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금

서경식, 전쟁전야 해방전야

- 조진석

다시금 동아시아에서 평화가 막을 내리고 화해의 강물은 꽁꽁 얼어붙어버렸고 꺼진 줄 알았던 전쟁의 불은 스멀스멀 다시금 살아나 이곳에서 피어나 저곳으로 번지기 시작한 동아시아의 지금, 혹시 우리는 전쟁의 세기가 끝난 적이 없었는데 잠시 평화라는 달디단 꿈속에 빠져 있었거나 혹은 너무도 오래 기간 전쟁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보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포성에도 전쟁을 듣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폭풍우 한 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아무 일없으리라 자위자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의 전야(前夜)가 내려앉기 전,

“지금은 밤이다. 밤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빠르게 거침없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밤은 칠흑의 어둠이 아니라 오히려 불쾌한 밝은 빛을 띠고 있다.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 같다. 색채만 요란하고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비논리적인 발언을 태연하게 되풀이하면서 경박스럽게 웃고 있다. 웃으면서 확실히 전락하고 있다. 그 끝에는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 전야, 파국 전야다…….”

잡지 <前夜>의 예언적 언어가 지금처럼 실감난 적은 없었다.

점점 전쟁이 아닌 가능성의 문이 닫혀가는 현실 속에서,

“옛날에 탄광의 갱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새장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써 위험을 알린다.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에 일본 사회에 태어난 재일조선인은 말하자면 ‘탄광의 카나리아’와도 같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서경식은 카나리아처럼 먼저 고통을 느끼고서 수인의 감옥어로 한국과 일본, 현해탄의 어둠과 깊이보다 더 짙고 높은 국경을 힘겹게 두드리면서 통방(通房)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파울 첼란의 시처럼.

파울 첼란(Paul Celan)은

“시는, 그것이 언어의 한 현상이고 그럼으로써 본질상 대화적인 만큼, 하나의 유리병 편지일 수 있다. 그 어딘가에서 그 언제인가 육지에, 어쩌면 마음의 나라에 가 닿으리라는 – 확실히 늘 큰 희망을 걸 수는 없는 – 믿음에서 띄워 보내는 유리병편지. 시는 또한 이런 식으로 도중(途中)에 있다: 무언가를 줄곧 향하면서.”

라고 했지만, 조그만 희망도 걸 수 있다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쟁전야, 파국전야는.

서경식은 칼럼, 에세이, 논문으로 끊임없이 또한 반복해서 차별을 고발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식민지주의를 비판하고 분단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지 예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주 금요일, 교토 조선제일초급학교에 ‘재일(자이니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라는 단체 사람들이 몰려와 아이들 앞에서 소란을 피우면서 ‘스파이 자식들!’ ‘조선학교를 일본에서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치며 몇 시간이나 협박을 했습니다. 요즘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 배외주의자들 짓이니 내버려둬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일본인 머조리티(다수, 주류)의 감각이 이런 협박행위와 폭행을 허용하는 사회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라는 이메일을 작년 12월 어느 날 젊은 재일 조선인 여성에게서 받았다. 서경식은 말한다.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은 이랬다. 이제 나는 59살이 됐다. 메일을 보낸 그녀는 갓 20살이다. 내가 그녀의 나이였을 때 꼭같은 의문과 분노를 경험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다는 건가.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됐을 뿐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단 말인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공허감과 젊은 세대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메었다.”

서경식의 발신이 있은 지 4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왜일까? 서경식은 「일본‘국민주의’의 어제와 오늘」에서 “ ‘국민주의’는 ‘nationalism’ 일반과 달리, 소위 선진국(구 식민지 종주국)에 사는 다수자가 무의식중에 품고 있는 ‘자국민 중심주의’를 이르는 말이다. ‘국민주의’는 대개 일반적인 배타적 내셔널리즘과는 다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당사자도 스스로를 내셔널리스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국민주의자’는 자신을 내셔널리즘에 반대하는 보편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스스로를 시민권 citizenship을 지닌 주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여러 권리가 근대 국민국가에서 만인에게 보장되는 기본권이라기보다는 ‘국민’이라는 것을 전제로 보장되는 일종의 특권이라는 현실을 좀처럼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국민주의자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자각이 없고, 그 특권의 역사적 유래에는 눈을 감으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국민주의자는 ‘외국인’의 무권리 상태나 자국이 저지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에는 둔감하거나 의도적으로 냉담하다. ‘국민주의’는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배타적인 ‘국가주의’와 공범共犯 관계를 맺게 된다. 이와 같은 ‘국민주의’적 심성은 근대국가의 국민이라면 많건 적건 공유하고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특히 일본의 경우를 문제 삼고자 한다. 왜냐하면 일본은 구 식민지 종주국이며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지만, 독일의 경우와는 명확히 다르다. 이러한 역사적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른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 10년 동안 일본의 행보는 역사적인 ‘반동 反動’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게다가 2006년 9월에 들어선 아베 신조 내각은 ‘극우 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 이와 같은 현상은 보수파나 우파가 혼자 불러왔다기보다는 오히려 국민 다수 속에 뿌리 내린 ‘국민주의’적인 심성이 보수파와 우파를 크게 도왔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평화의 위기 요인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와 싸워 나가려면 여러 민족 간 연대나 다수자 majority-소수자 minority간 연대가 필요한데, 이를 막는 장애도 또 이 ‘국민주의’인 것이다.”

다수 속에 뿌리내린 ‘국민주의’적인 심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것이 언제라도 장애가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문제는 ‘국민주의’인 것이다.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한국문학’과‘세계문학’을 둘러싼 단상: ‘새로운 보편성’을 찾아서 」에서 “ 재일조선인인 나,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팔레스티나인, 우리는 서로 이렇게나 떨어져 있다. 우리들은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가르고 있는 것이 근대 식민주의자들이 자의적으로 그은 경계선인 이상 식민지주의와의 부단한 투쟁을 통한 과정에서, 또 그것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서로 만나고 새로운 차원의 ‘우리’로 자기의식을 발전시켜 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라는 말은 ‘보편성’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하고 식민지주의와 부단하게 투쟁하는 과정에서, “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인용한 글은, 『디아스포라 기행』을 비롯한 서경식의 여러 저서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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