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장애인단체들이 왜 인권위원장 퇴진 투쟁해? 이용당하지 마시요!

- 박경석

12월3일 세계장애인의 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인권위 직원들의 출근을 하루 동안 막았다. 이날 인권위 직원들은 사무실 출입문을 막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왜 장애인들이 인권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일부 인권단체가 장애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니 속지 말라고 친절히 훈계까지 하였다.
경찰이 아니라 인권위 직원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순간 허망함이 밀려왔다. 인권위 고위 간부는 인권위원장이 장애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무슨 피해를 끼친 것이 있는가에 대하여 물어왔다. 이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들의 질문에는 장애인이나 장애인단체가 장애인의 문제를 넘어서 보편적 인권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해결의 주체 급은 아니지 않냐 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한 인권 문제 이외의 것에 대하여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주제넘은 모양이다. 그렇기에 일부 장애인들이 인권위를 점거한 것은 비장애인 인권단체의 선동에 넘어가서 불쌍한 장애인들이 이용당했다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철저하게 장애인을 대상화시킨 결과이다.

장애인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전체 사회의 변화와 결부돼 있다. 장애인 운동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장애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장애인의 인권문제가 그들끼리만 먹는 ‘따로국밥’이 될 수도,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는 차별과 경쟁의 속도를 멈추고 모든 소수자들과 함께 먹는 ‘비빔밥’이 될 수도 있겠다. 장애인인권 문제는 상황과 정세에 따라 ‘따로국밥’이 되기도 하고, ‘비빔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들이 ‘비빔밥’을 선택하면 금기를 선택한 것인 양, 장애인들이 마치 일부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는 것인 양 취급한다. 장애인의 문제를 전체 인권문제와 별개로 취급하는 자들이 몇 개의 떡고물을 들고 장애인을 불쌍한 집단으로 전락시키면서 자신들의 선함을 치장하는 정치적 판단을 하곤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번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예산안이다. 한나라당은 장애인예산을 깎고 또 독소조항을 담은 장애인관련법을 상임위원회의 논의도 거치지 않고 날치기 통과시켜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장애인시설에 찾아가 장애인을 위로하고 봉사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권활동가들이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국가인권위원회, 그 인권위를 점거하는 동안 인권위 직원들의 태도와 언어에서 한나라당의 정치선전과 같은 태도를 보았다. 그 자체로 허무하고 슬펐다. 이제 인권위는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찾아와 호소하고 권리를 찾는 곳이 아니라는 배반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현병철 인권위원장 퇴진을 요구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인권정책 후퇴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였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마저도 정권의 ‘이권(利權)’으로 변질시켰다. 이권으로 변질된 인권의 표상이 바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퇴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보편적 인권이 정권의 이권으로 변질되어가는 속도를 막는 최소한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MB는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내세워 인권위원회를 장악하고 인권위를 정권의 이권을 창출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 산출물은 ‘가짜인권’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인권위를 통폐합 시키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다. 이 일 이후 들고 나온 카드가 인권위 인원 축소였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질적인 집행을 위해 인권위 인원을 증원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은 휴지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인권위는 축소되어 버렸다. 인권위 축소에 더해 아예 사람을 교체시켜버리면서 인권위는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추천으로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활동내용이 검증되지 않은 현병철 씨의 인권위원장 임명, 장애인시설을 운영하였고 그 과정에서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 의혹이 불거져 나온 김양원 씨의 비상임위원 임명 등이 대표적인 인사이다.

그렇게 임명된 인권위원들이 국가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원위원회 다수를 장악했다. 이후 엿장수 마음대로 현안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상임위원회 권한을 축소하는 운영지침 개정 시도가 발단이 되어 상임위원 두 명이 임기를 마치지 않고 사퇴를 발표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불을 지핀 것에 불과하다. 본질은 이명박 정부의 인권에 대한 태도와 방향에 대한 분노가 누적되어 터져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에 담겨있는 노랫말의 간절한 바람처럼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는 MB의 이권위원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인권을 노래할 수 있는 인권위원회로 자리를 다시 잡기 바란다. 이를 위한 출발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사퇴라고 본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따로국밥’ 운동과 ‘비빔밥’ 운동, 비유가 참 멋지네요. 장애인운동이 정체성운동을 넘어 보편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신 점,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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