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경찰조사 이틀만에 주검으로 변한 ‘표현의 자유’

- 촛불·네티즌 공권력 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이명박 정부는 공익요원 故 강경석 씨 의문사의 진상을 밝혀라!


지난 10월 16일 오후 3시20분경, 서울 한복판 서초동 법원청사 5층 난간 바닥에서 서울중앙지법 등기과 소속 공익근무요원 故 강경석 씨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그가 하루 전인 10월 15일 법원청사 21층 옥상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하 ‘사망추정일’). 그런데 그 이틀 전인 10월 13일, 고인은 수서경찰서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한나라당 누리집 네티즌 발언대에 ‘4대강사업 반대’ 등의 글을 올렸다가 한나라당 당원으로 짐작되는 신○○씨로부터 모욕죄로 앞서 8월 17일 고소당한 것과 관련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경찰조사 이틀 만에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경찰은 고인의 죽음을 투신자살로 몰아가고 있다. 유족은 고인이 자살할 이유가 하등 없어 의혹을 떨칠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자식의 주검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어 10월 19일 눈물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경찰조사 이틀만의 의문사

경찰은 고인의 ‘사망추정일’(10.15) 이틀 전에 그를 소환해 조사한 사실을 유족에게 끝까지 감추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사건의 발단이 된 자기네 누리집 게시판에서 고인의 글을 몽땅 지워 그의 흔적을 없앴다. 이로써 이 사건은 ‘단순 자살 사고’로 덮여 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의혹을 떨치지 못한 유족의 끈질긴 노력으로 사건의 진상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왜 ‘조사사실’을 끝까지 은폐했는가?

신○○씨의 고소 건을 분당경찰서로부터 이첩받은 고인의 주소지 관할 수서경찰서는 10월 8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고인에게 전화로 소환을 통보했고, 10월 13일 고인을 조사했다. 고인이 사망추정일 이틀 전에 경찰조사를 받은 사실을 유족은 10월 25일에야 처음 알았다. 사망추정일로부터 꼭 10일이 지나서였다. 고인은 ‘사망추정일’ 정오경부터 실종되었고, 법원청사 소재지 관할 서초경찰서는 그 이튿날(10.16) 정오경까지 고인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지 않고 있다가 가족의 요구에 따라 통화기록을 조회했다.

그러나 조회결과를 묻는 유족에게 “특이사항 없다”며 경찰조사 사실을 끝까지 은폐했다. 그러다 유족이 고인의 휴대전화에 찍힌 전화번호를 일일이 살핀 끝에 10월 8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고인에게 전화를 건 ‘수상쩍은’ 일반전화 번호 하나를 정확하게 찾아내 “이건 뭐냐?”고 추궁하자 서초경찰서는 사건 발생 1주일 만인 10월 22일에야 “수서경찰서 사이버수사팀 전화번호”라고 털어놓았고, 유족이 “수서경찰서에서 우리 아들에게 무슨 일로 전화했는가?”라고 캐묻자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거기 가서 알아보라”며 끝까지 함구했다. 유족의 의혹은 더 커졌다. 그리하여 <한겨레>에 연락하여 고인이 ‘사망추정일’ 이틀 전에 한나라당 누리집 게시글과 관련하여 모욕죄 혐의로 수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을 알아냈다. 사건 발생 열흘 만의 일이었다. 경찰은 왜 그 사실을 유족에게 끝까지 감추었는가?

경찰은 왜 ‘조사과정’을 숨기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조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유족에게 터무니없게도 ‘음성을 지운’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경찰청의 공식답변이 가관이다. “수서경찰서 사이버수사팀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는 CCTV는 음성녹음 기능이 없는 기종”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사 당시 CCTV 영상 사본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다른 피조사자들의 조사 장면 등이 함께 녹화되어 있어 제출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피조사자가 경찰로부터 그 어떤 겁박을 당하더라도 그 사실을 아무도 알 수 없고,경찰 또한 ‘피조사자를 겁박한 사실이 없음’을 입증할 길이 없게 된다. 더구나 고인은 공익근무요원이어서 일반인보다 겁박당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한나라당 누리집 게시판에 ‘4대강 사업 반대’ 등의 글을 실명으로 당당히 올리던 젊은이가 왜 출석요구서도 아닌 전화 통보만으로 경찰의 소환에 응할 수밖에 없었으며, 경찰에 불려가 조사받은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이틀 만에 의문사한 까닭이 어디 있는가? 이로써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정치적 타살>이 되었다.

게다가 <위장된 추락사>의 의혹이 짙다.

첫째, 유서가 없다.경찰은 고인의 죽음을 투신자살로 몰아가려 하지만 자살자들의 으레 남기는 유서 한 장 없다. 더구나 고인은 한나라당 누리집에까지 가서 자기 실명으로 정치적 견해를 적극 피력하던 젊은이가 아닌가? 그런 그가 유서 한 장 없이 자살했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둘째, 목격자가 없다. 서초동 법원청사 정면은 늘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고, 그 앞 경비실에서는 청사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만일 고인이 ‘사망추정일’ 백주대낮에 21층 옥상에서 5층 난간 바닥으로 추락했다면 목격자가 없을 리 만무하다. 또 만일 고인이 그날 밤에 거기로 추락했다면 그 충격음은 주간보다 훨씬 커서 야간수색조가 듣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 시신은 그 이튿날 백주대낮에 발견되었다. 경찰은 왜 목격에 대해 아무 말이 없는가. 목격자를 못 찾은 것인가, 안 찾은 것인가? 아니면 목격자를 숨기고 있는 것인가?

셋째, ‘사망 추정 시각’마저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초동수사 때 사망 추정 시각을 판정하는 데 필수적인 시신의 체온 및 경직도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결과 보고서에도 사망추정시각은 없다. 경찰은 왜 사망 추정 시각마저 알 수 없게 만들었는가?

넷째, 두개골 손상으로 숨졌는데 한쪽 다리는 왜 부러졌는가? 국과수 부검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고인은 ‘추락의 충격으로 인한 두개골 및 내장 파열’로 숨졌다. 고층에서 추락할 경우 머리가 먼저 바닥에 떨어지므로 두개골 손상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인의 시신은 두개골 손상뿐만 아니라 한쪽 다리 정강이가 으스러져 뒤틀린 채로 발견되었다. 이는 다리가 먼저 바닥에 떨어졌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법의학적으로 이 둘은 모순된다. 이를 1, 2차 충격으로 설명하기엔 사고 현장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추락 전에 누가 고인의 두개골 또는 다리는 먼저 손상시킨 것인가?

넷째, 고인의 목 아래쪽 ‘줄 자국’은 무엇이며 시신 곁의 ‘밧줄’은 무엇인가? ‘가해’의 흔적은 또 있다. 고인이 실종되기 직전인 10월 15일 오전 11시20분경, 고인의 근무처인 서울중앙지법 등기과 여직원들이 고인의 목 아래쪽에 횡선으로 나 있는 ‘줄 자국’ 두 개를 목격했다. 경찰은 그것을 ‘1차 자살시도’ 흔적으로 보려 하지만, 그럴 경우 줄 자국은 목 아래쪽이 아닌 위쪽 턱밑을 꽉 죄며 귀 뒤쪽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또 그렇게 밧줄을 매고 자살을 시도하면,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서 발을 떼는 순간 살아날 수가 없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5층 난간 바닥에서 발견된 고인의 시신 곁에 직경 1cm쯤 되는 밧줄이 있었다. 경찰의 설명대로라면, 21층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왜 밧줄을 들고 뛰어내리는가? 도대체 이 밧줄의 출처는 어디이며, 그 줄 자국은 가해인가 자해인가? 경찰은 그 줄 자국이 가해인지 자해인지 밝혀야 하건만 그것을 밝히기는커녕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면서 그것이 사인인지 아닌지 판정해 달라고 했다. 그것이 사인이라면 등기과 여직원들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 고인은 이미 사망해 있었단 말인가?

다섯째, 출혈량과 출혈 흔적은 왜 턱없이 적은가? 고인의 시신은 21층에서 추락했다고 보기에는 출혈량이 턱없이 적다. 또한 출혈 흔적이 어른 손바닥 두 개 크기밖에 안 된다. 도대체 고인은 어디서 ‘추락’한 것인가?

여섯째, 끈이 풀린 신발은 왜 한데 모여 있으며 시신은 왜 ‘추락선’을 벗어나 있나? 경찰이 추정하는 고인의 ‘추락선’은 법원청사 정면 중앙아치 오른쪽 둥근기둥과 그 오른쪽 동관 건물 사이의 폭 60cm가량 되는 비좁은 공간이다. 그 맨 위 21층 옥상에서 5층 난간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층 옥상에는 고인의 발자국 흔적이 없고, 고인의 신발은 자유자재로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끈이 풀려 있었는데도 6층 난간형 구조물 안쪽 좁은 공간에 모여 있었으며, 시신은 그 아래 폭 2m, 길이 30~40m의 좁고 긴 5층 난간 바닥 중앙아치 물받이 밑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추락선을 벗어난 지점이다. ‘끈 풀린 신발’은 왜 흩어지지 않고 두 짝 다 거기에 있었는가? 더구나 그곳은 5층 난간에서 높이 3m가량의 철사다리를 타고서만 오르내릴 수 있는 폐쇄된 공간이다. 그리고 왜 시신은 ‘추락선’을 벗어나 있었나?

정부에 경고한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압이 일상화된 과정에서 벌어진 필연적인 사건이다. 고인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날 이 나라에 숱한 의문사, 필화 사건이 있었지만 ‘표현의 자유’가 이처럼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온 적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정부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에 요구한다.

-경찰 책임자들을 소환하라.

-경찰의 조사사실 은폐 행위를 유족에게 사과하고 조사과정 CCTV를 육성이 담긴 그대로 당장 공개하라.

-고인의 죽음을 ‘단순 자살 사고’로 몰아가지 말고 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라.

또한 한나라당에 묻는다.

이 사건의 발단은 한나라당 누리집 게시판이다. 거기에다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려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가? 한나라당은 왜 고인의 글을 몽땅 지워 흔적을 없애고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가?

한나라당에 요구한다.

-한나라당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통감하고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라.

-한나라당은 삭제한 고인의 글을 모두 복구하여 유족 및 수사진에 제출하라.

촛불·네티즌 공권력 탄압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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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윤진석, Tangerine, 정은 (아오), YooRi, DO , momo and others. momo said: RT @ozzyzzz: RT @Pongdu: 경찰조사 이틀만에 주검으로 변한 ‘표현의 자유’ http://suyunomo.jinbo.net/?p=6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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