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개그 정권의 웃기는 비극: 북한 붕괴와 통일의 시나리오

-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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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주에 할 말은 아니지만, 올해도 꽤나 시끄러울 것 같다. 그러나 특히나 시끄러운 것은 우선 개그계일 것 같다. 뒷구멍에 몰래 숨어서 종편인지 송편인지 나눠처먹은 넘덜이 새해 첫날부터 신문사설에다 특혜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뻔뻔개그를 하고 있고, 그걸 나눠주는데 앞장선 넘들은 10명 가까운 머리가 모여서 결정했다고 ‘집단지성’을 자처해서 개그계에 새로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애들 급식 갖고 소란을 일으켜, ‘진보파’ 주장에 반대하면 무조건 지지할 거라고 생각되는 멍청한 넘덜 눈에라도 들어 대통령의 꿈을 키워보겠다는 서울시장의 노이즈 마케팅도 시끄럽다. 구제역 방역한답시고 이미 50만 마리 이상의 애꿎은 동물들을 죽였지만, 조류독감까지 더해 죽음의 쓰나미가 되어 전국으로 확산되는 판국에, 야당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회를 해서 구제역이 확산되었다며 돌아다니지 말라는 여당 대변인의 말로 개그계는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이명박 정권을 죽여버리자”고 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국가를 전복하고 국내 혼란을 야기해 정권을 불법적으로 찬탈하려는” 내란음모죄에 해당되는지 감찰에서 수사를 시작했다고 하는 얘기 또한 한국 개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 강력한 폭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어이없는 소란이 개그계에 그치진 않을 것 같다. 시종일관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하는 전쟁-액션계 또한 작년의 거대 사건이 이어지면서 고도의 긴장을 수반하는 소란을 지속할 것 같다. 이미 전투기와 대포, 함대의 3차원 입체작전이 등장했고, ‘도발’, ‘응징’은 물론 ‘전쟁불사’가 새해 첫날의 신문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둘러싸고 있으니 말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도발하면 응징한다”는 것 밖에 없는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또 다시 그 말을 반복함으로써 천안함에서 연평도로 이어진 영화 같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아마도 이명박은 북한이 붕괴하고 통일이 되는 엔딩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때가 되면 “통일이 머지 않았어”, “북한 붕괴가 머지 않았어”라고 여기저기서 떠들고 다녔던 것이 이 엔딩을 위한 복선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들 욕하던 추한 노인이 사실은 미래를 내다보는 외로운 예언자였음이 드러날 것이다.–이런 몽상이라도 갖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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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예언자 연기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의 붕괴는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 걱정스런 것은 북한이 식량난이든 무슨 난이든 발생해도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의 관리들은 식량난이나 내부적인 고통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격화되고 있으며 이는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식량난으로 죽음 직전으로 몰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정권은 무너지지 않는다. 인민들이 굶어죽는다고 정권이 무너지진 않기 때문이다. 동독 정부가 붕괴한 것은 동독인민들이 대대적으로 외국으로 탈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대대적인 탈출을 방치할 거라고 믿어도 좋을까? 더구나 동독과 달리 탈출할 곳이라는 게 중국과 남한 밖에 없지 않은가? 중국정부가 난민의 대대적인 탈출을, 그것도 북한의 동의없이 받아들일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북한주민이 남한으로 대대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북한이 허용하리라고, 아니 남한 정부가 허용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느 것도 현실적인 가능성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탈출에 의해 북한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인민들이 다 빠져나가 통치할 인민, 생산할 인민이 없어 붕괴하는 그런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그게 안된다면 또 하나, 정권이 붕괴하는 길은 굶주림에 지친 인민들이 봉기하여 정권을 넘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버이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야 굶주림 앞에서 와해된다고 가정해도, 당과 국가의 강력한 통제 하에 있는 북한주민들이 봉기하여 정권을 전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절대적 고립 속에서 식량난으로 주민이 대다수 죽어가는 경우는 있을 수 있어도 주민들이 정권을 전복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한보 양보하여 이명박 정부 관리들 말대로, 위기가 심화되어 북한정권이 붕괴하게 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북한은 붕괴하고,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고, 남한의 지배층이 북한을 접수하여 국유재산을 나누어갖는(‘불하’) 그런 ‘해피엔딩’이 일어날까? 내가 보기엔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 같다. 먼저, 그런 상황에서 남한이니 미국이 북한으로 밀고 들어가서 북한을 접수하는 일은, 적어도 중국과의 대결을 내포하는 전면적인 전쟁을 가정하지 않는 한 생각하기 어렵다. 북한이 붕괴하고 남한이나 미국이 북한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을 중국 정부가 그냥 보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핵은 또 하나의 결정적 장애일 것이다). 그런 식의 결말은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남한과 미국의 ‘침략’과 ‘점령’을 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조차 거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덧붙여야 한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보았듯이, 점령군에 체포되기보다는 자신들이 자랑하는 ‘위대한 빨치산’ 전통을 이어 게릴라전을 벌이는 편이 어떻게 보아도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동은 물론 체첸이나 아프리카 어디를 보아도, 군사적 점령이 게릴라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는, 최근의 전쟁 어디에서도 없지 않았던가!

침략과 전쟁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담당자들이 붕괴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권력과 인민을 이양하는 경우도 가정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 경우 여러분이 북한 정권의 권력자들이라면 어떻게 할까? 아무리 붕괴 직전의 상황이라고 해도, 자신들을 고립으로 몰아넣고 붕괴를 기다리며 어떤 원조도 중단해버린 남한 정부에게, 그들 말로 ‘미제의 앞잡이’들에게 정권을 넘기고 싶은 생각이 들까? 북한정권의 붕괴를 위해 주민들의 식량위기에 대한 ‘인도적 지원’마저 끊어버린 남한 정부에 자국 주민들을 넘길 생각이 날까? 그보다는 차라리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지지해주었고 ‘사회주의’의 대의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에 넘기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중국으로선 북한주민을 받아들이며 대의를 과시하며 북한의 영토를 자국의 일부로 통합할 수 있을 테니, 중국으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경제규모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경우에는 북한의 붕괴는 ‘통일’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북한의 위기를 북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발상도, 북한의 붕괴가 통일로 이어지리라는 발상도 순진하기 짝이 없다. 북한 인민에게는 정말 불행하게도 북한의 위기가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고, 통일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불행하게도 북한의 붕괴는 통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통일문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현실적인 감각과 논리적 사고능력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김정일의 건강이 안 좋다는 보고 하나로, 혹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다는 보고 하나로 북한의 붕괴와 통일을 예견하는, 희망과 사실을 혼동하는 유치한 착각을 통일정책,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는 어이없는 ‘집단지성’처럼 무능하고 위험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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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양보하여, 이명박 정부의 그 유치한 발상대로 북한이 붕괴하고 통일이 되리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런데 남한의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서 그런 보고를 받았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진보적인 건 그만두고, 단순한 통치자의 관점에 서 있다고 해도 통일 뒤에 어떻게 사태가 진행될 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정도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가정한대로 북한이 붕괴하고 통일이 된다면, 식량난에 일자리도 없는 2천만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남한의 기업들에서 싼 값에 고용해서 거대 이윤을 올리고 국제경쟁력을 높인다? 그러나 지금 남한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고, 실업률은 그만두고라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50%를 훌쩍 넘겨, 일자리가 부족해 4대강 까서 일자리 백만개 만들겠다는 둥의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4대강이 아니라 모든 산을 까서 평지로 만드는 거대 토목공사를 벌여도 2천만 주민을 고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로 수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2천만 주민을 ‘난민’으로, 국가가 먹여 살려야 하는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용을 대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통일세’ 걷어 세금으로? 그러기에 2천만 주민은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한 숫자 아닐까? 그렇다고 굶어죽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경제 전체에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그것은 한국의 경제 전체가 감당하기 힘든 수렁에 빠지게 되는 걸 뜻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기 전에, 통일이 되었다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그런 사태를 예상한 외국자본들이 증권시장에서 빠져나가 주가가 폭락하고, 원화의 가치는 폭락하여 자칫하면 모라토리움으로 몰려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입장을 떠나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일 것이다. 따라서 내가 대통령 자리에서 그런 보고를 받았다면 도대체 이를 우찌할 꼬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이나 그 밑에 있는 분들이나 “북한은 끝났고, 통일은 다 되었고, 이젠 딱히 따로 할 것도 없다”면서 손 놓고 신이 나서 떠들고 다는 걸 보면, “어쩜 저렇게 철이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뒤에 닥쳐올 것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북한이 망했고, 우리는 이겼다는 식의 유치한 승리감에 뜰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걸 전제로 북한에 대한 정책이나 통일정책, 외교정책을 “뭐 따로 특별히 할 것도 없다”면서 ‘기다리면 된다’는 걸로 일관하고 있었다니, 정말 어이없는 걸 지나서 놀랍기 그지없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심각하고 비장한 전쟁게임도 사실은 본질은 개그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코앞에 다가온 전쟁의 위험 앞에서도 사실을 알고 보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그런 코메디. 그러나 그 코메디를 보는 와중에 어느새 전쟁의 참화 속으로 말려들어갈지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쟁 같은 비극적 참사는 대부분 전쟁이나 정치에 능란한 정치가가 아니라,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고함치고 목소리 높이는 것밖엔 싸움이나 정치의 방법을 알지 못하는 얼치기들에 의해 어이없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말 웃길 정도로 비극적인, 끔찍한 운명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운명을 어떻게 모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어이없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이것이 좋든 싫든 피하기 힘든 올해의 질문 아닐까 싶다.

응답 1개

  1. 말하길

    거의 북한정권도 막바지에 온것 같은데?

    여기선 님의 예측이 틀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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