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우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감시하자

- 데모스

판옵티콘의 쾌락

푸코는 근대 통치권력의 꿈을 ‘판옵티콘’이라는 감시장치로 도상화했다. 벤담이 고안한 이 장치의 핵심은 시선의 비대칭성에 있다. 중앙 감시탑에 있는 감시자는 개별적으로 고립된 피감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지만, 피감시자는 중앙의 감시자를 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피감시자는 감시자가 없을 때조차도 감시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보기’, 이것이 모든 권력기관의 꿈이자 쾌락이다.

관음증자와 마찬가지로 권력기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감시 자체에서 권력과 쾌락을 향유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 교장은 지난 4월 장애인 시위와 관련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의 e-mail을 빌려서 보낸 글이(“이 메일은 검찰도 모를거야”로 시작되는) 검사의 손에 의해 (“우리는 다 보고 있어요” 라는 말과 함께) 제시될 때 섬뜩함을 느꼈다. 당황해하는 그를 지켜보는 검사의 표정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훔쳐보는 도착증자’의 쾌락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쫄지는’ 않았지만 이후 박경석 교장은 경찰과 검찰이 훤히 볼 수 있는 전자통신망을 피해서 소통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G20 홍보포스터에 쥐를 그린 일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권력기관은 자신의 감시, 통제 능력을 즐긴다는 걸 알았다. 핸드폰 통신내역과 문자내용, e-mail 내용, CCTV 녹화영상을 들이대며 ‘이건 몰랐지? 우리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그들은 부드러운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별일 아니다. 잘 협조하기만 하면 선처해주겠다.” 권력은 정식 재판 이전에 내사와 소환, 영장청구와 조사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발휘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보는’ 권력기관의 힘과 쾌락에 치를 떨며 움츠러드는 순간 판옵티콘은 이미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항상 소환되고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 전화나 문자, 혹은 다음과 같은 서신으로 ‘당신은 이제부터 피의자가 되었으니 모일 모시 모 경찰서로 출두하여 조사를 받으시오’ 라는 통지를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출두해보면 알게 된다”고 한다면? 카프카의 소설 <소송>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출처: 촛불·네티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민간인사찰,공권력남용 피해사례 발표회

전기통신기본법(47조 1항: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나 명예훼손죄, 혹은 모욕죄로 많은 네티즌들이 저런 출석요구서를 받고 가슴 졸이며(심하면 우울증에 시달리며)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인터넷 게시물 때문에 갑자기 공안사범이 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고발당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경찰은 그동안 감청한 통신내역과 인터넷 게시내용을 복사한 종이를 보여준다.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 사적인 통신내역을 감청할 수 있느냐고 하면, 경찰은 의기양양하게 다음과 같은 통신영장을 제시한다. 인신구속영장과 달리 통신감청영장은 본인도 모르게 발부되고 집행된다.

(출처: 촛불·네티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민간인사찰,공권력남용 피해사례 발표회)

다행히 지난 1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법 41조 1항에 대해 위헌 판정을, 통신비밀보호법 6조 7항(수사상 감정 기간이 2개월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하면 2개월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연장 횟수는 제한하지 않고 있다)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그렇다고 권력기관이 감시의 쾌락을 포기할 리는 없다. 2009년 7월 쌍용자동차 집회현장에서 시민들을 사찰하다가 발각된 군 기무사 신 대위(지금은 소령으로 진급했다)의 캠코더가 증명하듯 음지에서 양지를 지양하는 권력기관의 은밀한 감시는 법의 저편에서 이뤄지고 있다. 신 대위의 캠코더와 메모리카드에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당원 및 그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군 기무사와 국정원, 청와와 직속기관(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일선 경찰서의 정보과는 사법적 근거가 아니라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잠재적 저항세력의 사상과 사생활과 동선을 감시하고 있다.

위키리크스, 권력을 역감시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기의 몹쓸 권력과 쾌락을 성가시게 하는 건 뭘까? 위키리크스가 그 해답을 제시한다. ‘반사!’,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권력자의 비밀을 감시하기’가 그것이다. 잘 알다시피, 위키리크스(WikiLeaks)는 해커출신의 줄리안 어산지와 동료들이 만든 폭로전문 사이트다. 이 사이트는 신원이 보호된 내부고발자들의 자료를 통해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의 공공연한 비밀을 폭로한다.

가령, 지난해 4월 위키리크스는 2007년 이라크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통신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교신내용: … 씨발, 걸리는 대로 갈겨버려. 너희 부대가 보이는데, 어, 차량이 4대 정도, 어, … 아무것도 없다. 자. 사격 개시. 그놈들 잡으면 알려줘. 발사. 다 날려버려. 쏘라니까! (기관총 사격) 계속 쏴. 계속 쏴. (기관총 사격) 계속 쏴. 호텔 … 부시마스터 2-6, 부시마스터 2-6, 우린 즉시 이동해야한다! 알았다. 우린 적 8명과 교전 중이다. 그래, 새(헬리콥터) 두 마리가 보인다. 계속 사격하겠다. 로저. 알았다. 2-6, 여기는 2-6, 이동하겠다. 앗, 무슨 일인가? 빌어먹을, 카일. 됐어, 하하하. 내가 쐈어.

살육을 게임처럼 즐기는 미군의 모습을 공개한 이 동영상은 게임 관전하듯 전쟁을 방관, 또는 지지하는 전세계 여론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공공연한 비밀이 폭로된 것에 당황한 미 국방부는 아파치 헬기 동영상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군인 브래들리 매닝을 구금하고 있다. 매닝은 23만여건의 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매닝이 체포된 뒤에도 고급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키리크스는 매닝이 제공한 자료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매닝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과 수천명의 미국 외교관들이 하루아침에 심장마비에 걸릴 만한 자료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위키리크스는 더러운 전쟁의 비밀 뿐 아니라 더러운 금융자본의 공공연한 비밀도 폭로한 바 있다. 2009년 7월, 위키리크스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지만 ‘기밀유지법’ 등을 내세워 정보 공개를 거부했던 아이슬란드 최대 은행인 카우프싱 뱅크의 비리 관련 자료를 폭로했다. 그런데 국영TV 방송을 타기 5분 전에 자료방송이 금지됐다. 위키리크스는 방송시간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웹사이트를 대신 보여주었는데, 덕분에 위키리크스는 아이슬란드에서 엄청 유명해졌다. 이후 언론통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어 아이슬란드 정부는 조세 피난처와 유사하게 자유언론을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권력의 정의롭지 못한 비밀을 폭로하는 것 외에 위키리크스는 권력의 추잡한 사적 이면을 폭로했다. 지난해 11월 28일 위키리크스는 지난 3년 동안 미국 국무부가 전 세계 270개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외교 전문 25만여건중 7백여 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외교전문 내용은 전세계를 경악케 했는데, 미국이 각국 정상의 사생활 정보와 DNA 정보까지 수집하고 자국에 유리한 정책을 압력하며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오래된 진실’이 선명하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위키리크스와의 더러운 전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걸 보는’ 권력의 쾌락을 방해한 위키리크스에 대해 통치권력이 가만있을 리 없다. 미국정부는 줄리언 어산지를 간첩혐의로 수배했고, 인터넷업체와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어 위키리크스의 서버를 차단했고 후원계좌를 동결시켰다. 스웨덴 정부는 어산지를 성폭력 혐의로 수배했고, 영국은 어산지를 체포했다. 구속은 못 시켜도 도덕적 흠집은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산지를 옹호하는 해커들은 위키리크스의 후원계좌를 동결한 금융기관에 사이버공격을 감행했고, 위키리크스를 복사한 수만개의 미러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정보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대중은 비밀을 사랑한다

위키리크스의 힘은 통치권력의 눈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는 ‘비밀주의’에 있다. 위키리스크는 서버를 보호하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의 지하 30미터에 화강암을 뚫고 만든 핵전쟁 벙커에서 서버 호스팅을 하고 있으며, 정보제공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최정상급의 보안코드를 사용하여 인터넷상에서 자료가 몇 번 돌게끔 하여 흔적을 없앤 후 공개하고 있다.

주로 일반 우편으로 정보를 얻는데, 특수암호 프로그램으로 암호화 하는 경우도 많다. 취득한 정보의 가치와 사실 여부는 점조직 형태로 존재하는 12명의 전임 조언자들과 전 세계 800명~1000명의 자발적인 전문 조언가들에 의해 판정되고 그 이후에는 여느 언론사처럼 자료를 공개한다. 이처럼 위키리크스는 통치권력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를, 집단지성에 대해서는 ‘공개와 참여’의 원칙을 지킨다.

권력의 비밀은 폭로하면서 왜 자신들은 비밀스럽게 존재하느냐? 라는 비난은 위키리키스가 폭로한 가장 중요한 비밀, 즉 통치권력에 내재한 전쟁의 속성을 감추는 비열한 논리다. ‘국익’, ‘국가안보’ 같은 정치적 기치와 ‘투명성’, ‘책무성’(accountability) 같은 도덕적 기치에 숨어 있는 계급적 편향성을 또다시 은폐하는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위력은 비단 정의로운 폭로의 내용에만 있는 게 아니라, 통치권력의 판옵티콘 전략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시하기’를 역으로 이용하여 통치권력과 대등한 이중권력을 창출, 세계권력 대 세계시민 사이의 전쟁을 선포한 데 있다. 전쟁에서 비밀은 필수적이다. 통치권력이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비밀스런 감시’을 되받아쳐서 통치권력이 볼 수 없는 곳에서 권력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 권력자에게는 지극히 비밀스러우면서 대중에게는 한없이 노출되는 것, 이런 이중전략이야말로 판옵티콘의 중핵인 시선의 비대칭성을 철폐하고 절대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탈근대 전략의 비밀이다.

응답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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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햌말하길

    ‘위키리크스’가 비밀주의를 표방한다기보다 그 반대로 정보의 자유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해커문화의 기본정신을 이어받고 있으니까요. 물론, 정보의 자유를 주창하면서도 익명성의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보면, “위키리크스의 힘은 통치권력의 눈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는 ‘비밀주의’”라든가 “위키리크스는 통치권력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를 …”에서 비밀주의 대신 익명(성)이 더 적합하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아래의 문장이 잘 이해가 안 가는 듯 합니다.
    “권력의 비밀은 폭로하면서 왜 자신들은 비밀스럽게 존재하느냐? 라는 비난은 위키리키스가 폭로한 가장 중요한 비밀, 즉 통치권력에 내재한 전쟁의 속성을 감추는 비열한 논리다.”

    • 데모스말하길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위키리크스의 활동을 표현의 자유라는 틀에서만 평가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류언론이나 거기서 인터뷰하는 어샌지는 표현의 자유를 ‘권리’ 차원에서 주장하죠. 하지만 제게 더 흥미로운 건 표현의 자유를 위한 ‘능력’입니다. 자신들의 통치이념에 따라 언제든 표현의 자유를 제맘대로 제약할 준비가 된 권력자들의 눈으로부터 대중들(내부고발자들)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능력, 그러면서도 대중들에게는 활짝 개방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한마디로 ‘대중들 속에 숨을 수 있는 능력’ 저는 그게, 언제나 반작용의 힘을 굴복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통치권력과 맞짱뜰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법적담론과 도덕담론 안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는 법(권리와 의무)의 언어보다 전쟁의 언어를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오병권. 오병권 said: RT @Progress_News: [수유너머] 우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감시하자: 판옵티콘의 쾌락 푸코는 근대 통치권력의 꿈을 ‘판옵티콘’이라는 감시장치로 도상화했다. 벤담이 고안한 이 장치… http://bit.ly/huE1U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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