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돌아온 비건 : 고기를 끊는 것은 대단히 불편합니다. 하지만 말리진 않아요.

- 얌송(수유너머R)

나는 비건이다. 어쩌다 페스코 베지터리언으로 채식을 시작한 것이 2009년 봄 무렵. 비건이 된지 일 년 남짓 되었다. 간혹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을 먹기도 하고, 액젓이 들어간 김치를 먹기도 했지만 그 이외 육류, 조류, 어패류, 우유, 난(卵)류(앞으로 이 모든 것을 총칭해서 ‘고기’라고 일컫겠다.)가 들어간 음식은 엄격하게 먹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기를 ‘먹을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비건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고기가 먹고 싶지 않냐”인 것 같다. 나는 채식주의자이지 금욕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비건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참지 않는다. 다만 그냥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는 수도승이 아니죠

그럼에도 고기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치킨, 삼겹살, 순대국, 갈비 등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20대 초반의 남성(동생)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장을 볼 때는 동생을 위해서 고기류를 구입하게 된다. 나는 음식의 재료로 고기에 손을 대지 않는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어쩐지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에서 참치나 햄 등이 방치된 채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간다. 생명이 상품으로 그 다음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슬프다. 내가 비건이라는 사실이 고기를 먹지 않고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될까? 이건 굉장한 사치가 아닐까? 살아 있는 것을 죽였으면 최소한 깨끗하게 먹어야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먹을 수 없으니 신경질을 내며 빨리 먹으라고 동생을 들볶는다.

최근 겨울에 비건으로 사는 것이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 달 반 정도 전에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는데, 감기가 좀처럼 깨끗하게 낫질 않는다. 코를 풀다보다 일 년치 쓸 두루마리 휴지를 한 달 동안 다 쓴 것 같다. 겨울이라 건조한데 코를 자주 풀다보니 코를 푼 휴지가 콧물이 아니라 피범벅이 되어 있고, 몇 번 반복되니 익숙해져서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평소 두부와 두유도 잘 챙겨먹고, 콩과 율무, 팥이 들어간 현미밥, 과일도 잘 챙겨 먹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태가 이러니 아무래도 영양 보충이 잘되지 않는 게 아닌가. 비건이고 뭐고 살고봐야 한다는 생각에 결심을 하고 12월 30일 추어탕을 먹었다. 그리고 31일, 1월 1일. 심한 편두통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해를 눈물과 욕설로 시작했다. 펜잘 한통을 다 먹어도 두통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고 만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두통이 잦아들 기미가 보였다. 고단백 식품이 편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 끓인 고단백 스테미너식인 추어탕은 당연히 편두통 유발군에 속한다. 추어탕을 먹기 며칠 전 우스갯소리로 아무래도 요즘은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파계를 해서 체력을 보충해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의 일탈은 편두통으로 인해 단 며칠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비건으로 생활을 한지 벌써 1년인 것 같기도 하고 고작 1년 밖에 안된 것 같기도 하다. 1년. 사람의 몸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인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추어탕이 편두통을 유발할 수 있는 음식이 맞긴 한데 정말로 추어탕이 내게 편두통을 유발한 것일까. 단순히 추어탕을 먹은 것과 편두통이 찾아온 두 사건이 우연히 겹친 것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입때껏 고기를 먹지 않아 왔던 습관 때문인지 쉽게 ‘아무래도 이젠 신체적으로 고기를 먹는 게 힘들어 졌나보다. 그냥 다시 고기를 먹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해 버렸다. 채식과 관련해서는 어떤 확실함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막연함, 왠지 그런 것 같은 기분이라는 애매한 감정으로 움직인다. 채식을 시작한 그 날도 그랬다.(심지어 약간은 주술적이기도 했다.) 왠지 나는 앞으로도 쭉 비건으로 살 것 같다.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고 산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몸은 정말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껏 나의 비건 생활을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기를 끊어서 귀찮고 싫은 일을 원하지 않지만 자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은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에 남들에게 고기를 끊으라고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실 채식주의,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하지만 달리 사용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고, 대부분이 채식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의상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채식주의, 채식주의자라는 단어는 수많은 이들을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채식을 하는 이유도 다르고, 개인적으로 먹지 않는 ‘고기’를 분류하는 기준도 다르다. 위의 표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채식주의자들을 분류했는데, 분류표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눈이 있는 생물’을 먹지 않는다. 눈이 있음과 없음을 판별하는 기준은 개인에게 속해있다. 100명의 채식주의자가 있으면 100개의 채식주의가 존재한다.

나는 비건이라고 밝히고 싶지도 않다. 비건이라고 말하면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채식주의자라고 말한다. 그 뒤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생명체, <생로병사의 비밀>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장수촌 사람을 보듯이 보면서 쳐다보며 이것저것 묻는다. 대중매체에서 흔히 다뤄지는 채식은 다이어트, 암 극복, 아토피 등 건강과 미용에 관련된 것들이 많아서 채식을 한다고 하면 물어보지도 않은 채 그런 쪽으로 전제를 해버리고 말한다. 내게 채식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 물으면 “그런 건 네이버에나 검색해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낱같은 사회성이 내게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붙잡는다. 하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숨길 수 없어서(사실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대충 허허허 웃으며 구린 질문들에 대답을 하지 않고 어물쩍 넘긴다. “너 너무 몸생각 하는 거 아니야? 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그냥 대충 살래.”, “채식하고 나서 어때? 막 몸이 달라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아?”, “채식을 하는 이유가 뭐가? 어떤 정치적 목적 때문에 그러는 거야?”, “채식을 하는데 담배는 왜 피워?”, “사회 생활하는데 힘들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하잖아.”채식을 한다. 즉, 고기를 끊는다. 보통 무언가를 끊는다고 할 때 끊는 대상이 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만만한 예가 담배가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담배는 건강에도 안 좋을뿐더러 간접흡연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까지 주는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요즘같이 흡연자들이 설 자리가 없는 세상에서 금연을 한다고 하면 대단히 칭찬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무언가를 ‘끊는다’는 행위들은 개인적으로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큰 결심을 했다고 주변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그런데 채식, 고기를 끊는다고 하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고기가 나쁜가? 고기를 먹는 게 나쁜가? 사람이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는 게 나빠? 우선 나는 고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고기를 먹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왠지 못 먹겠지만 다른 사람이 먹는 것에 대해선 남기지 않는다면 말리고 싶지 않다. 다만 ‘고기’의 생산과 유통을 떠받치고 있는 문화가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의 고기를 만나보세요>

<가축의 권리를 말하다>

사람들이 즐겨먹는 고기, 가령 내 동생이 환장하는 치킨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한 생명 착취 문화에 대해 말을 꺼내기는 어렵다. 많은 이들이 생물을 먹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동물들이 불쌍하면 채식주의자들이 먹는 식물은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고 불쌍하긴 하지만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 누구 하나가 거부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살아있는 식물은 먹으면서 동물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진 무엇을 먹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먹거리에 관한 관심사라는 것은 대게 몇 칼로리쯤 되는가, 중국산인가 아닌가, 유기농인가 이정도로 좁혀진다. 항상 무언가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한 고민, 것이 한 존재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건으로서 가장 곤란할 때는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친한 친구, 위아래가 없는 편한 사이, 혹은 두세 명이 함께 밥을 먹을 때는 큰 상관이 없다. 그런데 만일 별로 안 친한 어색한 사이라든지, 상사가 섞여 있는 직장 동료 무리, 교수님이 계신 자리 등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는데 알아서 눈치를 봐 다수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경우 난처해진다. 페스코의 경우 생선은 먹기 때문에 그나마 선택의 폭이 넓지만 그 외에는 메뉴가 한정되 되어 있다. 채식식당은 드물다. 많은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데 채식주의자인 어느 한사람 때문에 식사 메뉴를 정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면 사회생활 하는데 융통성 없이 혼자 유난을 떨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분위기가 감돌게 된다. 물론 다수가 별 말을 하지 않고 흔쾌히 채식주의자 한 사람을 ‘배려’해줄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스스로가 느끼는 무언의 압박, 나 하나 때문에 괜히 다른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이렇게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채식을 계속해 나갈지를 고민하고, 채식을 그만두거나 타협을 한다. 채식을 하게 되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어떤 전제를 느끼게 되었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도 다수의 무리에서 떨어져 소수가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불편해지고, 무난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다수의 압력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 채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꿋꿋하게 비건을 고집했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 비건이라고 밝혀야 하는 상황 자체를 피한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비건이라고 말했고, 누군가 왜 채식을 하냐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친절히 대답했었었었다.(아주 먼 과거의 일) 그러다 한 가지 요령을 터득했는데 요즘은 누가 왜 채식을 하냐고 물으면 그냥 그 때 내키는 대로 알레르기라던가, 아토피, 혹은 한약을 먹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아주 쉽게 납득을 하며 잘 받아들인다. 아토피나, 알레르기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체적으로 애초에 불가능 한 것이고, 한약은 비싸기 때문에 약효를 위해 얼마든지 채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는 채식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외부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안됐다고 동정을 하며 쉽게 이해를 해준다. 그렇다면 어떤 의지나 이념의 문제는 신체적이지 않고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의 형태로만 머무는 것일까? 그래서 그것은 더불어 사는 세상, 타인을 위해 바꿀 수도 있는 불가피 하지 않는 것인가. 내게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의지이지만 직접적으로 몸에 작용해 그럴 수 없게 만든다.

채식을 하며 채식주의자들을 몇 명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대체로 비슷한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작년 종교적인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채식을 했던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서로 자신은 비건은 처음 본다고, 태어났을 때부터 채식을 해서 고기를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놀랐다.

얌송 ▶ 채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뭐였나요?
B군 ▷ 종교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채식을 하시기 때문에 저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게 됐습니다.

얌송 ▶ 종교적 이유라면 어떤 거죠? 원치 않으시면 굳이 어떤 종교인지 밝히지 않으셔도 되요.
B군 ▷ (제가 믿는 종교가 불교는 아닌데) 불교와 대동소이한 이유입니다. 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을 존중하자는 의미로 육식을 금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가진 종교에서 윤회의 의미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 B군이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자신이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말하자 친구가 놀리듯이 웃으며 “너 그럼 이슬람교야?”라고 말했는데 B군은 그것을 듣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믿는 이슬람교도 놀림거리가 되는데 사람들이 거의 들어본 적도 없는 자신의 종교 같은 경우엔 (상대방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더 심한 차별을 받을 것 같고,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에 그 때부터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얌송 ▶ 어렸을 때부터 채식을 했으면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급식을 먹어야 하잖아요.
B군 ▷ 유치원 때에 멸치를 먹어야 키가 큰다면서 선생님께서 억지로 먹이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 앞에서는 입에 넣은 뒤에 밖에 나와서 뱉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영양사선생님께서 고기를 먹어야한다며 자신 앞에서 먹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도 마찬가지로 입에 넣은 뒤에 나와서 뱉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저도 어느 정도 커서인지 강요당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니고 저희 사촌형의 경우엔 초등학교 때 고기를 먹지 않았다가 선생님께 크게 혼났다고 해요. 큰어머니께서 직접 학교에 찾아가셔서 “우리 아이는 신념의 이유로 제가 먹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제 판단 하에 이렇게 결정을 했는데, 나중에 아이가 커서 먹고 싶다고 한다면 먹을 것이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촌 누나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큰어머니께서 항상 담임선생님께 미리 채식을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들은 (악의는 물론 없었겠지만) 반 학생들에게 “저 아이는 채식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셨다고 합니다.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사촌누나는 그런 (특별히 지목되는) 일들이 싫었다고 해요.

얌송 ▶ 으헉-_-; 지금은 대학에 들어와서 좀 낫겠네요. 그런데 사실 대학가 주변에 있는 음식점들이 대부분 고기 집, 술집들이잖아요. 일반 식당이라고 하더라도 고기가 안 들어가는 메뉴를 찾기가 어렵고요.
B군 ▷ 네, 사실 친구들이랑 같이 먹을 때 좀 미안한 점이 있습니다. 저랑 같이 밥을 먹으면 메뉴 선택이 줄어드니까요. 그리고 모임에 가면 대체로 삼겹살이나 감자탕 집에 가는데 저는 물이나 샐러드를 제외하고는 먹을 게 없죠. 가끔 김치전을 시키라고 하는데 사실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먹지 않아요. 그런데 김치전도 안 먹으면 정말 안주가 없습니다. 그래도 일반 술집에 가면 감자튀김이나 과일, 화채정도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식당에 가서는 찌개를 먹을 때 멸치국물이나 다시나 국물, 그리고 각종 해산물을 빼서 끓여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얌송 ▶ 친구들이나,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채식을 하는 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나요?
B군 ▷ 친구들은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는데, 밖에서 만나는 경우에는 그냥 알러지 때문에 못 먹는다고 말하고 넘깁니다. 그게 편하거든요.

얌송 ▶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뭐였어요?
B군 ▷ “왜?”, “이 좋은걸? 한 번 먹어봐. 한 번 먹어보면 너도 맛에 중독될걸?”

얌송 ▶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혹시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 있나요?
B군 ▷ 아니요. 궁금한 적은 있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 어려서부터 안 먹어서인지 사실 냄새를 맡아도 역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얌송 ▶ 그러면 평상시에 밖에서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B군 ▷ 대체로 분식집을 자주 가요. 보통 비빔밥을 먹죠. 한식집에서는 된장찌개를 다시 끓여달라고 해서 먹습니다. 또 한식집에서는 반찬이 비교적 많아서 제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조금 있어요. 중국집에 가면 간짜장을 고기 빼고 다시 볶아달라고 해요. 그리고 짬뽕은 해물을 빼고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중국집은 대부분 바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만들 때 빼고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요.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도 있고요. 인도음식을 파는 곳에 가면 채식 메뉴가 따로 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피자는 베지테리언 피자를 시켜요.

얌송 ▶ 본인은 채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B군 ▷ 우리나라에서는 본인이 굉장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채식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 같이 본인 신념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라면 어렵더라도 해야겠지요.

B군 ▷ 보기 드문 채식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예요. 단지 고기를 먹지 않을 뿐입니다^^. 신기하겠지만, 너무 ‘신기하게만’ 바라봐주지 않으셨으면 해요.

채식을 해서 건강이 무척 좋아지고 특별한 효과가 있냐고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고기가 들어간 것을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분류하고 못 먹게 되긴 했다. 한국에서 채식을 하는 것은 힘들다. 밖에서 밥을 사먹을 땐 딱히 먹을 것이 없고, 주문을 할 때도 고기가 들어가는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하는데 말을 해도 깜빡 잊고 습관대로 육수를 넣어 찌개를 끓여줄 때도 있다. 여러 사람과 같이 밥을 먹을 땐 나 하나를 위해 다른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는 ‘배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온갖 종류의 불편함을 자처하고 끈질기게 버티는 쾌감과 매력이 있다. 못하겠는 것은 눈치 없이 그냥 못한다고 해버리기. 나는 고기 끊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끊겠다는 것을 딱히 말릴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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