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우리’와 ‘난민’ 사이

- 박정수(수유너머R)

이번 동시대반시대 주제를 ‘우리, 난민’으로 정한 것은 지난 11월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 때문입니다. 11월 초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버마의 민주화와 국내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 온 ‘버마행동’ 회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난 일이 그 중 하나입니다. 버마행동 회원 중에는 ‘밍글라바 코리아’를 연재하고 있는 소모뚜도 있습니다. 기쁨도 잠시, 곧 법무부는 대법원에 항소신청을 했더군요. 버마행동 회원들의 정부비판 활동을 문제 삼았는데요, 그들 생각에 난민은 그저 죽지못해 살아가는 불쌍한 구호대상일 뿐 어떤 자기주장도 정치적 활동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가 봅니다.

또 한 가지 사건은 11월 말의 연평도 전쟁입니다. 북한의 해안포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났고 연평도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1300연평도 주민은 전란을 피해 고향을 등진 피난민이 됐는데요, 재난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을 난민이라 한다면 연평도 주민은 말 그대로 ‘난민’이 된 것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연평도로의 귀향을 거부하고 정부에 영구 이주지와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인 피난민이 아니라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평도에 상시적으로 전쟁위험이 있는 한 자신들은 더이상 ‘인간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일 ‘전면전’을 포고하는 북한과 백배천배의 복수를 외치는 남한정부의 쌍방 위협이 계속되는 걸 보면 그들의 공포는 절대 허풍이 아닙니다.

원래 국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망명지의 국민이 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난민’으로 정의한다면 연평도 주민들의 ‘난민’ 지위 요구는 어불성설이라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만 명을 육박하는 탈북주민들을 ‘난민’으로 규정하는 데 이견이 없다면, 연평도 피난민 역시 ‘난민’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둘 다 헌법 상 ‘대한민국 국민’이며, 북한 국가권력의 군사, 통치행위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연평도 사태 이후 반공이념만 설파했지 주민들의 피난생활은 방치한 정부에 대해 “우리는 탈북자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연평도 주민들의 울분은 십분 이해 마땅합니다. 탈북주민이나 연평도 주민은 모두 국민으로서 난민인 일종의 ‘내부 난민’입니다. 이들의 예외상태는 시민권 차원이 아니라 난민의 인권 차원에서 국가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합니다. 하긴, 밖에서 새는 바가지 안에서도 샌다고, 외부난민에 대해 옹졸한 정부가 내부난민에 대해서라고 다르겠습니까?

난민을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 전쟁과 재난과 기아이지만 난민을 ‘비국민’으로 규정한 것은 국민국가입니다. 난민의 존재는 국민국가의 무능과 한계가 드러나는 증상입니다. 탈북난민이 1국가 2체제의 모순을 안고 있는 분단국가의 한계를 드러낸다면, 연평도난민은 재난에 처한 내부난민에 대한 ‘무늬만 복지국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리고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난민이 된 버마행동 회원들이나 인권활동가로서의 전사적 이미지 때문에 아직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뚜라’의 삶은 구호대상으로서의 난민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전사로서의 난민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p.s: 난민에 대해 한용운의 이 시가 생각납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돌아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따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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