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금

우카이 사토시: 또 하나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 신지영

동아시아적인 너무나 동아시아적인

우카이 사토시가 <지금, 동아시아>에 소개되는 것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적어도 그의 전공분야로만 보자면 말이다.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일본인. 이것이 그에게 붙는 제도적 레테르이다. 그러나 과연 서양 정치사상과 동아시아 사상은 별세계인 것일까?

일본에 온지 2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한국의 스쾃 활동가들과 함께 오사카의 홈리스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활동가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스쾃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어떤 홈리스가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 나도 원래 한국에서 건너왔어.” 한쪽 귀가 뭉그러진 그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한국말을 하는 걸 보고는 반가워 말을 걸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스쾃을 생각하면서 오사카 홈리스 거리를 걷던 내게,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2세가 말을 건 것이었다.

재일조선인 홈리스. 그가 어떤 경로로 홈리스가 되었는지 들을 수는 없었다. 단지 그 과정 속에는 자본주의에 의한 대중의 빈곤화 뿐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결과 일본으로 이주해야 했던 유민(流民)들의 역사가 겹쳐 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일본의 빈곤문제 속에는 식민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속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역사도 있을 것이었다. 그는 그 겹겹이 겹쳐진 배제의 영역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사카의 홈리스 거리에서 재일 조선인을 만나는 상황 자체가 매우 동아시아‘적’인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느꼈다. 서양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추구와 그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콜로니얼한 상황, 그것이야말로 지금, 동아시아 사상이 들러붙어 싸우는 영역이지 않을까? 동아시아적인 인식틀로의 전환이 서양 정치사상에 대한 단순한 반대에 머물러 저항하려는 대상과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모더니티와 콜로니얼리즘이 착종된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말들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중에 우카이 사토시의 글과 마주쳤다.

우카이 사토시는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9.11 이후의 테러리즘론 비판, 팔레스타인 문제, 배외주의 등 글로벌한 차원의 문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세계에도 다시금 생기는 ‘주변’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그는 일본 안에서 외국인에 대한 배제가 확산되는 분위기를 비판하면서, 재일조선인의 인권상황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활동,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철폐문제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나 중국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동아시아 3국간 대화를 모색하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이 활동은 콜로니얼리즘과 모더니티가 착종되어 있는 일본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민감한 분석에서 비롯된다. 프랑스문학 사상의 전공자가, 동아시아의 주변과 공감하고 저항적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일본이라는 위치를 뒤흔드는 이러한 태도 자체가 동아사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동아시아’라는 말을 ‘서양’의 반의어로써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 속에 개입함으로써 어떤 질서가 움직이는 동력을 변환시키고, 그 동력을 통해 좌표축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써, 즉 ‘움직이는 번역어’로써 이해한다면 말이다. 어떤 공동체에든 다시금 생기는 어둠과 공감하고, 소수자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우정으로 가득찬 저항방식을 발명하려는 사상이야말로 동아시아가 추구해야 할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사상을 질문으로 번역하는 우카이 사토시의 태도는 래디컬한 의미에서 ‘동아시아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이다.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여 번역해낸 질문들

그는 언젠가 현재란 혁명, 민주주의, 저항과 같은 기존의 가치들이 힘을 잃어버린 시대이며, 그러한 가치들을 새롭게 번역할 시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번역작업은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자, 서양과 동양, 이론과 현실과 같은 대립적인 항들 사이에서, 침묵하는 소수자와의 마주침 속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그리고 그의 저작 전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저작에는 책을 쓴 기간의 정치적 사건들과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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