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9 – 쓸쓸한 계절에 우울한 소식

- 김융희

남쪽에는 평생 처음 보는 많은 눈이 내려 쌓였다는데, 북쪽의 이 곳엔, 아직 큰 눈은 내리지 않고 큰 추위만 계속되고 있다. 한참 전에 내렸던 3~40미리의 쌓였던 눈이 추운 날씨로 녹지를 않고 계속 쌓여있어 겨울 정취를 지키고 있다. 땀흘려 걷운 결실과 함께 모처럼의 한가로움을 누리며 혹한의 겨울철을 보내는 것이 농촌의 겨울나기이다.

성질이 급한 봄나물들은 겨울에도 봄준비를 위해 맹추위와 맞서 지내는 것을 본다. 벌써 지난 늦가을부터 싻을 틔워 자랐던 냉이는, 겨울을 보내려고 햇빛을 좋와하는 붉은 색으로 잎이 변신하여 그런데로 추위를 버텼는데, 계속되는 영하 20도의 맹추위가 요즘 얼마나 힘드는지 오그라 들며 고생하는 꼴이 보기에도 애처롭다. 쌓인 눈을 이불로 추위를 견뎠는데, 금년에는 눈도 많이 내리질 않아 더욱 힘드나보다.

이른 봄이면 멘 먼저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여, 겨울나기로 소모된 영양을 공급하고, 입맛을 돋우어 주는 소중한 봄나물들이, 혹한의 추위와 겨루며 지내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처럼 자연에의 겨울이 꼭 한가로운 겨울만은 아니다. 농부들도 내년 농사를 위해서는 겨울동안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봄 여름처럼 많지 않는 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심을 북돋기 위해 한겨울에 거름을 깔아주어야 되는, 제일 중요한 땅관리가 당장 닥친 걱정거리다. 지금 깔아 주어야할 가축 분뇨를 아직 깔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구제역의 확산으로 축사의 출입이 막혀서 해야할 작업들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구제역은 “국가 재난”으로 선포되어 당국의 활동도 철저하며 매스컴도 수시로 사태를 보도하면서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시시 때때로 실상과 여러 대책을 알리고 있어 나타난 현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듯싶다. 전국적으로 안전 지역이 없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구제역의 우려와 공포로, 정부는“국가 재난”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발생지역의 축산물은 모두 매장 처리되며, 발생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출입이 제한되고, 축산물의 이동 운반도 완전 통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발생지역은 계속 늘고 있으며, 겹쳐 고병원성 인푸루엔자인 A1이 발생하여 조류의 축산농가를 위협하고 있어, 더욱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구제역 발생지역의 축산물은 모두 매몰 처리되며, 건강한 가축은 물론 어린 송아지까지 예외없이 매몰시키는 동물 집단 학살이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 발생지역에서는 축산 농가만이 출입을 막는 것이 아닌, 마을 주민들 모두가 함께 연좌제로 통제를 당하여 자유가 재한되고 있다.

큰 것을 위한 희생으로 이런 정도의 고통은 있을 수 있는, 참아야할 일이라 하자. 그런데 매일 때꺼리를 함께하며 정성을 쏟으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가축이, 시름 시름 앓고 있음을 지켜보는 고통도 쉽지 않을 진데, 아프지도 않는 전혀 멀쩡한 가축을 웅덩이에 처넣어 매몰 처리하는 일을 당해야 하는 농민의 심사가 어떻하겠는가. 이런 일들이 지금 농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동물들이 어떻게 아는지, 훨씬 떨어져 있는 소들이 자기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는 듯, 먹이를 먹지 않고 기를 못 펴며 슬픈 표정이란다. 그래 이를 지켜본 속상한 농부는 술을 들면서 함께 가슴 아파한다고 한다.

언젠가 들었던 구제역에 관계된 공무원이 차라리 노는 것이 좋지 도저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사표를 냈다는 이야기가 결코 헛 소문은 아니었다. 아무리 말 못한 짐승이지만 멀쩡한 생명체를 그데로 생매장하는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동물이지만 혼령을 위로해야 한다며 위령제를 지내주고 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글쎄, 영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당국을 믿고, 현대의 놀라운 지식을 믿으며, 고통을 겪고 있는 축산 농가를 위해서도, 추운 기온에 강하다는 구제역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재난을, 염려와 함께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구제역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약이 없어 치료도 불가능하다. 다만 자신의 체내에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 대처하는 것이 최선의 처방이다.

그래서 감기가 유행하면 사람도 백신을 주사하여 항채를 만드는 것처럼, 가축에도 지금 항채 바이러스인 백신을 주입하는 방안을 쓰고 있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처럼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을 쓰는 것이 가축에게도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닐까? 그리고 우격 다짐이나 임시 방편이 아닌, 좀더 구체적이고 함리적인 대책이 강구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구제역 방제가 단순히 가축의 문제가 아닌 지구촌의 환경 문제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생각의 전환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어떻든 겨울의 추위가 가기 전에 밭에 거름을 깔아야 하는데, 이제 입춘이 다가오고 있어 우수 경칩이 멀지 않겠거니 생각하면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지며, 아직도 대한과 입춘의 추위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기온을 바라는 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더구나 일을 못해 상심의 처지인 기사에게 일을 독촉할 처지도 아니기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혹한에 고통을 겪고 있는 봄나물을 생각하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 뿐, 그저 야단이요 착잡한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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