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우리는 왜 봉기를 생각해야 하는가?

- 나카다 노리히토

 2010년 봄 일본에서도 『다가오는 봉기』가 번역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출판되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냈지만, 일본에서는 (사회적으로는) 거의 어떠한 효과도 남기지 못했다. 같은 시기 ‘봉기’를 특집으로 삼아 『VOL』 4호가 나왔지만 역시 그다지 팔리지 않았다. 우리는 왜 봉기에 관해 생각하야 하는가? 봉기를 혁명과 나누어 생각한 자는 미셸 푸코였다. 「봉기는 무용한가?」에서 푸코는 말한다.

 최근 두 세기 동안 혁명은 역사 위로 튀어나와 우리의 시간 지각을 조직하고, 희망에 극성을 부여해 왔다. 혁명은 봉기를 합리적으로 제어하고, 역사 내부에 순응시킬 수 있도록 심대한 정성을 기울여 왔다. 혁명은 봉기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좋은 형식의 봉기와 나쁜 형식의 봉기를 선별하여 봉기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라는 법칙을 정의해 왔다. … 봉기가 현실정책 속에서 식민화되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봉기에 합리적인 역사라는 차원이 열렸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라면 일찍이 호르크하이머가 꺼낸 물음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순박하며, 다소 열을 띤 물음이다. “그런데 이 혁명이 대체 그만큼 바라마지 않아야 할 것인가?”

 푸코는 이란 혁명을 향한 열광을 통해 ‘봉기’라는 개념을 포착했다. 우리는 2008년에 토야코 서미트의 대항 행동을 조직하며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허전함을 끌어안으며, 그 후에 일어난 ‘타르낙 사건’이나 그리스 봉기, 구미에서의 대학 동란으로 촉발되고, 코펜하겐에서 행해진 COP 15에 관해 대안 세계화 운동이 끔찍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이 개념에 결정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권력을 취하지 않고 세계를 바꾼다”는 발상을 소박하게 믿어 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애틀’ 이후의 대안 세계화 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또 다른 세계를, 지금 여기에서”라는 슬로건을 소박하게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가을에 금융 공황이 발생하여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상실하자,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한 지점 아래서 결속하고 있던 ‘운동들의 운동’도 분열하게 되었다.
 
COP란 기후변동에 관한 UN 협약의 약칭이다. 2009년 12월에 행해진 제15회 회의에서는 교토의정서가 효력을 다하는 2012년 이후의 지구온난화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는 오바마나 원쟈바오를 비롯해 각국의 수뇌가 참가하여 “지구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회합”이라고 떠들썩하게 선전되었다. 한편 대항 세계화 운동의 진영도 대규모 대항행동을 조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데모나 직접행동을 조직한 ‘기후·정의·행동’은 “‘신자유주의로부터 녹색 자본주의로’이냐 아니면 ‘시애틀로부터 코펜하겐으로’이냐”라고 호소하며 시내 각처의 스쾃을 숙박소나 정보 센터로 개방하여 노상행동을 위한 인프라를 정비했다. 실제로 현지에는 전세계로부터 활동가가 모여 지구적 행동이 이뤄진 12월 12일의 데모에는 1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참가했다.

그러나 연일 이어진 대항행동에서 대항문화가 창조되지는 않았다. 대신 경찰에 의한 대량의 ‘사전 구속’이 횡행했다. 덴마크 정부는 COP 15에 맞춰 몇 가지 ‘테러 대책’ 법안을 가결시켰다. 그 결과 경찰은 어떠한 범죄든 누군가가 저지를 것이라고 의심한다면 이유를 밝히지 않고 그 인물을 12시간 구속할 수 있었다. 원리적으로 경찰은 언제라도 원한다면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활동가를 표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12일 데모에서는 시위대의 중간에 상복을 입고 반자본주의를 외치던 대열이 있었는데, 그들은 통째로 (1000명 이상) 구속당해 유치장에 넣어졌다. 그들은 무엇도 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하기도 전에 체포당했다. 그 후에도 직접행동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겨냥한 경찰의 ‘사전 구속’은 이어져 매일 수백 명이 유치장으로 보내졌다. 거리에는 무엇을 해보려 해도 체포당한다는 패배감과 체념이 만연했다. 놀랍게도 COP 회의가 진행된 베라 센터만이 아니라 대항 서미트가 행해지던 회의장에서도 이러한 부당체포에 대한 항의 성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애틀’ 이후라는 주제로 결집되어야 할 ‘반자본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명명했듯이 대항 세계화 운동과는 다른 아나키스트들의 운동이 있다고 이해한다. 분명 코펜하겐에서 “Our Climate, Not Your Business!!”라고 줄곧 외쳤던 아나키스트들은 기후 변동의 문제가 자주 관리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로비활동이나 대항포럼을 하고 있던 NGO나 여러 운동 단체의 멤버들은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의 활동가들이 느꼈던 ‘시애틀’의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힘, 엄청난 수의 이의 제기가 연합을 이뤄내 세계의 수뇌부가 모이는 회의장을 포위하여 어떤 전술이 올바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전술도 성립되도록 노력한다는 이념은 이미 무너져내린 것이다.

결국 COP15는 선진국과 도상국 사이의 심각한 대립만을 드러내고 실질적인 합의는 한 건도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 대항운동 전체의 추세를 형성할 때에 내부에서 어떠한 대립과 모순이 있든 개개의 운동이 서로 영향을 주는 차원은 반드시 존재한다. 모든 의미에서 거리에 뿌리 내리지 못한 정책 제언은 힘을 가질 수 없다. ‘블랙 블록’의 대량 체포가 운동 전체의 에너지를 상실시키는 한편으로, ‘그들’과 (그리고 경찰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경향은 운동에서 창조성 자체를 잃게 만들었다.
 
결국 녹색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어디가 다를 것인가? 일견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지구 환경을 투기대상으로 삼아 자본 권력은 재생산 영역에 더욱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자본과 자본+국가에 의한 관리가 강화되고 있다. 관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정동이다. 우리가 거리를 중시하는 까닭은 거리의 힘이 정동의 힘이기 때문이다. 유럽 각지에서 코펜하겐으로 모여든 경찰 권력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찰 권력은 관리에 저항하는 거리의 반정치적 힘을 혐오한다. 푸코가 말했듯이 혁명과 봉기는 나누어 사고해야 한다. 봉기는 혁명의 전단계가 아니며, 혁명=정치로 환원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봉기라는 개념에 결정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권력을 취하지 않고 세계를 바꾼다”라는 발상을 몇 번이고 확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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