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달팽이공방은요~

- 달팽이 달팽이

우리를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래 공방을 떠나왔다 돌아온 지금,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습니다. 설명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해보려고 합니다.

달팽이 공방이라는 모임은 다른 곳, 예컨대 수유+너머 보다 설명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공방工房은 무언가를 만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도자기 공방, 화장품 공방, 가구 공방……. 우리 주위에는 많은 공방들이 있지요. 사람들은 거기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화장품을 만들고, 가구를 만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모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고정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공방’이라 부르기도 무색합니다. 분명 우리도 무언가를 만들기는 합니다. 바느질을 하고, 커피를 볶고, 빵을 굽거나, 비누를 만들면서…….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일종의 수단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커피나 빵이나 비누 보다, 그것을 만듦으로써 생기는 특이한 장소에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때에도 우리는 무언가 만들고 있습니다. 사라질 장소들, 흔적으로만 남는 어떤 순간들을요.

설명하려고 보니 우리는 꽤 이상한 집단입니다. 우리는 사라질 순간들만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욕망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으니,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위험한 아나키 운동조직입니다. ^^ “좌파는 정부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들뢰즈의 이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가끔 모이고, 대게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라 부르는 범주 또한 매번 달라집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우리 중에는 우리가 아닌 이들도 매우 많습니다.

달팽이공방은 연구자 공동체로부터 출발했지만,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주부도, 백수도, 연구자도, 번역가도, 다큐 감독도, 음악가도, 화가도, 두 살 배기 아이도, 자신을 병역거부자라고 말하는 20대 여성도, 자신이 멤버인지도 모르는 40대 남성도, 부엌의 오븐도, 동네 고양이도, 옆집 할머니, 이주노동자도 있으니까요. 그 모든 얼굴들을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말하자면 우리는 연구자이기를 거부하는 연구자들입니다. 고정된 우리이기를 거부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우리에게 즐거운 일들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행동은 이상한 순간들을 만듭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니큐어 바른 손톱으로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한밤 중 종각역에서 농성 중인 장애인들과 카페를 차리기도 합니다. 시위에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미니스커트에 탱크톱을 입고 피켓을 듭니다. DIY를 외치며 빵을 굽고, 펑크 음악을 듣습니다. 펑크를 듣기 위해 모였다가도 문득 TV시사프로그램을 봅니다. 우리가 이러한 행동들을 할 때, 거기에는 아주 낯선 공간이 생깁니다. 그리고 거기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를 묶어놓는 것은 단지 그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겼다 사라집니다.

우리는 1970년 이탈리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주부에게 임금을!’이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중에는 주부가 아닌 이들도, 예컨대 비혼자나 남자아이도 있었으리라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단지 가사노동도 재생산 노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외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당신들이 말하는 잉여가치에 속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우리가 만드는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임금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외칠 때,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오천 원으로 교환되는 빵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편의 시가 생산하는 모든 것들과 그것의 가치처럼요. 제대로 설명할 수도 말하기도 힘든 그런 가치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이러한 가치들에 대해 새롭게 묻는 순간이기를 바랍니다. 도쿄의 학자금 신용불량자들의 모임 <블랙리스트회> 친구들이 ‘학생에게 임금을!’이라고 외치는 것 또한 우리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두리반이라는 칼국수집이 철거에 저항하며 물었던 가치 또한 그런 것이었겠지요. 우리는 그러한 다른 가치들을 더욱 많이 만들고 싶어합니다. 모여서 빵을 구워 나누어 먹을 때 생겨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되기를 바랍니다. 단지 그것이 서로를 바꾸는 것일 때에만. 우리는 하나의 무언가가 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의 ‘동일시(identification)’를 싫어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처럼 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그 어떤 우리만의 윤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언가가 될 때에, 그것은 항상 양 방향으로 일어납니다. 우리가 두리반에서 벼룩시장을 차릴 때, 우리와 두리반은 동시에 변합니다. 그것은 뭔지 모를 새로운 ‘우리’를 만들었다 사라집니다. 우리가 우리를 장애인이라고 말할 때, 홍익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라고 말할 때, 이주노동자라고 말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가장 극단에서 우리를 초과하는 그 어떤 낯섦과 함께 있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사라졌다가 다시 만들어지고, 사라질 예정입니다.

*달팽이 공방과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당장 16일에 두리반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으로 오세요.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상관없답니다. ^^ 문의는 http://www.nomadist.org 로.

응답 2개

  1. 사비말하길

    흙. 감동받아서 울뻔했뜸 ㅠㅠㅠㅠㅠ

  2. 지나가다말하길

    멋진 글입니다. 달팽이공방, 함께 하고픈 실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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