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북소리 둥둥

- 정경미

시경詩經 패풍邶風은 위衛나라의 노래이다. 위나라는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네 번째 아우 위강숙衛康叔를 시조로 한, 황하黃河와 기수淇水 사이의 상허商墟 땅의 제후국이다. 강숙 이후 왕위가 쭉쭉 이어지다가 환공桓公때. 환공에게는 주우州吁라는 이복동생이 있었는데 교만하고 전쟁을 좋아하였다. 주우는 위나라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을 모아 환공을 습격하여 왕위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손자중 장군을 내세워 주변의 나라들과 정복전쟁을 일삼았다. 시경 패풍의 「격고擊鼓」는 바로 이 주우의 정복전쟁에 억지로 끌려간 병사가 전쟁터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擊鼓其鏜 북소리 둥둥 울리면
격고기당
踊躍用兵 무기 들고 뛰어 일어나네
용약용병
土國城漕 도읍의 흙일 조땅의 성쌓기도 있건만
토국성조
我獨南行 나만 홀로 남쪽으로 싸우러 가네
아독남행

북소리 들으면서 벌떡 일어나 총들고 뛰어나가는 것. 따르릉 알람소리에 핸드폰 끄고 일어나 가방 들고 뛰어나가는 요즘 학생들이나 샐러리맨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라 백성은 부역負役을 피할 수 없다. 부역으로 일하러 가는 경우도 있고 전쟁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일하러 가는 것보다 전쟁하러 가는 게 위험하다. 흙일이나 성쌓기도 있는데 나는 왜 전쟁터에 가야 하나. ‘토국성조土國城漕’에서 ‘국國’은 ‘서울’의 뜻이다. 임금 직할지로서 귀족들이 주로 살았던 곳이다. ‘조漕’는 위나라의 읍 이름-조읍漕邑을 가리킨다. 서울에서의 토목공사, 조읍에서의 성쌓기도 있는데 나만 왜 홀로 남쪽으로 싸우러 가야 하나 라는 구절은 후방의 민방위나 공익근무도 있는데 왜 나는 위험한 현역으로 가야 하나 라는 탄식이다. ‘아독남행我獨南行’에서 ‘왜 나만!’이라고 하는 글자-‘독獨’에 자신의 불행한 신세를 탄식하는 화자의 감정이 강조되어 있다.

從孫子仲 손자중 장군을 따라
종손자중
平陳與宋 진과 송을 화평하게 했지만
평진여송
不我以歸 나는 돌아가지 못하니
불아이귀
憂心有冲 근심스런 마음 깊고 깊어라
우심유충

손자중孫子仲(公孫文仲)은 위나라의 장수의 이름이다.『춘추春秋』에 따르면 노魯나라 은공隱公 4년에 송宋 · 위衛 · 진陳 · 채蔡 이렇게 네 나라가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침공한 일이 있다. ‘손자중 장군을 따라 진과 송을 화평하게 했다[從孫子仲 平陳與宋]’라는 구절은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 위나라가 손자중 장군을 선두로 진나라 송나라와 함께 강화를 맺고 다시 위나라로 돌아갈 때. 그런데 나는 함께 돌아가지 못했다! 이 시의 화자인 병사는 부역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대오를 잃어버린 것이다.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온 것만 해도 억울한데, 대오에서 벗어나 길을 잃어버렸으니 병사의 처지가 딱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위험한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이제 적들과 강화조약을 맺고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대오에서 벗어나 나 혼자 남았으니. 혼자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근심스런 마음 깊고 깊어라[憂心有冲]’ 막막한 심정의 병사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爰居爰處 이곳에서 자고 저곳에 머무니
원거원처
爰喪其馬 말까지 잃어 버리고
원상기마
于以求之 말을 찾아
우이구지
于林之下 숲을 헤매이네
우림지하

길을 잃어버린 병사의 모습이 실감나게 전해진다. 대오 속에 있을 때에야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 내가 굳이 길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제 대오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었으니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방향도 모르겠다. 바람은 차고, 배는 고프고, 날은 어두워지고, 맹수를 만날지도 모른다. 대오 속에서 공동의 적을 향해 싸울 때는 그래도 좋았다. 적이 분명하고, 같이 싸우는 동지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기가 주어져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혼자 찾아가야 하는 길에는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같이 싸울 동지도 없다. 무기도 없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타던 말 한 마리뿐이었는데 그 말마저 잃어버렸으니 어찌 해야 할까. 병사가 길을 잃은 상황이 재미있다. 왜냐하면 병사는 길을 잃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사에게는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 명령에 복종하면 된다. 그런데 병사가 길을 잃었다는 것은 그동안 복종해온 명령이 자신이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나의 것이라 믿었던 욕망이 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욕망이라는 것. 지금까지 내가 타고 다니던 말[馬]이 나의 말이 아니라 권력의 말이라는 것. 병사는 말[言]을 잃는다.

死生契闊 죽든 살든 멀리 떨어져 있든
사생계활
與子成說 같이 하자고 그대와 약속했었지
여자성설
執子之手 그대의 손잡고
집자지수
與子偕老 같이 늙어가자 하였지
여자해로

병사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야심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가 농사 짓고 사는 것. 내가 일한 것으로 먹고 사는 것. 사랑하는 아내와 그런 평범한 생활을 함께 하면서 늙어가는 것. 백년해로하자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병사는 전쟁터에서 길을 잃었다. 언제 어디에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오를 벗어나 혼자 길을 헤매고 있다. 병사는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의 아내는 무사할까. 시경 빈풍의 「동산東山」도 전쟁터에서 고향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시이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왜 고향의 아내를 그리워할까. 장수는 승리勝利를 원하지만 병사는 종전終戰을 원한다. 장수에게는 대의 명분이 중요하지만 병사에게는 평범한 일상 생활이 중요하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파괴하는 전쟁은 어떤 대의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 둥둥 북소리 울리면 무기 들고 뛰어나가 싸우는 것보다 병사는 고향에서 괭이 들고 호미 들고 밭에 나가 일하고 싶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내 밭을 일구어 먹고 내 우물 파서 마시니 임금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요임금 때 농부처럼 나라 없는 나라에서 태평하게 살고 싶다.

于嗟闊兮 아! 이렇게 이별하니
우차활혜
不我活兮 우리 함께 살지 못하는구나
불아활혜
于嗟洵兮 아! 멀리 떨어져
우차순혜
不我信兮 우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구나
불아신혜

평범한 사람의 소박한 행복을 불가능하게 하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살면서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싸우면서 우리는 함께 산다. 싸울 수 있어야 함께 산다. 불행한 것은 나의 본성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난관을 극복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의 욕망에 동원되어 애꿎게 희생되는 경우이다. 내 것이 아닌 싸움에서 죽는 경우.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에 끌려가 이름 없이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애가 바로 그것이다. 시경 패풍에 나오는 『격고擊鼓』는 이런 비애를 노래했다. 둥둥 북소리 울리면 무기 들고 뛰어나가 싸우던 병사가 대오를 잃고 헤매며 고향의 아내를 그리워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전쟁의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쟁이 폭력이라는 것은 지금 눈앞에서 누가 피 흘리고 죽어서라기보다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 몸과도 같은 아내와 같이 살지 못하게 되는 것. 그래서 전쟁터에서 전쟁터에서 길을 잃고 말까지 잃은 병사가 애틋하게 바라는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거창한 대의 명분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가 아내와 같이 밥 먹고 별거 아닌 이야기 주고받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면, 지금 나는 전쟁 중이다. 무지와 탐욕 때문에 지금 나는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면 그곳이 바로 전쟁터이다. 그때 나는 전쟁터에서 말[馬]도 잃고 말[言]도 잃은, 길 잃은 병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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