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금

사카이 나오키의 ‘지금’ 그리고 ‘여기’

- 최정옥

이제 학기도 슬슬 끝나갈 무렵, 그는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를 날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 그는 어느 샌가 미국의 오지(?) 이타카에서 일본의 도쿄 한복판에 상륙해 있다. 또 눈 깜박하는 사이에 한국의 서울로 우리 곁에 한걸음에 달려온다. 13시간이 넘는다는 비행시간 동안, 시차 적응에 힘들지 않으려는 듯, 수면제를 먹고 깊은 수면상태가 되어 태평양을 건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라도 더 강연장과 심포지엄에 참여하기 위해서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도 부러운 노익장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나이를 잊고 바지런하게 태평양을 횡단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도대체 어떤 문제에 그렇게 자신의 열정을 투여하고 있는가. 그를 태평양 연안을 날아다니고 또 유럽 쪽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게 만드는 것은 무얼까.

2008년에 출판된 그의 최신작 『희망과 헌법』은 그의 치열하고 끈질긴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가 이른바 ‘동아시아’를 논의하는 자리에 자신의 이름글자를 내밀었던 『과거의 목소리』나 『사산되는 일본어, 일본인』, 『번역과 주체』 등등에서 그가 한 발자국 나아간 지점을 보여주는 책. 그는 초기 저작에서 에도시대의 일본사상과 근대시기 일본, 일본인, 일본어라는 것의 탄생 지점에서 이미 그것이 사산되고 태어났음을 밝혔다. 거기서 시간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여기’를 『희망과 헌법』은 다루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기나긴 여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그가 국제사회를, 동아시아를 초기에 쥐고 있었던 자신만의 득템 ‘쌍-형상화 도식’과 ‘환승중인 주체’ 이론을 계속 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그가 외골수인 양 달려온 과거의 흔적들이 떠오른다. 계속해서 세상을 바라볼 자기만의 검을 벼리고 또 벼리는 장인의 모습이 상상될 정도다.

최근의 『희망과 헌법』은 여기에 자신의 검을 더 단단히 담금질할 새로운 개념들을 더 삽입했다. 그것은 바로 ‘잔여’다. the Rest. 이 ‘잔여’라는 개념은 그의 이전 논문들에도 나오기는 나왔다. 최근에 그 문제의식을 더 갈고 연마한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그는 이 개념을 ‘서양the West’과 그 나머지, 즉 지구에서 서양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는 이 용어를 다른 하나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국민으로서 국가주권에 참여하는 자들과 그러한 참여에서 탈락되어 버린 자들”이다. ‘국민’과 ‘국민이 되기에는 실격인 자’의 차이로서 생각하자고 그는 제안한다. 우리가 지금 많이 사용하는 다수자와 소수자 중, 잔여는 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잔여를 일의적으로 한정하는 일이 극도로 곤란한 작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왜냐면 잔여의 (대)쌍개념으로 존재하는 ‘서양’이나 ‘다수자’라는 것도 실은 “반조返照적으로 다의적이고 일관성을 결하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용어와 개념들은 항상 쌍개념과의 상호 형상화를 통해서 자신을 성립시키고, 그리고 그것들은 개념적인 일관성을 결하고 있고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가령 ‘국민’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비국민=‘잔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잔여는 항상 계속해서 다른 얼굴로 다른 경계선을 갖고 요동친다. 이로 인해 ‘국민’이라는 개념도 항상 다의적이고 유동적인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자타의 구별, 즉 일본인과 외국인의 차별이라는 문맥을 바꿀 때마다, 일본인과 비일본인의 경계는 끊임없이 요동한다. 경계 그 자체가 다의적이고, 유동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학계를 끌고 나가고 있는 많은 개념들은 자신을 세워주는 하나의 쌍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항상 국민, 다수자, 정주민, 정착, 서양, 남성, 백인 등은 자신을 근거로 규정‘되는’ 비국민, 소수자, 이주민, 이동, 동양, 여성, 흑인/황인 등의 개념쌍을 갖고 있다. 항상 국민의 잔여로서 비국민이고, 다수자의 잔여로서 이주민이며 서양의 잔여인 동양으로 규정되어 왔다. 그렇게 이미 확고해져 버린 듯한 단어들을 역사적으로 훑는 작업. 그 작업을 계보학적으로 풀어내어 그것이 만들어진 것임을 밝히는 작업. 그 작업을 그는 이전부터 쭉 해왔다. 최근에는 이 작업을 조금은 비트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항상 가령 국민, 다수자, 정주민, 정착 등의 입장에서 헌법이 만들어졌고, 정체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는 작업이 최근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유행하는 담론에서처럼 정주민에서 이민으로, 혹은 국민에서 비국민으로, 다수자에서 소수자로 시선의 방향을 달리 하는 연구들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헌법, 법률, 국민 및 국가라는 것들이 일본에서 보자면 재일조선인이나 한국에서 보자면 이주노동자 등의 존재, 자유와 이동을 제한하고자 하는 차별에서 만들어진 경계라고 한다면? 그러한 경계의 제도화가 바로 국가, 국민, 헌법, 인종 등이라고 한다면? 사카이는 그렇게 제기한다.

“경계는 이동에 대한 반동으로 드러나는 차별이다.”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으면 경계는 전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이동과 자유가 선행하고, 그 뒤를 이어서 이동과 자유를 제약하고 막으려는 갖가지 벽과 차별, 배제가 만들어진다. 이 점에 착안해서 사카이 나오키는 헌법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아니, 일본국 헌법이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을는지, 그 가능성을 ‘희망과 헌법’이라고 단어를 병렬하면서 모색하고자 한다(이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책을 참고 바람). 그는 「국제사회 속의 일본국헌법-사회성의 비유로서의 ‘이민’과 헌법」에서 논한 내용을 가져와서 말한다.

“헌법이 권리를 구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사회문제를 생산하는 기회를 계속해서 주는 이념적인 보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헌법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정주민이 아니라 이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특별나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이민/이동은 사람들의 존재 방식을 말하는 것일 뿐, 실재적으로 이민자여야 하고, 항상 이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 존재는 “이민의 상황에서 권리를 구해서 투쟁하는 자이고, 이동하는 자”로 다시금 사고된다. 그렇다고 사카이 나오키는 정주 vs 이민, 다수자 vs 소수자 식의 대립에서 전자가 가치판단의 잣대가 되었으므로, 그것에 의해서 억눌렀던 이민과 소수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다시 보자고 제시하지는 않는다. 문제를 거꾸로, 뒤집어서 억압받는 것이 부각된다고 해서 문제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 틀은 여전하고, 소수자의 입장에서 벌이는 싸움이 자칫하면 자신의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식의 인정투쟁으로 바뀌고, 그래서 기존의 틀로 흡수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번역’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거쳐 얻은 ‘환승중인 주체’다. 사카이 나오키가 줄곧 놓지 않고 있는 자신만의 개념. 아직은 ‘환승중인 주체’가 어떤 주체인지, 그의 삶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결론에는, 아니 우리가 그에게서 바라는 쌍형상화의 도식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달라고 할 때, 그가 항상 말하는 ‘환승중인 주체’니 ‘번역’이니 하는 것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다음을 기대하시라! 아니, 너무 너무 알고 싶다고? 그렇다면 번역되어 나와 있는 그의 책들을 읽으시길.

*위의 글은 『희망과 헌법』의 서문격인 「잔여라는 시각」에 기반해서 작성했다.

사카이 나오키가 누구냐고?

1946년에 태어나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83년 시카고대학 인문학부 극동언어문명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학 인문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코넬대학 교수로 있다. 일본사상사, 문화이론, 비교사상론, 문학이론 등 광범한 영역에서 활약 중이다. 학문·사상의 영역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 각국을 횡단하는 잡지 『trace』(한국어판 : 『흔적』, 문화과학사)를 간행하여 세계 각지의 연구자와 교류하며 실천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같이 읽으면 좋을 사카이 나오키의 책들 :

『일본, 영상, 미국 : 공감의 공동체와 제국적 국민주의』(최정옥 역, 그린비, 2008),
『번역과 주체 : ‘일본’과 문화적 국민주의』(후지이 다케시 역, 이산, 2005),
『사산되는 일본어·일본인 : 일본의 역사지정적 배치』(이득재 역, 문화과학사, 2003),
『국민주의의 포에시스』(이규수 역, 창비, 2003)
『오만과 편견』(임지현과의 대담집, 휴머니스트, 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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