 여러 유료 음악 서비스의 하나가 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 ‘소리바다’는 (사실상 당시 인터넷 이용자 전체라고 할 수 있는) 2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소리바다는 단지 음반 구매 비용을 아끼려는 이기적인 소비자들의 해적질을 도와주는 도구였을 뿐일까?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시장성이 없어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 오래된 음악,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해외 음악, 그리고 인디 음악 등을 접할 수 있는 음악의 보고(寶庫)였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나누는 커뮤니티였다. 비록 소리바다를 통해 유통되는 음악의 주류가 당시의 히트 음반이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의미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문화-유통 자본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문화 상품’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소비’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주어진 틀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문화-유통 자본은 시장성이 없으면 판매하지 않지만, 라틴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인도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사실 필자도 집에서 IPTV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기꺼이 유료로 이용할 의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되지 않거나 제멋대로 사라지는 영화 목록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쉽게, 상호간의 협력을 통해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술과 서비스가 존재한다.

문화는 소비가 아니라 표현과 소통이다.

지난 2009년 6월, 딸 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로 삭제를 요구당한 사례가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다행히 1심 법원은 이를 공정이용으로 인정했고, 원고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현재 항소한 상태이다. 그러나 게시물 삭제에 대해 용감하게(?) 소송을 제기한 이 블로거와 달리, 권리자단체의 묻지마 삭제 요구에 울며겨자먹기로 삭제당한 글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황당한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5년에는 KBS의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팬 카페에 올려진 동영상이나 사진에 대해 KBS가 삭제 요구를 한 바 있다. 올해 3월부터는 SBS의 요구로 방송프로그램 캡쳐화면이 포함된 블로그 포스팅이 사라졌다. 아마도 친구와 드라마에 대한 수다를 떨기 위해 방송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황당한 일일 것이다. 온라인이라고 달라질까?

이것들은 저작권이 ‘남용’되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우리 누구나 겪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청소년들의 비영리 라디오 방송, 사회단체들의 뉴스 아카이브 서비스, 재기발랄한 네티즌의 패러디 동영상, 전문가 뺨치는 문화 비평 블로거 등 시민들의 문화적인 표현과 상호 소통은 공개된 저작물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드라마나 스포츠 게시판을 가보라. 펌글, 사진, 동영상 클립 등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사람들은 더이상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으며, 스스로 만지고 싶어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만의 편집본을 만들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음악과 함께 라디오 방송을 할 수도 있고, 그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할 수도 있다. 단지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틀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문화 아니던가?

저작권을 넘자!


과거에 저작권 침해에 대한 단속은 용산 전자상가의 불법CD나 길거리의 불법 음악테이프와 같이 주로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그 규제 대상이 ‘모든’ 시민들의, ‘비영리적 표현이나 상호 소통’으로 확대된다. 현재의 저작권 체제는 ‘복제의 통제’를 기본 원리로 한다. 이와 같은 저작권의 기본 원리가 복제, 배포, 리믹스(변형, 재조합)에 기반한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과 적절한 ‘타협’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현행 저작권 체제가 근본적으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국제협정이 바뀌어야 한다. 또한, 저작권 체제에 기반한 독립 창작자나 (기업에 고용된) 창작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에 대한 대안적 수익 모델이 보편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저작권 폐지를 얘기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현행 저작권 체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긴 저작권 보호기간(각 국마다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저작자 사후 50년이다)은 단축되어야 하며, 최소한 비영리적인 저작물 이용은 공정이용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창작자에게 적절한 보상과 재생산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다양한 공공정책이나 대안적 사업 모델을 포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영관이나 공연 시설, 미디어센터 등이 그러한 공공정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전업 창작자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공적지원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의 복지 인프라의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민간 영역에서도 저작권에 기반하지 않는, 그러나 창작자에 보상할 수 있는 대안적인 모델이 실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음악 서비스 업체인 매그나튠(magnatune.com) 의 경우, 양질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료로 오픈하고, 유료 가입자에게는 무제한 다운로드를 허용하며, 창작자와 직접 계약하여 수익의 50%를 제공한다. 매그나튠의 음악은 모두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를 채택하여, 비영리적 이용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사실 문화 창작자 입장에서 자신의 저작물이 보다 많이 배포되고, 향유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용자들의 복제 및 배포 행위는 오히려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홍보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창작자의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악같은 경우 음악 자체는 무료로 배포하되, CD 판매나 공연 수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저작권의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그 틀을 뛰어 넘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 필자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공유연대 IPLeft 활동가입니다.
* 지적재산권은 저작권, 특허, 상표 등 무형의 산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다양한 제도를 포괄한다. 이 글에서는 저작권에 초점을 맞췄다.
* 초국적 자본이 트립스 이전 미국의 무역 정책 및 트립스 형성 과정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초국적 기업에 의한 법의 지배: 지재권의 세계화> (수전 K. 셀 저, 남희섭 역, 후마니타스, 원제 : Private Power, Public Law) 참고.
* ACTA의 개요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http://ipleft.or.kr/node/2616 참고.
* 본문의 가디언지의 보도 http://www.guardian.co.uk/law/2010/nov/25/bbc-archive-online-access-law?cat=law&type=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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