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부담감

- 매이아빠

어제 집에 돌아갔더니 아내가 울상을 지으며 매이에게 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말해도 되냐고 허락을 받는다. 매이가 약간 겸연쩍어 하는 것을 보니 매이가 뭘 잘못한 모양이다. 주일마다 매이와 아내가 밥 얻어먹는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찬양예배를 했는데, 유아반 아이들과 엄마들이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다. 아내는 그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마침 어린이집에서 오늘은 4시 30분에 귀가시켜 달라고 하는 통에, 그냥 매이와 교회행사에나 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연습 때 매이가 무대에 서는 것이 싫다고 귓속말로 말하면서 엄마 혼자 하는 것을 앞자리에 앉아 보았는데, 머리수가 아쉬운 상태에서 매이는 못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아내는 다 같이 우루루 입장하는 순간에 매이와 함께 무대로 걸어 들어가 매이를 자기 앞에 세웠다고 한다. 아내는 아까 하는 것을 보았으니, 저도 따라서 하든지 최소한 서 있을 수는 있겠지 싶어서 매이를 세웠는데, 매이가 객석을 보지 않고 자꾸 엄마 뒤로 가더니, 반주가 시작되자 앙~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매이를 객석 앞자리에 앉히고 다시 율동을 계속 했더란다. 끝나고도 계속 울먹울먹 하여서 아내는 매이를 달래기 위해 애를 썼더란다.


집에와서 맹렬 연습중

그 와중에 같은 나이에다 매이랑 아주 비슷하게 생겨서 자동으로 비교가 되는 시은이는 “난 잘했지? 난 잘했는데, 난 잘해” 하며 계속 의기양양 염장질을 하더라나. 아내가 매이를 안고 왜 울었냐고 물으니, “매이 못해. 부끄러워, 아직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어.” 라고 속삭이더란다. 아내는 “매이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싫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그냥 세워서 미안해요” 라고 사과를 하고 가까스로 달래서 집에 왔다고 한다. 기분이 나아진 매이와 목욕을 하면서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니까 “내가 언제? 몰라” 하며 씩 웃더란다. 아내는 “매이한테 무대공포증이 있나 봐” 라고 한다. 나는 “매이야, 왜 울었어? 무서웠어?” 라고 물어보았다. 매이는 그 얘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있다가 “응, 부끄러웠어” 했다. 아내에게 “그런데 엄마는 혼자 잘하더라” 하는 매이에게 “그래도 아까는 엄마 속상했어요. 매이 울어서” 라고 슬슬 지적질을 하려고 들길래, 나는 아내한테 “자기는 무대 체질이었어?” 하고 따졌다. 아내는 “아니. 더 했지….근데 이상해. 점점 자의식이 약해지나 봐. 아깐 아무렇지도 않더라. 작년만 해도 못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이게 꼭 나인가, 나이기만 한가,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 매이는 작년만 해도 무대 공포증 같은 것 없이 아주 씩씩했거든.” 하길래 나는 “자기는 이제 늙어가는 중이고, 매이는 자라는 중이야” 했다. 아내는 “그런가 봐. 매이보다 어린 아이들은 남의 시선 의식하는 것 없이 신나서 그냥 율동 따라해. 같은 나이 시은이는 의식은 하는데, 약간 즐기는 것 같더라구.”

‘자아’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게 뭘까, 그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하는 부담스런 생각과 함께 자아는 자란다. 몇 가지 징후가 있었다. 매이는 아직 열까지 셀 줄 모른다. 내가 반발 앞서 세면 잘 세는데 혼자 셀 때는 꼭 ‘여덟’을 빠트린다. “…여섯, 일곱, 아홉, 열.” 좀만 하면 될 것 같아서 몇 번 반복해서 가르쳤는데도 번번이 ‘여덟’을 빼 먹는다. 그럴 때 내가 답답해 하면서 “매이야, 일곱 다음에는 여덟이지. 자, 일곱, 여덟” 하면 안 따라 한다. 안할 뿐 아니라 “매이는 못해” 하면서 울먹인다. 그래서 요즘엔 매이가 원하지 않으면 숫자 세기는 안 한다.

글자에 관심을 보여서 종이에 ‘매이’라고 적고는 “매이야, 이게 매이 이름이야. 한번 그려볼래?” 그랬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매이는 못해” 한다. 내가 그려준 그림을 가위로 오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실수로 선을 침범하거나 모퉁이를 잘라 먹을 때도 울먹이며 “매이는 못해” 그러고, 모국어와 다른 ‘영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는 외계어처럼 말하고 영어라고 하길래 “매이, 영어 배우고 싶어? 함 배워 볼래? 이건 ‘애플’” 했더니, 또 “매이는 못해” 그런다. 괜한 욕심 부린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혹시 매이가 과도한 학습부담감에 학습동기가 약화된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아싸, 집에선 잘 되는데

고만한 나이에도 학습부담감이 만만치 않다는 걸 여러 사람한테 들었다. 이웃한 어린이집에 다니다 옮긴 아이의 엄마는 거기는 두 살반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검사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아이들이 집에 와서도 울먹이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고 아이가 신경질적이 되어서 옮겼단다. 어휴, 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안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날 유나를 뒷 좌석에 태우고 운전 하면서 “유나, 어제 어린이집 왜 안 갔어?” 물었더니 “응, 사실은, 어제 한글 퀴즈 놀이 하는 날인데, 부담돼서 안 갔어” 하는 거다. 내참, 놀라운 언어감각을 가진데다 나중에 필경 공부도 잘할 유나가 벌써부터 저런 소리를 하다니! “한글 퀴즈는 어떻게 하는건데? 유나도 글자 배우지 않았나?” 했더니 “응, 글자 써 놓은 카드 보여주고 아이들이 맞추는 건데, 쉬운 글자는 아는데, 어려운 건 몰라. 우리 반에서 한글 많이 배운 아이가 있거든, 그 아이는 잘 맞추는데, 나는 잘 못해. 그래서 부담 돼” 한다. 국민학교 시절 받아쓰기 못해서 나머지 공부할까봐 배 아프다고 거짓말치고 조퇴했던 기억이 났다. 가슴이 아파서 더 안 물어 봤는데, 매이도 이제 그런 부담감에 시달릴 나이가 됐다니 참, 안쓰럽다.

저, 치어리더 같아요?

타인의 기대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걸로 치자면 나도 만만치 않다. 국민학교 다닐 때 나는 가을 운동회가 제일 싫었다. 운동회 며칠 전부터 가슴이 쿵닥거리고 머리가 아팠다. 달리기를 잘 해서 매번 일등을 했는데, 그럴수록 ‘이번에도 일등을 못하면 어쩌나’ 하며 근심했던 것이다. 운동회 몇 주 전부터 연습하면서도 밤마다 출발선 앞에서 총소리를 기다리는 꿈에 식은 땀을 흘리곤 했다. 그런 나와 수줍은 고양이처럼 남 앞에 나서길 싫어하던 아내의 유전자가 합쳐져 나온 아이니, 매이라고 다를 리 없다. 애써 부담감을 안 주려고 애쓰는 것도 어떤 효과를 거둘지 예측하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매이가 지고 가야 할 부담이다. 그저 조심스레 지켜볼 뿐이다. 매이야, 부디 스스로 부담감을 내려놓는 법을 익히길 바란다.

응답 3개

  1. 캬리말하길

    얼씨구나~! 첫번째 사진 외줄타기하는사람 같아요.ㅎㅎ

  2. 매이엄마말하길

    교회에서 한 율동은 아주 단순한 거였는데…집에 와서 갑자지 필받아서 한 율동은 무슨 민중가수 퍼포먼스 같더라니까….

  3. 북극곰말하길

    어우, 이번 사진 정말 최고에요! 매이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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