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그대가 사냥을 나가니

- 정경미

돌고래를 좋아할 때 세상은 온통 돌고래로 가득 찬다. 돌고래 슈퍼, 돌고래 목욕탕, 돌고래 철물점, 돌고래 은행, 돌고래 주유소··· 아침에 일어날 때 천장은 물결 출렁이는 바닷속. 그 속에 돌고래가 헤엄친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돌고래가 없을 때 세상은 온통 텅 빈 것 같다. 슈퍼도 없고, 목욕탕도 없고, 철물점도 없고, 은행도 없고, 주유소도 없는 텅 빈 마을. 텅 빈 나의 마음에는 아침도 찾아오지 않고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과대망상증 환자가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존재가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을 때에는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고, 그가 옆에 없을 땐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다. 시경詩經 정풍鄭風에 나오는 「숙우전叔于田」이라는 시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叔于田 그대가 사냥을 나가니
숙우전
巷無居人 거리에 사람이 없는 듯
항무거인
豈無居人 어찌 사람이 없을까
기무거인
不如叔也 그대처럼
불여숙야
洵美且仁 진실로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없다네
순미차인

‘숙叔’은 연인을 가리킨다. 연인 중에서도 남성. ‘전田’은 흔히 ‘밭’이란 뜻으로 알고 있지만 ‘사냥가다’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고대에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 짓고, 농한기인 늦가을부터 남자들은 사냥을 나갔다. ‘전田’은 새 사냥이다. 노루 사냥은 ‘렵獵’이라고 한다. 사냥은 바로 군사훈련이기도 하다. 전쟁 때를 대비하여 활 쏘기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배경은 농번기가 끝나고 사냥철인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대[叔]’가 사냥을 떠났다. 이 시의 백미白眉는 <항무거인巷無居人>이라는 표현이다. 숙이 사냥을 나가니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없는 존재들과 같다. 어린왕자 식으로 말하자면 그들과 나는 ‘길들이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 나에게 그들은 없는 존재들과 같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숙이 없는 거리는 나에겐 ‘텅 빈 거리’이다. 이 표현은 과장도 거짓도 아닌, 진실한 ‘마음의 현실’이다.

叔于狩 그대가 사냥을 나가니
숙우수
巷無飮酒 거리에 술 마시는 사람이 없는 듯
항무음주
豈無飮酒 어찌 술 마시는 사람이 없을까
기무음주
不如叔也 그대처럼
불여숙야
洵美且好 진실로 아름답고 좋은 사람은 없다네
순미차호

<순미차인洵美且仁>이 <순미차호 洵美且好>로 바뀌었다. 비슷한 뜻의 다른 표현이다. ‘순미차인洵美且仁’에서 ‘미인美人’이라는 말. 요즘 미인이라고 하면 예쁜 여자를 가리키지만 고대에는 멋진 남자도 미인이라고 했다. 얼굴이 곱게 생긴 꽃미남이 아니라 덩치 크고 훤칠하고 용감한, 위풍당당한 남자를 미인이라고 했다. ‘인仁’도 ‘착하다’는 뜻이 아니다. ‘강하다’ ‘능력 있다’는 뜻이다. 시경 소남 편에 나오는 「추우騶虞」라는 시를 보면 화살 하나에 돼지 다섯 마리를 쏘아 맞추는 사냥꾼에게 “오, 멋진 그대!”라며 감탄하는 구절이 나온다. 숙도 그런 신출귀몰한 사냥꾼일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그대가 없으니 거리에 술 마시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어찌 술 마시는 사람이 없을까마는··· ‘진실로 그대처럼 아름답고 좋은 사람은 없다네! [洵美且好] 나에겐 그대가 최고라는 말이다.

叔適野 그대가 들에 나가니
숙적야
巷無服馬 거리에 말 탄 사람이 없는 듯
항무복마
豈無服馬 어찌 말 탄 사람이 없을까
기무복마
不如叔也 그대처럼
불여숙야
洵美且武 진실로 아름답고 굳센 사람은 없다네
순미차무

‘적適’은 ‘가다go’의 뜻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적適’은 ‘알맞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복마服馬’는 ‘말을 타다’라는 뜻이다. ‘무武’는 ‘늠름하다’는 뜻이다. 말을 탄 숙이 교외로 나가니 거리에 말 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1절에서는 ‘새 사냥[田]’을 갔다가, 2절에서는 ‘겨울 사냥[狩]’을 나갔다가, 3절에서는 ‘말을 타고[服馬]’ ‘들로 나간다[適野]’. 말 타고 들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마지막 구절에 ‘순미차무洵美且武’에서 ‘무武’ 자를 쓴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쟁을 하러 나갔다는 뜻으로 보인다. 평소에는 농사 짓고, 겨울에는 사냥 나가고, 또 전쟁 때는 싸우러 나가는 것이 고대인들의 생활이었다. 이 생활에 충실한 사람이 고대인들에게는 멋진 사람이다. 사냥하러 나갔던 숙이 이번에는 말을 타고 야외의 들로 전쟁을 하러 나갔다. 이렇게 숙이 말을 타고 들로 나가자 거리에 말 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숙이 없으니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아 숙이여, 그대처럼 아름답고 또 늠름한 이는 없구나!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숙우전叔于典」을 장공莊公을 풍자하기 위한 시라고 설명한다. 이 시의 숙叔은 장공의 아우 공숙단共叔段을 가리키며, 숙이 경성에 있으면서 군사를 이끌고 사냥을 나가니 국인들이 기뻐하며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공숙단을 빌어 숙과 같이 아름답고 인하지 못한 장공을 풍자한 시라는 것이다. 주희朱熹도 대체로 이 설명을 따른다. 그런데 『시경집전詩經集典』에서 주희는 살짝 이런 말을 덧붙인다. “혹자는 의심하기를 이 또한 민간의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말인 듯하다고 한다.” [或疑此亦民間男女相說之詞也] 즉, 이 시는 숙처럼 아름답고 인하고 늠름한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전하는 계몽적인 시이다. 그렇지만 혹시 이 시는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노래한 ‘남녀상열지사男女相說之詞’가 아닌가? 그럼 안 되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라고 말하는 주희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이 시에 대한 짧은 해설의 행간에서 엿보인다.

시경의 열다섯 국풍 중에서 정풍鄭風은 음란하기로 유명하다. 연애시가 많다. 그래서 정풍을 ‘음풍淫風’이라고 한다. 「숙우전叔于田」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그대! 그대가 없으니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이 온통 텅 빈 것 같아요!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 연애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음란한 시를 공자님은 왜 ‘사무사思無邪’라고 하여 경전에다가 버젓이 실으셨을까? 연애시를 도학적으로 설명하려니 주희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이때 공자가 천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주희를 찾아와 남녀상열지사와 도학은 전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음란하다는 것은 ‘이런 걸 말해도 되나’라고 하는, 소심한 마음이다.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거리는 생각, 닫혀 있는 마음이다. 도道란 무엇인가.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마음의 역동성 아닌가. 도의 실천은 진실한 연애로부터! 이것이 남녀상열지사를 시경에 실은 공자님의 깊은 뜻인가.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주희는 여전히 헷갈린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그대가 사냥을 가니 거리에는 한 사람도 없다. 는 솔직,발랄,적실한 표현이 참 와 닿네요. 한자의 다양한 용법과 뜻을 설명한 것도 놓칠 수 없는 팁이예요.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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