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미의 시경읽기

씀바귀가 냉이처럼 달구나

- 정경미

먹고살기 바쁘고, 애 키우기 정신없을 땐 부부 사이에 별 문제가 없다. 그러다 여유가 좀 생기면 틈이 생긴다. 살림이 쌓이고 애들도 다 크고 하면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딴 생각이란 대체로 남편이 변심해서 딴 여자에게 빠지는 사태이다. 뭐, 잠깐 바람을 피는 정도에서 그치면 괜찮겠지만 아예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새 여자를 집안에 들이는 경우 이 조강지처의 신세가 딱하게 된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불가능한 시대에 소박 맞는 조강지처의 신세란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차원의, 감정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다. 소박 맞은 여자가 어디에 가서 뭘 하며 먹고 산단 말인가. 친정밖에는 갈 데가 없는데. 거기 가봐야 눈칫밥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게 뻔한 일. 이웃들의 멸시는 또 어쩌고. 이건 완전히 생존권 박탈에다가 사회적 죽음이다. 이런 절박한 삶의 위기에 처한 여자의 심정을 노래한 시로 시경詩經 패풍邶風의 「곡풍谷風」이 있다.

習習谷風 以陰以雨 살랑살랑 동풍에 흐렸다 비가 오기도
습습곡풍 이음이우
黽勉同心 不宜有怒 힘써 마음을 함께 해야지 성내서는 안 됩니다
민면동심 불의유노
采蓬采菲 無以下體 순무와 무를 캐는 것은 뿌리만을 먹기 위함이 아니니
채봉채비 무이하체
德音莫違 及爾同死 언약을 어기지 않는다면 그대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하려 했는데
덕음막위 급이동사

곡풍谷風은 동풍東風이란 뜻이다. 곡谷은 곡穀과 통하는 말. 그러므로 곡풍谷風이라 하면 곡식을 잘 자라게 하는 고마운 바람을 말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곡풍 같이 부드러워야 할 부부 사이가 파탄이 났음을 표현하기 위해 반어적으로 쓰였다. 살랑살랑 동풍이 불면 날씨가 맑고 쾌청해야 할 텐데 흐려지며 비가 온다는 것은 뜻밖의 불행-버림 받은 여자의 불행한 처지를 암시한다. ‘봉蓬’은 무, ‘비菲’는 순무이다. 무와 순무 둘 다 뿌리채소이지만 무는 하얗고 길쭉하게 생긴 데 비해 순무는 껍질이 빨갛고 모양이 양파처럼 둥글다. 순무는 무보다 단단하고 수분이 적으며 달고 매운 맛이 강하다. ‘순무와 무를 캐는 것은 뿌리만 먹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은 ‘뿌리만 먹는 게 아니라 잎도 먹는다’는 뜻이다. 시 전체 맥락에서 보면 부부가 됐으면 좋을 때도 같이 살고 싫을 때도 같이 살아야지 젊고 예쁜 때만 좋아하고 나이 들어 싫증난다고 버리는 건 옳지 않다는 뜻이다. 부부 사이를 무로 비유한 게 재밌다. 환상이 없는 처절한 생활!

行道遲遲 中心有違 가는 길 발걸음이 더딘 것은 마음의 원망 때문
행도지지 중심유위
不遠伊邇 薄送我畿 그대는 나를 멀리도 아니고 가까이 문 안에서 전송하는구려
불원이이 박송아기
誰謂茶苦 其甘如薺 누가 씀바귀를 쓰다 했는가 냉이처럼 달기만 합니다
수위다고 기감여제
宴以新昏 如兄如弟 그대는 새 아내와 즐기며 형 아우처럼 다정하군요
연이신흔 여형여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변함없이 함께 살자고, 백년해로하자고 약속했었지. 그런데 이제 새 여자 얻어 나를 버리다니! 쫓겨나는 조강지처는 억울하고 막막해서 발이 안 떨어진다. 남편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집에서 쫓겨나면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배신감에 분통이 터지고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그런데 남편이란 작자는 새 여자한테 홀랑 빠져가지구 그동안 함께 산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이걸로 어떻게 먹고살 방도를 찾아보시오. 요즘 같으면 이렇게 위자료라도 받을 텐데… 빈손으로 쫓겨나는 여자를 멀리 전송도 안 해주고 그냥 집 안[畿]에서 빠이빠이 한다. 옆에는 새 여자가 고운 모습으로 웃고 있고. 남편과 새 여자는 오누이처럼 다정해 보인다. 이때 쓰라린 여자의 심정을 이 시는 이렇게 표현한다. “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는가! 냉이처럼 달구만!” 쓰라린 자신의 지금 심정에 비하면 씀바귀 쓴 건 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씀바귀가 달다니 얼마나 쓰라렸으면!

涇以渭濁 湜湜其沚 경수가 위수 때문에 흐려 보이나 그 물가는 맑고 맑으리
경이위탁 식식기지
宴以新昏 不我屑以 그대는 신혼과 즐기느라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네요
연이심혼 불아설이
毋逝我梁 毋發我笱 내 어량에 가지 말며 내 통발 꺼내지 마시오
무서아량 무발아구
我躬不閱 遑恤我後 내 몸도 주체할 수 없는데 뒷걱정이 무슨 소용인가
아궁불열 황휼아후

경수涇水와 위수渭水는 황하강의 지류이다. 경수는 물이 탁하고 위수는 맑다. 이 시에서 경수의 탁한 물은 조강지처를, 위수의 맑은 물은 새 여자를 가리킨다. 맑은 물-위수가 탁한 물-경수보다 좋아 보인다. 위수 때문에 경수는 더 탁해 보인다. 나이 든 아내보다 새로 온 여자가 더 예뻐 보인다. 그러나 경수도 물가에는 맑은 곳이 있다. 새 여자에 비하면 옛 여자는 후져 보이지만 옛 여자가 가진 미덕도 있는 것이다. 술도 익으면 맛이라는데 외모보다 마음 씀씀이로 보자면 새 여자가 옛 여자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신혼 재미에 폭 빠져서 늙은 조강지처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사람 마음은! 버림받은 그녀는 남편 마음을 어떻게 돌려보겠다는 생각은 이제 포기한다. 그럴 위인이었으면 애시당초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지. 에효… 그래 늬들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러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가면서 그녀가 하는 말이 재미있다. 내가 쫓겨나긴 한다마는 내 살림은 건드리지 마! 내가 만들어놓은 어량, 내가 쳐놓은 통발, 그건 건드리지 마! 어량[梁]은 물고기 잡은 거 빠져나가지 못하게 물가에 돌멩이를 쌓아 놓은 것이고, 통발[笱]은 댓살이나 싸리 등으로 엮어서 통같이 만들어 물에 담가 놓아 물고기가 그 망 안으로 들어가 잡히게 하는 것이다. 어량이나 통발 둘 다 생업 도구이다. 쫓겨나는 여자가 비장한 감정에 빠지는 게 아니라 소소한 살림 걱정하는 게 재미있다. 이것이 바로 생활의 힘! 어떤 대단한 사건, 비통한 심정에도 완전히 생활이 압도되지는 않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일상의 감각! 에효… 하지만 쫓겨나는 판국에 뒷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요. 내 한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형편에 어량, 통발 부탁한들 누가 들어주랴. 그녀는 돌아보기를 관두고 떼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집을 나간다.

就其深矣 方之舟之 깊은 물에 나아갈 때는 뗏목이나 배를 탔지
취기심의 방지주지
就其淺矣 泳之游之 얕은 곳에 나아갈 때에는 자맥질하고 헤엄을 쳤지
취기천의 영지유지
何有何亡 黽勉求之 무엇이 있고 없는가 살펴 부지런히 장만했지
하유하무 민면구지
凡民有喪 匍匐救之 주위 사람에게 상사가 있을 적에는 힘을 다해 구해 주었지
범민유상 포복구지

집을 돌아보는 대신 이제 그녀는 지나간 시절을 돌아본다. 아 내가 이 집에 당신한테 시집와서 어떻게 살았던가. 깊은 물에 나아갈 때는 뗏목이나 배를 탔지. 얕은 곳에 나아갈 때에는 자맥질하고 헤엄을 쳤지. 인생살이 강물 건너는 일에 비유를 한다. 깊은 물은 큰 어려움, 얕은 물은 작은 어려움이라고 하겠다. 살아가면서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나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방법으로 헤쳐나갔지. 그리고 집안에 뭐가 있고 뭐가 없는가 살펴서 필요한 것들을 장만했었지. 살림을 부지런히 했다는 뜻이다. 집안 살림뿐만 아니라 이웃 대소사도 열심히 챙겼다. 누구 집에 상을 당했다 하면 달려가서 조문을 하고 또 누구 집에 일손이 필요하다 하면 달려가서 일을 도와주었다.

不我能慉 反以我爲讐 나에게 잘해 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원수로 여기는구나
불아능휵 반이아위수
旣阻我德 賈用不售 내 좋은 점을 물리치니 나는 팔리지 않는 물건과 같구나
기조아덕 고용불수
昔育恐育鞠 及爾顚覆 옛날 살림할 때 생활이 곤궁해질까 두려워 그대와 함께 고생했는데
석육공육국 급이전복
旣生旣育 比予于毒 살만해지니 나를 해충으로 여기는군요
기생기육 비여우독

아, 그런 나의 살아온 공도 모르고 이제 당신이 나를 버리다니! 동고동락 오랜 친구에게 잘해주기는커녕 “지겨운 저 여자가 내 행복을 방해하네. 저 여자 때문에 내 멋대로 인생을 즐기지 못하네” 하면서 나를 원수로 여기는구나. 옛날에 가난할 때는 ‘한 마음’으로 함께 고생했는데 이제 살만하니 ‘두 마음’이 되었구료. 당신은 딴 마음을 품고 이제 나를 해충으로 여기는구나. 나는 이제 당신에게 쓸모 없는 물건이 되었구료. 거추장스럽게 자리만 차지하고 팔리지는 않는 물건과 같은 처지가 되었구료. 여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사랑 받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팔리지 않는 물건[賈用不售]’라고 표현한 게 재미있다. 가게에 물건이란 게 팔려고 내놓은 것인데 팔리지 않는 물건이라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신세와 같다. ‘원수’ ‘팔리지 않는 물건’ ‘해충’… 그녀를 비유하는 이러한 대상들은 모두 주체에게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그러나 호명되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의 상징이다.

我有旨蓄 亦以御冬 맛있는 채소를 저장해 둠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더니
아유지축 역이어동
宴爾新昏 以我御窮 그대 신혼과 즐기니 나는 궁할 때나 필요했던 건가요
연이신혼 이아어궁
有洸有潰 旣貽我肄 난폭하고 성을 내며 나에게 고통만 주니
유광유궤 기이아이
不念昔者 伊余來墍 옛날에 내게 와 쉬던 것을 잊었나요
불념석자 이여래기

여기서 그녀는 자신을 겨울용 저장 채소에 비유한다. 배추나 무, 호박 같은 것. 겨울에 채소가 나지 않을 때 먹으려고 말려둔 저장 채소는 봄이나 여름철에는 먹지 않는다. 이때는 다른 먹을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궁할 때 떼우고 안락할 땐 잊혀지는 그 저장 채소와 같은 존재인가요. 이렇게 그녀는 무정한 남편을 원망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못 믿을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옛날에 날 사랑하던 것을 잊었는가. 실컷 고생만 시키고 이젠 날 원수 취급하며 버리다니! ‘나한테 와서 쉬던 때[伊余來墍]’가 ‘날 사랑하던 때’의 뜻이 되는 게 재미있다. 사랑한다는 게 예외적인 순간의 황홀경 같은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몸 붙이고 마음 붙이고 사는 일상 생활이라는 것.

시경에 보면, 특히 일반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는 국풍을 보면, 고대인들은 ‘지금’ ‘이곳’을 떠난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이 별로 없다. 잘 산다는 것은 지금 여기의 생활이 즐겁고 편안해지는 것이지 어디 미지의 세계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허황한 망상으로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잊는 게 아니라, 그 삶의 조건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그것을 넘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 「곡풍谷風」에서 그녀는 소박 맞아 쫓겨나는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감추거나 미화시키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고생해서 일군 살림인데 이걸 새 여자한테 빼앗기다니. 신혼 때 그렇게 나를 좋아해놓고, 가난한 시절 함께 고생하며 백년해로하자 약속해놓고, 이제 날 원수 취급하며 버리다니. 이 나쁜 놈아! 그래, 나는 궁할 때나 필요한 말린 채소 같은 거냐! 살만하니 잊고 싶은 궁상이냐! 그래, 날 버리고 니가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 배신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생생하다 못해 처절하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소박 맞은 여자가 남편을 원망하는 시라서가 아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을 어떤 감춤이나 왜곡 없이 진실하게 표현했다는 점. 원망하는 마음의 바닥까지 완전히 드러냄으로써 그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 그리하여 원망이 원망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삶의 힘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소박 맞아 쫓겨나는 여자가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남편 욕 실컷 하다가 집을 돌아보면서 “근데… 내가 만든 어량, 내가 쳐놓은 통발 그건 건드리면 안 돼!”라고 말하는 장면을.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서 “에효… 쫓겨나는 형편에 살림 걱정이 무슨 소용이람!”하면서 혼자 탄식하는 모습을. 여기서 우리는 웃게 된다. 지극한 슬픔은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 그 속에는 웃음도 있다는 것. 여기서 우리는, 지금 나의 감정에 온전히 충실함으로써 그 감정에서 벗어나 삶을 긍정하게 되는 시경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일 것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것이 자기만의 감정에 머물 때 삿된 것이 된다. 그러나 기쁠 땐 온전히 기뻐하고, 슬플 땐 온전히 슬퍼해서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을 때, 그것은 어딘가로 흘러가서 누군가의 막힌 생각을 틔워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된다.

응답 1개

  1. 나그네.말하길

    시간이 지났지만..
    인연이 있어 지금에서야 정경미님의 시경을
    하나, 둘씩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옛이야기를 지금에서야
    어두운 눈으로 나마 밝혀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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