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세밑에 나를 슬프게 하는 일들

- 김융희

참으로 우울한 세밑이다. 몇십 년만의 한파에 따끈한 차라도 마시면서 얼어버린 마음을 달랬으면 싶어, 가까운 몇 집들에 차를 세밑 선물로 보냈다. 그 이후 가벼운 선물에 고맙다는 마음의 전화를 받으면 공연히 머쓱해 진다. 그렇치만 결코 싫친 않았다. 그런데 그 고맙다는 한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너무도 당혹스럽다. 복바친 슬픈 생각에 어수선한 세밑이 더욱 우울하다.

누구나 있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도 생각하면 마음 뿌듯해지면서 뭉클한 마음을
갖게 되는 몇가지의 일들이 있다. 정말 나는 그런 일들로 행복감을 느끼며,
그같은 기분에 지금의 삶이 늘상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고, 어떤 힘들고 썩 좋지
않는 일이 있어도 별로 주저없이 즐거운 일상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는 뭐 37년만의 가장 혹독한 추위의 크리스마스 날씨였다고 했다.
몇 년만의 추위가 아니라도 추위는 추윈 것이다. 그런데 메스컴의 역할이
커지면서 지금은 날씨를 보도할 때마다, ‘몇 년만의’와 같은 앞 뒤에 꼭
수식어를 붙이며 당연한 겨울 추위를 맹추위로 치켜 지레 겁을 주는 등,
때로는 호들갑이 추위보다 지겹다. 그러나 경망스러운 호들갑이 역겹다는 것일 뿐,
갑작스레 영하 10도 이상을 곤두박질 치는 엊그제의 추위는 대단했었다.

하필이면 그 추우날 상경하여 많은 해야할 힘든 일이 있었다. 정말 그만 두고
싶은 힘겨운 일들로 뛰다 보니 벌써 오후로 접어 들었지만 점심도 거른 채였다.
그렇다고 아직은 한가하게 점심을 들 처지도 아니었다. 아주 당연한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추위와 함께 이런 힘든 일이 겹쳐 있어 공연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처럼 고된 일을 마치고 나는, 조금은 멀지만 중구청 부근의 선술집인 단골
할머니를 찾았다. 허름한 비좁은 점포에 난방이 제데로 일 수도 없다.
조그만 연탄 난로가 있긴 하지만, 불기가 약해 손님들은 따끈한 국물로 속을
달래며 자기 채온으로 버티는 집이다. 점심 시간이 벌써 지난데다 워낙 추워서
인지 손님도 없다. 앉아서 쉬고 있던 할머니는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하여 괜찮데도
결코 그 자리를 권한다. 전기 방석을 깔아 따끈한 감촉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따끈한 방석에 앉아 시레기국을 마시며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온몸에 화기가 돌면서
시장기도 사라져 몸이 봄바람에 눈 녹듯 풀린다.
지금까지의 고됨이 한 잔의 막걸리로 오히려 민망스레 한다면 지나치다 할건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같은 시장통 선술집 단골이 몇 곳 있었다. 이렇게 나를
편케 맞아준 단골들이 차츰 시나브로 사라지면서 지금은 오직 이 곳 뿐이다.
나를 행복하게 돌봐 준 흐뭇한 일들이 이처럼 차츰 떠나고 있어 나를 슬프게 한다.
지난 호에 썼던‘나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처럼 도매업 영업집에서 할인 판매의
부당 영업을 했다는 빌미로 어려움을 겪는 단골의 고통당한 처사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이같은 일들이 나를 우울하게 하여 슬프다.

오늘은 참으로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종일 비통함으로 애잔한 마음이다.
일찍부터 막걸리를 좋와하는 나는, 한 때 입맛에 드는 막걸리를 구하지 못해
집에서 담궈 들었다. 꼭이 나의 별스런 입맛은 아니었지만, 시중의 술 중에
특히 막걸리의 질이 떨어지면서 도저히 입맛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때이다.
아마 막걸리의 포장과 유통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걸리 양조장은 별도의
용기가 없이 큰 통으로 배달을 하면 독에 담아두고 그때마다 때에 따라 나누어
팔면서 맹물을 섞어 양을 늘리기도 했고, 비위생적 그릇으로 유통기간도 없이
마구잡이로 판매가 되었으니, 당연히 술의 맛과 질이 떨어진 불량의 막걸리였다.

그래서 조금은 힘들고 불편했지만 많은 량이 아니었기에 줄곧 담궈 들었다.
십여 년도 훨씬 전, 서울에서 남한산성의 뒤편인 퇴촌으로 이사를 했다.
마침 집에서 막걸리를 써야 할 일이 있었다. 집에 담궈논 술은 떨어졌고 해서
불가피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왔다. 의외로 맛이 좋왔다. 함께 들었던 모두가
술맛에 동의를 했다. 그 이후로는 집에서 담그는 일이 끝났다. 맛이 마음에
들어 양조장에서 직접 가져왔고, 연천으로 이사를 하기 전까지 나는 계속 이
양조장의 막걸리를 들었다.

그동안 나는 10여 년 이상을 거의 매일, 그것도 돈도 들지 않고 내 것처럼,
이 곳의 막걸리를 마시고 이용했었다. 마음 좋으신 양조장 주인은 한사코 돈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양에도 구애됨이 없이 필요한 만큼을 그냥 주었다.
그 후덕함을 정말 염치없이 받아오면서 10여년을 넘게 지낸 그 양조장의
사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그 아들로 부터 오늘사 전해 들은 것이다.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내 흐뭇한 행복감도 사라져 버린 채, 허망하기만 하다.
나를 행복으로 붙잡아 주는 일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나는 남들 앞에서 늘상 당연지사처럼 복있는 사람이라며 자랑을 서슴치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나에게 남다른 욕심이 있다면 첫 째로는 막걸리의 좋와함이요
다음이 책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더 대라면 욕심난 만년필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읽고 싶은 신간의 책을 거의 제공받고 있다. 요즘처럼 비싸진 책값에
염치 없어 가끔은 내가 피할 뿐이다. 서점엔 감사하며 남들께는 자랑하고 싶다.

막걸리 역시 10여년 이상을 무진장 제공 받았다. 지금은 멀리 이사를 해서
못 간지가 벌써 일년도 넘었다. 그 사이 다녀 가라는 연락도 몇 차례 받고서도
들리지 못했다. 암으로 투병중임을 전혀 모른 채 였다.
그런데, 아직 육십도 채 않된 꽃다운 모습이었는데, 이제 영 작별이라니,..

그것도 모르고 나는 세밑 선물로 한방차를 보냈더니, 아들이 전화를 했다.
상심의 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못해 대신 전하는 전화라면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한 것이다. 유난히도 금실 좋았던 그들이 이처럼 어이없는 이별로
상심이 얼마나 클까?
외국에 유학중인 착하고 공부 잘한 아들이라며 자랑도 많이 했었는데…

새들이 둥지를 떠나듯, 세상의 인연도 이렇게 하나씩 떠나는 것일까?
이런 일이 아니어도 스산한 세밑에서 감당키 힘든 좋지 않는 일들이 들려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모든 액운이 가는 해와 더불어 함께 멀리 멀리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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