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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22일째 현대차 비정규직 전화인터뷰

- 데모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이 이십일을 넘겼다. 상황은 이렇다.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이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자동차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은 파견근로자로 봐야 하며, 파견법에 따라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이래 그들은 현대자동차와의 직접 교섭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노동자는 현대차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며 교섭을 거부해왔다. 이에 현대차비정규직 노조 울산지회는 11월 15일 파업과 동시에 울산 1공장 점거농성에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울산1공장에서 농성 중인 450 여명의 노동자들은 컨테이너와 사측경비원들의 장벽에 가로막혀 외부와 단절된 채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노동부장관과 현대자동차측은 한 목소리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현대차와 직접 관련이 없는 ‘외부인’이며, 이 농성파업은 불순한 ‘외부세력’에 의한 불법파업이라며 120억원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국가의 공권력 투입을 재촉하고 있다. 공장 안에 있지만 ‘외부인’ 취급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들은 현대차동차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다음은 울산에서 농성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원 최승병 씨와 통화내용이다.

–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율은 얼마쯤 됩니까?

= 관리직까지 포함하면 25% 안팎입니다.

– 98년도 현대차 구조조정 이후 정규직 노조와 회사간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을 16.9% 수준으로 제한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더 많네요?

= 네, 값싸게 부려먹고 책임은 안 져도 되니 회사로서는 비정규직을 늘리는 게 이익이죠.

– 98년도 합의 때 구조조정 시 비정규직이 우선 해고된다는 묵시적 조건이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 합의사항은 아니고, 회사의 노동력 수요에 따라 라인별로 일정 수의 노동자를 정리 해고할 때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는 게 관례로 내려왔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어먹지” 16.9%의 비극

1998년 현대자동차는 구조조정을 통해 근로자 1만여 명을 전격 해고했다. 이후 생산량을 늘리면서 새로 뽑는 직원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불안을 느낀 현대차 노조는 비정규직 확대를 막기 위해 사측과 ‘비정규직 비율을 전체 조합원의 16.9% 수준으로 한다.’는 조항에 합의했다. 노동조합 스스로 ‘언제든 해고 가능한 노동자’의 비율을 사용자와 합의한 이 아이러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식으로 겁박하는 회사에 목숨을 부지하려고, 항시적으로 떼어 줄 살점의 몫을 정한 순간 이미 결말은 동화처럼 뻔하다. 조금씩 떼어주다 몸뚱이 전체를 잡아먹히고 마는 것. 사용자측은 비정규직 비율을 조금씩 늘렸고 그럴수록 정규직노조원의 불안과 생존의 위험도 커져갔다. 정규직노동자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정해진 16.9%의 희생양이 25%로 늘어난 지금,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더 이상 ‘떼어 줄 살점’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체로서 당당히 생명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 지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는 몇 명 정도 되나요?

= 울산공장만 1천 200명에서 1천 300명 정도 됩니다. 집회참석에는 소극적이면서 잔업거부 투쟁에만 참여하는 노동자가 200명 정도 되고요.

– 지금 울산공장 농성장 안에 있는 노동자 수는 몇 명입니까?

= 450명 안팎입니다.

– 농성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 단수, 단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음식반입이 잘 안 되어 라면 몇 상자로 수백 명이 연명하고 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 포로도 이렇게는 대우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측의 고사작전 속에서 농성자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 노조원에게 절한 사연

지금 안에서 외부로부터 고립된 그들은 평소 작업장 안에서 외부인 취급받아왔다. 사내하청 노동자로서의 삶은 정규직 노동자와 섞여 똑같이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신분에 귀속된 신분사회 속의 삶이었다.

– 평상시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간의 작업 성격이나 작업 라인의 차이가 있습니까?

= 자동차조립 공정의 특성상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5.6~6m 공정라인에 섞여서 일합니다.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노동과정에서는 구별할 수 없습니다.

–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평소 교류나 친분은 있습니까? 신분상의 차이 때문에 피차 껄끄러운 측면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같은 일 하면서 다른 대접을 받는 것에 정규직노동자도 안타까워합니다. 일상생활에서 공조회도 같이하고 회식도 같이 합니다. 그럼에도 본인들의 고용불안 때문에 선뜻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하지는 못합니다.

– 언론에서 보면 지난 10월 30일에 이경훈 현대차노조 울산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외부 세력 때문에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외부세력을 색출하겠다”라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 비정규직노조원과 정규직노조 사이의 갈등이 과장보도 되었습니다. 정규직노조 대의원이나 조합원 중에서 98년도 정리해고의 학습효과로 고용불안을 느끼며 비정규직 싸움에 소극적인 분들도 계시고, 그 때문에 섭섭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있으며, 이번에 적극적으로 연대해 주신 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 지난번 정규직노조 대의원 대회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엎드려 절을 하는 사진을 봤는데…

= 비굴한 건 아니었고, 간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또 ‘외부세력’ 색출이라고 보도된 것은 왜곡된 것입니다. 쟁의대책위에서 농성수칙을 정하고 그 속에서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에 대해 우리가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제스처를 취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 폭행사건으로 과장한 것입니다.

– 비정규직지회와 정규직지부 사이에 일상적인 소통 채널이 있습니까? 언론에서는 정규직노조가 사측과 마찬가지로 농성장의 외부세력을 척결하는 데 앞장섰다거나 농성장 안에서 노-노 갈등이 폭력적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 비정규직지회와 정규직지부의 운영구조가 분리되어 있지만 일상적으로 소통해 왔습니다.

03년 비정규지회 발족… 05년부터 현대차와 직접 교섭

지금 현대차는 7월 20일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단지 소송을 제기한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2400명 전체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일관되게 현대차 근로자가 아닌 사내하청업체(동성기업) 노동조합은 애초에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청업체대표와 비정규노조, 현대차대표와 정규직노조 4자 ‘협의’는 도의상 할 수 있겠지만, 현대차와의 직접 교섭은 할 수 없다고 한다.

– 2003년에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가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럼 그 이후 정식 노동조합으로서 현대차와 교섭해 왔습니까?

= 2005년과 2006년에도 제가 강호돈 부사장과 직접 교섭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2005년부터 몇 차례 불법파견 문제를 가지고 협상하면서 교섭의 틀을 마련해 왔습니다. 이번 파업농성도 그 때의 교섭 틀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 회사측은 계속 불순한 외부세력이 농성장에 있다고 하는데,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 민주노총 간부들과 금속노조 노동자들이 외부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 현대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2005년에 지회가 만들어지면서 계속 조합비를 내고 활동해 왔는데, 지역에서 연대했던 해고자들을 외부세력으로 보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 혹시 사측이 고용한 외부세력은 없나요?

= 회사 측 관리자와 경비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평소에 봐 왔던 사람들이라 얼굴을 압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떡대 좋은 청년들이 농성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용역깡패인 듯합니다.

– 일부 조합원들은 상경투쟁중인데?

=네, 하지만 사측은 1인 시위도 못하게 용역깡패를 동원해 납치와 폭행을 자행하고, 경찰은 조합원 8명을 연행해 갔습니다. 농성장도 못 만들고 있습니다.

– 지역 차원에서의 연대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 지역분들이 저희 문제에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바깥에 있는 노조원들이 주말마다 양정동에서 48시간 노숙농성을 하는데요, 인근 식당 아주머니들이 오뎅탕도 끓여주고 먹을 걸 많이 갖다 주십니다.

450명 고립 “전쟁 포로도 이렇게는 대접 안 한다”

– 공권력이 투입될 것 같습니까?

= 지금 분위기로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 언론에 보면 ‘시나’를 준비하고 있다던데?

= 평상시 작업재료인 본드를 녹일 때 사용하던 ‘시나’를 보고 외부에서 반입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 지금 어떤 지원이 절실합니까?

= 지금 농성장 안으로 의약품이나 식량을 공급할 루트가 없습니다. 전쟁 포로도 이렇게는 대접 안 합니다. 노동권 이전에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알려주십시오.

이번 파업농성은 공권력의 투입으로 ‘실패’하거나 사측의 손해배상청구 취하 및 향후 교섭 통로 마련으로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로 끝날지 모른다. 금속노조의 강력한 연대파업으로 어쩌면 농성자에 대한 정규직화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승리는 일부 비정규직 조합원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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