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영화 <달팽이식당>을 보고

- 제비꽃달팽이

스폰지하우스와 일본청춘영화

스폰지하우스라는 영화배급사가 있다. 2002년에 만들어진 회사는 이제 갓 마흔이 되신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회사로, 거장 감독들, 작가주의 감독들의 신작영화 위주로 뽑아 수입, 배급, 마케팅, 요즘은 제작까지 하고 있다. 비슷한 배급사로 진진, 백두대간 등이 있는데 스폰지하우스에서 배급한 <메종드히미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같은 몇몇 일본영화들이 히트를 치면서 예술영화배급사들 사이에서도 조금 더 유명세를 탄 바가 있다. 대학 선배 중에 스폰지하우스매니아인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를 따라 한두 번 영화를 보나 싶더니 어느새 나도 스폰지매니아가 되어있었다. 공강인 날에는 아낀 용돈을 들고, 지금은 사라진 종로 시네코아와 명동 중앙시네마 근처를 어슬렁댔다. 스폰지하우스에서는 60~70년대 생 일본감독들이 만든 청춘영화들을 많이 개봉했다. 98년 일본문화개방 이후 이와이슌지감독의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일본영화들. 이 전에도 이미 어둠의 루트로 많은 일본영화들이 들어와 매니아층을 만들어 놓았었는데 98년 이후로는 이런 현상이 좀 더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달팽이식당, 일본청춘영화들의 판타지

달팽이식당

2010년 작으로 만들어진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영화 <달팽이식당>은 도미나가마이라는 여자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사실 작년 정도부터 ‘다른 영화’에 대한 첫 정이었던 일본청춘영화들이 오글거려보이기 시작했는데,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음에도 실은 그에 대한 엄청난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애초에 조제와 츠네오가 사귄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카모메식당 같은 식당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저런 소소하고 착한 일상에 대한 판타지는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게 만들 뿐이다! 라고 열변을 토하고는 있지만. 이를 모두 알고 있음에도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일상의 모습이기에 다들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다. <달팽이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홍상수나 데이빗린치의 영화가 아니라 명백한 인과관계에 의해 전개되는 영화임에도 도저히 인과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 – 분륜으로 태어났다고 놀림 받아 집 나간 지 15년 만에 돌아온 린코에게 만나자마자 식당 차릴 돈을 빌려주고 식당 짓는 것을 도와주는 동네아저씨의 행동(부잣집 한량아들이거나 린코를 사랑하지 않는 이상 말이 안 되는 설정), 처녀인 엄마가 물총으로 린코를 잉태했다는 설정(명백한 판타지로 이해해야 할 듯), 학창시절 번지점프하다 줄이 끊어져 사라진 엄마의 첫사랑을 암에 걸린 엄마가 동네병원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30년 만에 다시 만난 일. 말이 되어야 하는 영화를 찍고 있음에도 말이 안 되는 전개의 영화. 게다가 엄마가 죽은 후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막판 15분 정도는 앞서 보여줬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의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것이 계속해서 증명되며, 죽은 엄마와 화해하는 린코의 모습을 통해 관객의 감정이입과 눈물을 호소하는 이 영화. (구리다!)

가슴마을의 어린 린코짱

그럼에도 <달팽이식당>이 좋은 것은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수 없이 끌리는 것들이 있다. 주체할 수 없이 똘끼 흐르는 설정과 오글거리다 못해 손을 놓게 만드는 영상이 그것이다. 가슴산. 아아, 린코가 자랐던 마을의 이름은 가슴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보이는 두 개의 산봉우리는 포인트까지 포함한 완벽한 여자 젖가슴 형상으로 봉긋하게 솟아있는데, 정말 일본 청춘영화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또한 린코가 집을 나간 후 엄마가 키우고 있는 식용 사이즈의 애완돼지 에르메스.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에르메스는 엄마와 의사선생님의 결혼식날 하객들의 행복을 위해 죽임을 당한다.

달팽이 식당에서 에르메스고기로 요리로 만드는 린코의 모습은 그 어느 때 보다 비장하다. ‘아노코와 다래’로 시작하는 전래민요 같은 노래는 또 어떤가. 린코의 과거와 엄마의 과거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쓰인 ‘아노코와 다래’와 포토몽타주 형식의 CG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이는 일찍이 이시이 카츠히토감독의 <녹차의 맛>에서 ‘야마요’라는 노래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게테 노바시테’로 경험한 바 있는 일이다.

사실 끌리는 것은 이러한 영화 이미지적 측면만이 아니다. 영화 이미지들에 감독의 똘끼가 묻어난다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도 감독의 똘끼가 이입되어 있다. 일본청춘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오타쿠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외부와 고립되어 있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대체적인 주인공들의 스타일이다. 개인화된 그들의 삶은 이미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하의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데, 부럽게도 일본청춘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하는 일이 있고 이를 통해 친구들을 만나며 우정을 배운다. 멋지다. 오글거려 미치겠는데도 이러한 영화이미지적 똘끼와 주인공들의 오타쿠성 때문에 계속해서 일본 청춘영화들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덧, <달팽이식당>에는 세뇨리따카레, 쥬뗌므스프, 무화과샌드위치, 삼계탕, 새끼양 로스트와 갈릭소테, 오차즈케, 쌀겨된장장아찌 등 많은 요리들이 등장하는데 이 요리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즐거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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