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올해는 게임을 끊자! 왜?

- 이윤송(서강대 신방과 석사과정)

무언가를 끊겠다는 생각은 그 무언가의 반복적인 행위를 전제한다. 우리는 이를 습관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자신의 선택의 결과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떠맡아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습관이 온전히 개인의 몫일뿐일까? 습관이라는 단어의 앞뒤를 바꾸면 관습이란 단어가 되듯 개인의 행위를 뒤집어 보면 그 이면에는 사회 구조적 반향의 몫이 드러난다.

하나의 습관이 온전히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습관에 관해 상대적으로 명확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습관에는 좋은 것 나쁜 것이 존재한다. 나쁜 습관으로서 게임에 붙여진 짧은 이름이 있다. 게임중독이다. 중독은 어떤 반복적이고 지속되는 행위를 (특히 나쁜 습관들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를 일컫는다. 게임중독은 알콜중독, 마약중독, 담배중독, 도박중독처럼 흔히 병적인 현상(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습관이 좋은 것 혹은 나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습관 자체를 평가하는 외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습관에는 사회문화적 가치가 개입된다. 그리고 이 가치는 습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한다. 그래서 가령 우리의 사회적 통념 속에서 공부는 좋은 습관으로 장려되지만 게임은 나쁜 습관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필자의 주관적 경험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게임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처음 오락실 문 앞에 섰을 때 느꼈던 호기심과 두려움, 그 두 감정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당시 나는 눈과 귀를 자극하는 전자기적 스펙터클에 유혹되면서도 실내를 기웃거릴 뿐, 선뜻 안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마도 어린 나는 오락실이란 곳을, 거짓말을 일삼는 타락한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악의 소굴로, 두려움과 금기의 장소로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오락실에 가면 코가 길어진다든지 당나귀로 변해버린다는 등의 무서운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오락실에 대한 부정정적인 상상은 커가면서 보다 더 현실적인 다른 이유들로 대체되었다. 가령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 방해가 되기 때문에 게임은 나쁜 것이었고 따라서 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게임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객관적(?)으로 게임중독이 병적인(나쁜) 이유를 살펴보자.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폭력적인 게임에 자주 노출되는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격적 성향을 키워나간다고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며 어울리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가상세계 속에 빠져있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결여되고 정도가 심해지면 대인기피증에 시달린다고도 한다. 또한 장기간 컴퓨터에 노출된 아이들은 시력저하나 수면방해와 같은 신체적 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게임이 유발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들이 언급된다. 이런 정보들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을 통계적으로 합산해 얻어낸 ‘객관적’인 정보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통계적 수치에 의거해 결론을 내리는 이 연구들도 게임이 왜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 종국적으론 매우 간략히 ‘주관적’인 혹은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해석할 뿐이다. 어떤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제나 숫자가 아니라 가치판단 기준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 산업의 경제적 가치가 점점 높아져가기 때문일까? 요즘 들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주장들이 부쩍 늘고 있다. 그 주장에 의하면 게임은 아이들에게 독립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주고, 컴퓨터(기계)와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공격적인 성향을 배출할 수 있는 창구로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을 적당히 할 때 그러하다.

매우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입장은 사실 동전의 앞뒷면에 불과하다. 게임이 나쁜 습관인 이유는 아이들의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방해하기 때문이고, 반대로 게임이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나쁜 것’ 혹은 ‘좋은 것’이 되게 하는 외적기준은 사회의 문화적 가치기준들인데 그 기준은 절대 상수로서 변함이 없다. ‘나쁜’ 게임 습관을 끊거나 혹은 게임을 적당히 잘 이용하여 ‘좋은’ 습관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게임을 하는 개인의 자기통제력과 자기 절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병리인 게임중독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전가시킨다는 점이다.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게임은 미디어’이고, ‘문화의 충실한 모델’이며, 따라서 이는 ‘내적 생활의 사적 극화가 아니라 집단적 극화이다’라고 말한다. 게임이 ‘문화의 충실한 모델(형식)’이라는 것은 게임이 사람들 간의 이음새 형태로서의 문화 형식을 반영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모델(형식)은 절대로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도 개인의 소유일 수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온라인 게임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 게임에서 작동하고 있는 문화적 형식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온라인게임 내부에 만들어지는 문화적 형식들은 (예를 들어 아이템 거래를 위한 시장 형성, 경매제도, 캐릭터들의 힘의 차이에 따른 위계들과 계층들의 분화 등) 우리의 일상 현실 모습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띤다.

게임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무한신뢰 혹은 이상적 낙관론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순환적 변증법구조를 만들어내는 게임을 ‘좋은 습관’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해주는 관점은 개인의 자기 통제력과 자기 절제를 전제로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 자체의 내적 모순 상태를 무시하거나 적어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온라인 게임은 현실의 경제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계층화된 가상사회를 만들어내며, 이 허상적인 계층의 사다리에서 끊임없이 보다 상층에 오르도록 우리를 경쟁시킨다.

게임이 충족시켜주는 욕망은 사실 현실 사회를 추동하는 욕망과 동일하다. 우리의 독립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현실의 욕망을 그대로 답습하고 이용하고 그를 따르도록 훈련시킨다. 그 극단적인 부작용이 현실 속에서 가끔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순간의 재미와 오락성, 개인의 선택의 차원을 넘어서는 결과인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바로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이 게임을 끊어야 할 이유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