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

- 김융희

많고 많은 세상사 얽히고 설킨 삶을 살면서, 어찌 세상일 모두를 다 이해하며 살 수가 있겠는가?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나는 늘 일상사를 대충 이해하면서 그런 태도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매사가 대강 대강 매끄럽지를 못해 갈등을 느끼며, 때론 속상하기도 한다. 오늘도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나는 심사가 난다. 일상 다반사인 이런 경우의 세상 일을 잘 비켜 사는 지혜의 부족함이 늘 안타깝기도 하다.

요즘 나의 독서란 대게 집에 있는 책을 읽거나, 가끔은 헌책방에서 눈에 띈 책을 구해 읽고 있다. 더러 읽고 싶은 새 책이 있을 때면 흥인지문(동대문) 부근의 책거리인‘대학천 상가’의 단골서점에서 구입하고 있다. 돈벌이가 없는 나로써는 만만찮는 책값에 요즘 신간을 구입하기가 썩 부담스럽다. 인터넷 서점은 할인이 되는 줄은 알지만, 거의 컴맹인 나로써 이용이 쉽잖으며, 수 십년을 줄곧 찾고 있는 단골인 대학천 상가를 이용하는 것이 몸에 배어 익숙하다.

거의 40여 년을 찾고 있는 대학천 상가는 그동안 많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70년대까지의 청계천변의 헌책방이 성시를 이룰 때, 대학천 상가는 새책을 취급하는 상가로써 헌책 못잖게 찾는 사람들로 영업이 흥청거렸다. 지금은 청계천변의 헌책방이 거의 사라졌지만, 대학천만은 그때 만큼은 못해도 여전히 책거리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나날이 찾는 손님이 줄어들고 있어 요즘은 한산한 영업으로 계속 버티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을 듣기에 이르렀다.

편리한 요지에 잘 갖춰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형 서점들, 가만히 앉아서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편리한 인터넷 서점들이 지금은 판을 치고 있다. 그에 비해 대학천 상가의 서점들은 대부분 규모의 영세함과 많은 불리한 여건으로, 그동안 나름의 서적 보급과 독서문화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온 긍지의 보람도 없이, 지금은 겨우 버티고 있는 한물 간 책거리로 변했다. 진즉부터 문을 닫을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어 왔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할 말을 몰라 안타깝고 아쉬웠을 뿐이다.

반 세기를 넘어 지켜온 사업이라 어쩔 수 없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버티면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요즘 대학천 상가의 서점들이란다. 어려운 처지의 그들이 설상 가상으로, 요즘 할인 판매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불려 다니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개업이래 반세기도 넘게 계속하고 있는 관행의 영업이 새삼 문제가 되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서점 주인의 넋두리 소식을 듣고도 힘없이 돌아선 나는 자탄하면서 비통하다. 그동안 따뜻한 정의 얽킨 인연이나,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서점의 딱한 호소에도 아무런 도움은 커녕, 따뜻한 위로의 말도 건너지 못하는 나의 무력이 딱해
비통한 것이다.

영업자가 자기 이익을 포기하면서 깍아준 것이 잘못으로 시비의 대상이 된다? 요즘 낙농업계의 우유값 담합에 어마한 2백억대의 범칙금을 물리는 공정위원회의 처사는 무엇이며, 자기는 이익을 줄이면서 고객에게 이익을 주는 이 문제와는 어떻게 상관되는 것인지를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대형 서점에서 할인 코너를 마련하여 판매를 하고 있음을 보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의 할인 판매 영업과는 또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나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의문들로, 우선 가까운 동료들과 무엇이 문제인가의 이야기를 나눠 보았으나 크게 도움을 얻지 못했다. 서점의 주인에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으나 그 일도 아직 못하고 있다. 내 입장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황당한 일이지만, 어쩜 좋을지 가늠보기도 전혀 짐작이 안되어 좀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어떻한 뚜렷한 잘못도 합당한 이유도 없이 수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 받고 있는 나의 단골 서점에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힘없는 약자의 부당한 처사의 고통이란 생각으로 더욱 미어지는 마음이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부당한 일이 썩 있겠느냐’라는 생각을 한다. 내용을 좀더 알아서 대책을 찾아보면 길이 있으리라 믿으며, 여러분의 지혜가 필요하면 자세한 내용과 더불어 다시 알려 도움을 청하겠다는 말씀으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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